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림 Apr 08. 2022

익산 미륵사지의 어떤 가치를 갖고있는가

익산의 미륵사지석탑

“너 여기 가봤어?” 이것은 내가 자랑하고 싶은 장소를 발견했을 때 반복하고 싶은 말들 중 하나다. 돌아다니다가 너무 좋은 곳을 발견하면 친구들한테 사진을 보내. 그리고 이렇게 물어봐. “너도 가봤어?” 그럼 친구의 대답을 기다리고 안 가봤다면 다음에 함께 하기를 기약해. 그때는 정말 그것으로 족해. 그러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륵사지는 학창 시절 현장학습을 통해 종종 만났던 존재였다.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그 뒤론 점점 발길이 뜸해져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익산의 유명세를 빛내주는 그저 고마운 존재였다. 그것으로 그치기엔 아까운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떤 장소든 세월만큼의 스토리를 갖는다. 이야기가 쌓여 역사가 되고, 역사의 증거물이 형태로 남는다. 미륵사지의 역사를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어떠한 웅장함이 느껴진다.


미륵사지석탑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백제 제30대 무왕 2년에 창궐한 국가사찰이다. 세월 속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절터만 남은 이곳에서 홀로 자리를 지킨 문화유산이다. 국보 제11호의 넘버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와 최대의 수식어가 한 번에 붙는다니. 어떤 장소에 '가장 오래된'이 붙으면 괜스레 뒤돌아보게 된다. 세월의 역사를 간직한 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기 때문일까. 세월의 모양을 따라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니 정말이지 독보적이다.



일제강점기의 잔재

1,400년 전 백제의 뛰어난 손기술과 심미안을 보여주는 석탑인데 현장에 가서 직접 보면 어떤 분노의 마음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에 탑의 일부가 무너지자 일제가 복원한다며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놨기 때문이다. 당시 흉물스럽게 발라놓은 시멘트가 무식해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담겨있는 일제강점기의 아픔까지 오버랩된다.


다행히 문화재청이 미륵사지의 원형을 찾기 위해 해체 복원에 나섰다. 그동안 떼어낸 콘크리트만 185톤에 이른다. 해체한 석재는 깨지고 떨어진 부분을 정교하게 가다듬어 다시 사용하는 과정을 거친다. 3,000여 개의 돌을 메우고, 틀을 보강하고, 새 돌을 덧붙여 다시 쌓아올린다. 안전 진단부터 해체 보수의 전 과정이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총 20년 걸렸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수로는 최장기간이다.


현재 석탑 옆에는 복원을 위한 돌이 전시되어 있다. 노란 돌은 원래 돌이고, 하얀 돌은 인위적으로 붙인 것이다. 기존의 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마음이었다. 처음엔 많이 어색할 테지만 시간의 때가 묻으면 옛날 돌과 요즘 돌이 잘 어울릴 것이다. 그게 역사니까 말이다.

 


현재는 6층으로 복원되었다


미륵사지의 건축적 가치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의 석탑이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갈 때의 양식을 보여준다. 목탑은 나무와 나무를 결합해서 쌓아 올린다. 마찬가지로 돌을 쌓아 올린 형태를 보여준다. 재료는 돌이지만 기존의 목탑의 결합방식을 활용했다. 구탑과 신탑의 결합이다. 과도기를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기본적인 틀은 목탑의 구조를 본떴다. 맨 밑 기단부를 목탑과 같은 단층 기단으로 삼고, 1층 탑신 네 곳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십자형의 내부공간을 마련하였다. 기둥의 위쪽으로 갈수록 좁고 아래쪽은 넓게 하여 시각적인 안정감을 줬다. 단층 위에 약간의 층급을 줘 지붕을 받들게 했다.

 


부여의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같이 백제계의 탑을 보면 어쩐지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돌멩이에서 부드럽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위쪽의 처마산이 살짝 올라간 것을 보고 있으면 '선이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당시 많은 정치와 문화적 상황들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현장이 아닐까 싶다.     


미륵사지를 공부한 뒤 다시 방문해 두 시간 동안 꽉꽉 채워 구경했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복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스쳐 갔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계속해서 깊게 듣고 싶다는 의미다. 그들의 사랑에 감사한다는 의미다. 나는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채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도시를 채우는 가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