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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림 Mar 07. 2021

나는 빨간색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오늘은 왠지 안녕하세요 하고 시작하고 싶네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를 상상하며 글을 적나 봅니다.

오랜만에 익산에 왔습니다. 익산은 제 학창 시절을 꾹꾹 눌러 담아 보낸 추억 가득한 곳입니다. 저는 익산에 가면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딸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던 엄마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과 제 귀차니즘이 만들어낸 결과일까요.

저희 모녀의 대화 패턴은 주로 제가 떠들고 엄마가 들어주는 편인데요. 이번엔 엄마 이야기가 듣고 싶더군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요. 그래서 붙잡고 귀찮게 물어봤습니다. 왜 자꾸 물어보냐고 타박해도 기죽지 않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생각보다 재미있어 수필 형태로 담아보았습니다.
오해와 애정을 담아 쓴 글입니다. 글 쓰는 건 취미긴 한데 저는 피드백을 좋아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나는 빨간색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의 이름은 김정숙.
1967 5 4, 김삼남과 정옥란 사이에 전라북도 정읍시 오공 마을에서 태어났다. '곧을 ' '맑을 '으로 지조 있고 착한 아이로 자라라는 마음을 담아 김삼남이 지어줬다.
정숙은 5 2  여섯 째다. 첫째 김용식과 둘째 김정임 밑으로 오빠 김정식, 김복식, 김덕배와 동생 김오식 아홉 식구가 함께 살았다.

정숙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일곱   즈음의 일이다. 김삼남이 평소보다 과하게 마신  집에  '우리 막냉이' 찾으며 정숙을 무릎에 앉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진짜 막내는 김오식이었고 삼남에게는 알싸한 술냄새가 났지만, 따뜻한 손길이 좋았던 어린 정숙은 숨을 참는  선택했다.


당시 김삼남은 소가 아프면 고쳐주는 일을 했다. 1970년대, 마을에는 소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연스레 김삼남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덕분에 정숙은  고무신을 신고 국민학교에 다녔다. 같은  친구들은 흰색이나 검은색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김삼남을 자주 찾을수록 정숙의 옷은  화려해졌다. 하루는 삼남이 빨간색 구두를 손에 들고 집에 왔다. 에나멜 재질의 맑은 빨간색이었다. 정숙은  구두를 특히 자주 신었다.

정숙의 집엔 티비가 있었다. 마을에 유일한 티비였다. 당시 유행하던 프로그램이 방영하는 날이면 동네 사람은 삼삼오오 정숙의 집으로 모였다. 티비를 마루에 꺼내놓고 마당 평상에 둘러앉아 함께 시청했다. 그런 날이면 정숙은 친구들과 약속도 잡지 않고  집에 있었다. 사람들에게  맞춰 앉으라고 새침하게 말하기 위해서였다.

김삼남은 정숙이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정숙은 옷장에 검은색이 가장 많은 중년 여성이 되었다. 화려하고 튀는 옷보다 평범하고 무난한 검은색이 장롱을 차지할 동안 정숙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녀와 쇼핑하러 가면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 멈추는지 나는 안다. 빨간색 구두, 빨간색 티셔츠, 빨간색 코트와 같은 온통 빨간색인 것들  하나였다. 어제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빨간  코트를 사서 집에 왔다.
'괜히 샀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작은 혼잣말을 나는 들었다. '엄마랑  어울리던데? 이제  풀리니까 입으면 예쁘겠다.' 나는 말했다.

 기억에 의하면 정숙은 꾸준히 빨간색을 좋아했다.  그렇게 빨간색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그냥. 예쁘잖아.라는 대답만 돌아왔을 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지금보다  자유롭게 빨간색을 좋아하면 좋겠다고.


나는 빨간색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맑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동네를 산책하던 정숙을 상상하며.






정숙에 대하여

2021.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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