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그리고 채우기
오랜만에 자취를 합니다.
오랜만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지난 1년은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학교를 옮겼기 때문에 새로운 거처가 필요했는데, 운 좋게 기숙사에 붙어 한 해를 보냈죠. 기숙사의 장점은 저렴한 주거비랄까요. 집 값 무서운 서울에서 월 25만 원 정도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죠.
하지만 여러 명이 한 공간을 공유했기에 제 공간이라는 인식은 적었습니다. 대학원생 특성상 새벽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는데, 다음 날 새벽에 씻는 걸 자제해달라는 쪽지가 문 앞에 붙어 속상했던 기억도 제가 기숙사에 정을 못 들인 이유에 일조를 했을까요. 우아한 척 말해놨지만
'아씨, 늦게 들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씻지도 말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라며 속으로 곱씹었습니다.
지난 겨울, 2학기가 끝나갈 때쯤 공지사항에 글이 올라왔습니다.
학교 기숙사가 코로나 병동으로 전환 될 예정이니 거주하고 있던 학생은 다음 주까지 짐을 모두 빼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죠. 한창 확진자가 증가할 시점이라 병상이 부족한 건 공감을 한다만 당장 나가라니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빼라면 빼야죠. 부랴부랴 집을 알아보았고 지금의 방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주거 비용을 마련해주신 부모님께는 살짝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제 방이 생겨서 굉장히 기쁜 상태입니다.
여전히 코딱지만 한 방이지만, 기숙사 방보다는 훨씬 크고 무엇보다 이 공간 전부 제 꺼라니. 새벽에 씻어도 쪽지가 붙어있지 않은 두꺼운 벽도 마음에 듭니다. 이제 이 집과 친해질 일만 남았습니다.
솔직히 지방에 살았던 제 기억으로 이 가격에 이 크기의 집은 말도 안 되긴 합니다. 서울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구나를 다시 한번 되새김하며 집 꾸미기의 전략을 짰습니다.
일명 필요한 것만 두기.
작은 공간에 이것 저것 물건을 들이면 이게 물건을 위한 공간인지, 저를 위한 공간인지 분간이 안 가게 됩니다. 때문에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이게 꼭 필요한지, 장점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물건도 생각하고 들이기.
두 번 째는 '매일 쓰는 건 예뻐야 해'입니다.
전에 읽었던 글에서 나온 말인데 아직도 안 잊히는 문장입니다. 매일 쓰는 예쁜 컵을 사는 일은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놓았으면서 저녁에 2만 원짜리 치킨을 시켜먹은 기억이 있지 않은지.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엔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 그로 인해 더 큰 부가가치를 생성해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 삶을 일회용으로 채우기엔 아쉬움이 남으니까요.
그 문장을 열화와 같이 공감하며 매일 쓰는 침구와 예쁜 물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꼭 필요한 물건인지와 장점에 대한 합리화도 놓치지 않았습니다(ㅎㅎ/).
이러려고 돈 버는 거니까요.
덕분에 지금 제 방이 꽤 마음에 듭니다. 필요한 것들로 채워진 제 방이 꼭 저를 닮았더군요. 궁금해하실까 봐 제 방 사진 남깁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집을 치웠나요? Yes,,)
Ps. 요즘 전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으로 이사 갈 겁니다.
부자가 될 것이다.
2021.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