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탄강 물윗길과 아빠의 등

by 애린 이종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이종희


"아빠, 저 바위는 누가 만들었어?"

"으응, 너 용암 알지? 그 뜨거운 용암이 만든 거야."

"참 신기하다. 용암은 손도 없으면서 어떻게 저런 걸 만들지?"

"용암은 손이 없어도 뭐든 만들 수 있단다. 너무 뜨겁고 힘이 세서 닿기만 하면 다 녹아버리거든. 그렇게 모든 걸 녹이면서 바위도 만들고 길도 만드는 거야."


​겨울바람이 알싸한 고석정 물윗길이었지만, 내 뒤를 따라오는 부녀의 조잘거림 덕분에 공기는 내내 미지근했다. 굳이 들으려 애쓰지 않아도, 부녀의 대화가 하도 정다워 자연스레 내 귀가 열렸다.


​꽁꽁 언 강물 위에 놓인 부표다리는 많은 구간이 얼음 속에 갇혀 고요했다. 출렁임 없는 길을 걸어도 마법을 지닌 용암이 조각한 바위들을 보노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다리가 제법 묵직해질 즈음, 마지막 고비인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겨우 한 계단씩 발을 떼고 있을 때, 어느새 부녀의 목소리가 등 뒤까지 바짝 붙어 있었다.


​"어휴, 아빠가 참 멋있네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계단 중턱에서 숨을 돌리던 중년의 여인들이 아이 아빠를 향해 한 목소리로 응원을 보낸다.


​"감사합니다!"


​아빠의 목소리는 여전히 씩씩했고, 아이의 질문은 쉼표가 없었다.

​"아빠, 힘들어?"

"응, 조금 힘드네."

"아빠, 저 아주머니들이 아빠 멋있대잖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


​요즘 아이들은 말도 참 예쁘게 한다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섰다. 숨을 고르며 몇 걸음 더 걷다 무심코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그만 멈춰 서고 말았다.

​커다란 등산용 아기 캐리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네다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 딸아이였다. 아빠는 그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 채, 그 긴 부표다리와 가파른 계단을 올랐던 것이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매표소 직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그제야 아빠의 등에서 아이가 사뿐히 내려왔다. 아빠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아이를 내려놓는 손길은 조심스럽고도 단단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 한참을 걸어 천근만근이던 내 다리가 마법처럼 풀렸다.


​손이 없어도 길을 만드는 용암처럼, 아빠라는 이름의 사랑은 얼어붙은 강줄기 위에도, 가파른 계단 위에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길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거친 삶의 골짜기에서도 우리가 다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건, 어쩌면 누군가 등 뒤에서 불어넣어 준 따뜻한 응원과 나를 믿어주는 사랑의 무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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