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링머신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3

by 이종희

앨런 튜링 ― 생각을 계산으로 바꾼 사람/이종희


어젯밤, 이상윤·문유강이 출연한 연극 튜링머신을 세종문화회관 S시어터에서 관람했다. 무대 위에는 천재 수학자이자 동성애자, 그리고 말더듬이라는 조건 속에서 고독하게 살아가야 했던 앨런 튜링의 삶이 펼쳐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전쟁의 종식을 앞당긴 숨은 영웅이자, 오늘날 인공지능 논의의 출발점이 된 ‘튜링 테스트’의 창시자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인지 무대 속 인물이 한층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연극의 형식은 의외로 단출하다. 단 두 명의 배우가 무수한 인물들을 오가며 무대를 채운다. 앨런 튜링과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를 심문하고, 위로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 모두가 두 배우의 몸과 목소리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순간순간 조명이 바뀌고, 말투와 호흡이 달라지면서 전혀 다른 인물이 튀어나오는 그 전환의 묘미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였다. 마치 한 사람의 내면을 이루는 수많은 얼굴을 보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객석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내 옆에 앉아 계셨던 할머니는 공연 내내 조용히 졸고 계셨다. 튜링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으면, 다소 난해하고 말의 밀도가 높은 이 연극에 쉽게 빠져들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반면 주변의 젊은 관객들은 숨도 죽인 채 무대에 몰입해 있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사를 곱씹고, 누군가는 조용히 눈시울을 붉혔다. 세대에 따라 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다르게 다가오는 풍경이 조금은 씁쓸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연극은 튜링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에피소드들을 파편처럼 스쳐 지나가게 한다. 그 파편들이 쌓이며 한 인간의 초상이 점점 또렷해진다. 천재 수학자로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사회적 편견과 국가 권력 앞에서 끝내 보호받지 못했던 한 개인의 고독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특히 그를 심문하는 장면들에서는, ‘그 시대의 폭력’이 현재형으로 되살아나 관객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쪽 베어 먹힌 사과가 무대 중앙에 남는다. 어둠 속을 찢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그 사과를 또렷하게 비춘다. 그 순간, 튜링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질문들이 하나의 상징으로 응축되는 듯했다. 사과는 더 이상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 온 누군가의 진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 그 사과의 잔상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튜링머신」은 지식과 사전 정보를 안고 들어갈수록 더 풍부하게 읽히는 연극이지만, 동시에 한 인간이 시대와 싸우다 사라져 간 비극을 통해 지금 우리의 시선과 태도를 되묻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무대를 나서며, ‘우리는 오늘의 튜링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앨런 튜링 ― 생각을 계산으로 바꾼 사람



앨런 매시슨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1954)은 영국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암호학자이다. 그는 오늘날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출발점에 서 있는 인물로, 흔히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린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근간에는 튜링이 제시한 사유의 틀이 놓여 있다.


1936년, 튜링은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튜링 머신’이라는 가상의 기계를 제안했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기계라기보다, 계산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모델이었다. 무한히 이어진 테이프와 단순한 규칙만으로 이루어진 이 기계는,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계산이 기계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개념은 이후 모든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튜링은 영국의 블레츨리 파크에서 독일군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그는 암호 해독을 자동화하는 기계 ‘봄브(Bombe)’ 개발에 기여했고, 이를 통해 연합군은 독일군의 전략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그의 공헌이 전쟁을 수년 앞당겨 끝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업적은 오랫동안 군사 기밀로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튜링은 다시 ‘생각하는 기계’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1950년 그는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를 판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다. 사람과 기계가 대화를 나누었을 때, 판별자가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 기계는 지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는 사고 실험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까지 인공지능 논의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튜링의 개인사는 비극적이었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당시 영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범죄로 취급되었다. 1952년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화학적 거세라는 처벌을 받았고, 사회적·학문적 고립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1954년, 그는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은 오랫동안 개인의 비극으로만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영국 정부는 튜링에게 가한 부당한 처우를 인정했다. 2009년 공식 사과가 이루어졌고, 2013년에는 왕실 사면이 선포되었다. 오늘날 튜링은 단지 과학자의 상징을 넘어, 천재를 보호하지 못한 사회의 책임과 인간의 존엄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인물로 기억된다.


앨런 튜링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기술 그 자체보다도 질문에 있다. 생각은 어디까지 계산될 수 있는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고정된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서로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는 계산의 언어로 사유를 탐구한 사람이었고, 그 점에서 과학자이자 사유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너무 의미가 불분명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사람들이 실제로 대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생각’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 경계를 정확히 그은 적은 없다.

만약 인간과 기계가

문장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지능을 판단해야 하는가.


기계가 인간처럼 느끼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기계를 인간으로 오해하는가,

그 지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 질문은

기계에 대한 시험이기보다

인간의 판단에 대한 시험이다.



앨런 튜링의 글/1950년 계산 기계와 지능

논문을 사유와 논지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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