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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림 Mar 16. 2021

나는 사랑니를 빼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일상도 여행처럼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는지요. 오늘도 인사를 하며 시작합니다.




'2년 전 오늘의 추억이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까?'

클라우드 어플에서 알람이 왔습니다. 들어가 확인해보니 2년 전 오늘은 프라하에서 떡볶이를 해먹으며 평화로운 오후를 보냈더군요.

먼 나라 곳곳을 둘러보며 여행하는 시간도 물론 좋았지만, 돌아보니 좋아하는 카페에서 일기를 쓰고 숙소에서 음식을 나눠먹으며 웃었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반대로 해석해보면, 여행을 강제로 못 가는 지금도 충분히 그때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요?


'This is ocean. 내가 찾던 바다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라는 영화 소울에 대사가 생각나서 함께 적어보는 3월 16일 저녁입니다.   





저번 주엔 사랑니를 뺐습니다. 마취가 풀리니 무척 아프더군요. 사실 눈물 쪼금 흘리면서 잠들었습니다. 사랑니를 빼는 일은 저에게 프라하에 있을 때부터 미뤄왔던 일이었는데요. 오랜만에 사진을 보니 그때 시큰거렸던 어금니가 생각났습니다.

'한국 가면 빼야지.' 하고 생각했던 일을 이렇게 어플이 알려주는 추억이 될 동안 미뤄버렸네요.   


저는 익숙한 곳을 좋아합니다. 병원도 그 카테고리 중 하나인데요. 가는 병원만 간다는 얘기죠. 제가 자주 가는 치과는 익산에 있는 굿모닝 치과입니다. 굿모닝 치과와의 첫 만남은 제가 9살 때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아이스링크장으로 소풍 갔던 날이었습니다.


얼음판에 신나서 싱싱 달리던 초등학생을 누가 뒤에서 밀었고, 그 초등학생이었던 저는 앞으로 철퍼덕 하고 넘어졌습니다. 아야. 무척 아팠지만 씩씩한 초등학생이었기에 털고 일어나려는데, 눈앞에 제 앞니로 추정되는 작고 소중한 치아 반쪽이 있었습니다.

한 손엔 관장님 손을 잡고 한 손엔 치아 반쪽을 소중히 들고 울면서 치과에 갔습니다. 원래 눈에 보이면 더 아픈 법이니까요.

강렬했던 첫 만남 이후 앞니 보수공사는 지속적으로 해야 했기에 치과에 자주 방문해야 했고 굿모닝 치과와의 인연은 17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예고 없이 분다고 하던가요. 주말 내내 사랑니가 시큰거려 거울에 아-하고 확인해보니 확연하게 부어있었습니다.

큰일 났다. 이건 빨리 빼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굿모닝 치과와의 의리를 지킬 여유 따윈 없었습니다. 치과 방향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건네고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근처 치과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사랑니를 빼야 하는데 제 잇몸이 부어있어서요.. 혹시 오늘 바로 발치가 가능한가요?

- 네 안녕하세요. 입을 벌리실 수 있는 정도면 가능합니다. 예약 잡아드릴까요?


친절한 목소리에 안도하며 오후 5시로 예약을 잡았습니다. 점심시간에 회사 선배님께 사랑니 빼러 간다고 자랑을 3마디쯤하고 사랑니 마취가 풀리면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30마디쯤 들었습니다. 생생한 후기에 예약을 취소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앞니도 부러져 봤던 씩씩한 초등학생이었으니까요.





사랑니를 빼는 건 생각보다 빨리 끝났습니다. (엄살을 부려서 마취를 3번 정도 추가로 놓긴 했지만) 무엇보다 의사 선생님이 발치 하나 할 때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하고 온갖 칭찬과 응원을 해주셔서 다 빼고 나니 약간 뿌듯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나왔을 땐 친절한 목소리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치위생사 선생님께서 고생하셨다며 아프면 진통제 꼭 드시고 주무시라고 다정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제 사랑니 빼는 일에 다들 이리도 다정하게 대해주시다니. 점점 부어가는 오른쪽 볼을 붙잡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병원을 찾아가는 일도 여행 같은 경험이 되는구나.' 하고요.


'전 세계가 약속해서 올해를 2020년으로 다시 정하자.'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작년 한 해는 다들 답답하고 힘든 한 해였습니다.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녀야 했기에 우연히 스친 사람의 얼굴은 볼 수 없었죠. 하지만 가리는 것이 있으니 가리지 않은 것이 더 잘 보이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가리니 목소리와 말투 행동 같은 것들이 더 잘 보이고, 잘 들렸습니다. 못하는 것에 아쉬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자고. 어쩌면 그동안 가려져 못 봤던 것들을 유심히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저는 새로 찾은 치과에서 다정한 바다를 만났습니다. 다음 바다도 어느새 물밀처럼 밀려와 제 옆에 있겠죠?



수영하고 싶다.

2021.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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