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푸라기

결이 닳는 쪽으로 흘러갈 테니까요

by 애린 이종희

보푸라기-이종희


뜨개질이 잘못된 줄도 모른 채

겹쳐 입은 옷이었나 봐요

포근한 결 사이에

가시가 숨어 있었던 줄은

살갗이 따끔거리고 나서야 알았지요


부대끼는 얼룩마다

얼굴은 몽글몽글 달아오르고

반듯이 펴 입지 못한 인공의 옷감처럼

등 뒤의 마찰 몇 번에

기억은 쉬이 해어졌어요

천장엔 낡은 인연 하나

걸린 채 바싹 말라가고요


보풀 제거기를 밀면

그 사람의 말들이 밀려 나와요

서걱서걱 깎여 나가는 믿음의 잔털

통 속에 수북이 쌓이는 건

끝내 버리지 못한 그늘이겠지요


한때는 체온을 나누던 올이었는데

이제는 걸치기조차 민망한 옷이 되었죠

뜯어낼수록 옷감은 더 얇아지고

솔기마다 찬 기척이 스며들어요


이제 말문 막힌 행간을

세탁기에 넣어둘 시간이에요

탈수되는 동안

기억도 함께 오그라들겠지요

아무리 털어내도 남는 올 하나

끝내 마음을 찌르겠지요


그래도 입고 나아가려 해요

결이 닳는 쪽으로

계절은 흘러갈 테니까요

울컥 일어난 보풀쯤은

끝내 무뎌질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집안일 때문에 멈추었던 시간을

다시 풀었습니다

늘 평안하세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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