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문 앞에서 이방인이 되는 순간

AGI가 건네는 서늘한 첫인상

by 애린 이종희

내 집 문 앞에서 이방인이 되는 순간-이종희


AGI(인공 일반 지능)란 특정 분야에 국한된 현재의 AI를 넘어, 인간의 다양한 지적 능력을 폭넓게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을 뜻한다. 스스로 학습하고 추론하며 인간의 문맥까지 이해하려 시도하는 이 ‘생각하는 기계’는 아직 완전히 실현된 기술은 아니지만, 주요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방향임은 분명하다. SF 소설 속 상상이 점차 연구실과 산업 현장의 과제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나 오픈 AI의 샘 올트먼 등은 AGI의 도래 시점을 두고 수년에서 수십 년에 이르는 다양한 전망을 내놓으며,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사회적 대비가 충분한지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그들의 발언은 AGI가 언제 도착할지를 단정하기보다는, 그 가능성이 이미 현실적인 논의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자못 서늘한 울림을 남긴다.


며칠 전 동창 모임에서 겪은 일은, 아직 AGI와는 거리가 먼 현재의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조차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동창회 통장과 연결된 체크카드를 새로 발급받고 처음 사용하자마자 카드사로부터 확인 전화가 걸려 왔다. AI 기반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이 평소와 다른 결제 패턴을 감지한 것이다. 기계는 내 결제가 본인 사용이 맞는지를 확인했고, 이상 징후가 지속될 경우 카드 이용이 제한될 수 있음을 안내했다.


더 당황스러웠던 순간은 그다음이었다. 본인 확인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계좌에 접근할 수 없었다. 평소처럼 접속하려 해도 금융 애플리케이션은 요지부동이었다. 이후 확인해 보니, 이는 금융사가 운영하는 보안 정책에 따라 일시적인 추가 인증 또는 접근 제한이 적용된 결과였다. 비정상적일 수 있는 접속 환경이 감지되자, 나의 여러 디지털 금융 창구가 자동으로 제한된 것이다.


집에서 접속하자 비교적 원활하게 이용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 과거 접속 기록과 일치하는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접속 지점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낯선 모임 장소의 네트워크는 잠재적 위험 구역으로 분류되고, 평소 자주 사용하던 접속 환경이 확인된 뒤에야 제한이 완화되었다.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한 채, 집 문 앞에서 열쇠가 맞지 않아 한참을 서성이는 기분이었다. 효율과 보안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알고리즘 앞에서 나의 경제 활동이 잠시 유예된 듯한 감각은 정말 낯설고도 아찔했다.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잦아들지 않는 현실에서 이러한 보안 시스템의 작동은 분명 개인을 보호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의 자유가 보이지 않는 판단 체계에 의해 제한되고 있다는 감각을 지우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의 기술 환경이 얼마나 넓은 지점까지 확장될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어 아득하기만 하다.


특정 기능에만 특화된 현재의 AI 시스템조차도 개인의 일상을 이토록 즉각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더 고도화된 지능이 등장했을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될 풍경을 미리 엿보게 한다. 보호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기술이, 한순간 통제의 얼굴로 전환되는 장면은 생각보다 일상 가까이에 와 있다.


정말 언젠가 AGI 시대가 도래한다면, 우리는 기계가 오판하지 않도록 사실을 분명히 전달하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를 지켜주는 존재로 여겼던 기술이 어느 순간 나를 통제하는 감시자로 전환되는 그 미묘한 경계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의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AGI라는 거대한 파도에 침몰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는 바로 지금, 이 서늘한 첫인상을 성찰하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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