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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

일상의 기록-4

by 이종희


두 달 전, 네가 학교 도서관에서 김태정 님의 우리 꽃 답사기를 발견하고는 불현듯 엄마가 생각나 빌려왔다며 내게 내밀었지.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거니와 벌써 내 마음을 알아차릴 만큼 성장한 네가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길에 들꽃이라도 만날라치면 나는 그런 것을 사진 속에 담아 오기 바빴었고, 그런 엄마를 너와 동생은 지루하게 기다려 주었지. 그때마다 엄마는 너희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엔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더구나.


작년 이맘때인가 싶다.

평소 아는 분이 추천해 주신 황대권 님의 야생초 편지를 구매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서점에 들렀을 때가 말이다. 그 많은 책 사이에 엄마의 옛 고향 집 어둑한 골방을 비추던 백열등처럼 꽂혀 있던 편지 묶음을 발견하고는 사춘기 소녀처럼 설레어 한 걸음에 돌아와 봉합 편지를 뜯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한 통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내 몸의 촉수는 오로지 그분의 야생초 밭이 있던 그 삭막한 교도소를 향해 내달리곤 했지.


황대권 님은 1955년 서울 태생으로 서울 농대를 졸업하고 뉴욕에 있는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제삼 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중 학원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하더구나. 1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던 중 2001년 6월 8일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국가기관의 조작극이었다고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 풀려나게 되었으나, 이미 그분은 황금 같은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고 난 후셨대.


살다 보니 이분만큼은 아니지만 예기치 않는 길에 엄마가 서 있을 때가 있곤 했지. 때로는 그 낯선 길이 천 길 낭떠러지 같기도 했고, 견고한 철벽이 둘러싼 막다른 골목 같기도 해서 쉽게 절망하며 접어버리던 꿈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른 체념에 대한 핑계일 뿐, 나름대로 새로운 경험은 나에게 좋은 공부가 되기도 했다는 걸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단다.


처음 그분도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억울하고 분해서 단식투쟁등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무려 5년 동안 시도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멍든 자신의 심신이었다고 하시더구나. 그래서 그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요법을 시작했고, 그것에 적합한 풀들에 관심이 기울면서 자연히 그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하셨지. 그렇지만 그것은 그분이 틈틈이 많은 책을 읽으시며 터득한 지식이 칠흑 같은 골방에서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튼튼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단다.


그런데 교도소란 곳은 '재소자들이 풀 속에 숨어서 탈옥할 수 있다' 하여 풀이 보이는 족족 다 뽑아 버리기 때문에 그곳에서 야생초를 기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고 하시더구나. 그래서 모범수인 그분이 특별히 교도소장의 허락을 받고서야 교도소 운동장 한쪽에 자신의 야생초 밭을 만들 수 있게 되셨지만, 처음엔 같은 재소자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고, 또 애써 가꿔둔 풀들이 구내 청소하는 재소자들로부터 모조리 뽑히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하셨지.


그분이 안동 교도소에 있을 때 일이란다.

우연히 날아온 구절초 씨가 교도소 옥상 쓰레기 더미 속에서 뿌리를 내려 이태 동안 꽃을 보게 되기도 하셨단다. 눈부신 태양이 축복처럼 쏟아지던 가을이 되어, 그 연보랏빛 구절초가 다발로 필 무렵이면 그분은 매일 그 옥상을 내려다보며 구절초의 안부를 확인하는 거로 하루를 정리하곤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이듬해 봄, 교도소 정기 감사를 앞두고 대청소를 하면서 구절초의 흔적을 더는 찾을 수가 없으셨대.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있던 글 ‘하느님, 저 잘나 빠진 인간들의 결벽증을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를 읽고는 내 심장도 덩달아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 절제된 공간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절망스럽고 서러운 일인지 짐작하고도 남은 독백이었어.


교도소에서 아무리 긁어 보아도 20여 종을 넘기지 못하는 야생초를 무려 100종이 넘게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장기수들에게 일 년에 한 번씩 사회적응 훈련으로 ‘사회참관’ 이란 게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에 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거와 비슷한 거란다. 그때 보통 재소자들은 사람 구경 하기에 바빴는데 이분은 땅만 보고 다니셨대. 그래서 못 보던 풀만 나왔다 하면 뽑아서 주머니에 넣고 돌아와 교도소에 있는 그분의 텃밭에 옮겨 심으셨단다.


그렇게 해서 키운 그 많은 야생초는 그분으로부터 하나같이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탁월한 관찰로 보여주던 그분 사색의 세계에선 이것이다 싶게 끌어당기는 마력이 편지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지. 차갑고도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확 트인 바다가 그분 앞에 다가왔을 것을 생각하니 그 앞에 엄마가 서 있는 듯 절로 가슴이 뭉클하더구나


그분이 심혈을 기울여 관찰하고 연구한 야생초 편지를 세상 밖으로 부치신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의 생애에 가장 큰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야생초를 하나의 생명으로 여기게 되면서 끈질긴 인내와 노력이 함께 한 관찰일지로 마침내 오색 무지개를 만났던 만큼 지금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발견하지 못한 희망의 불씨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함이셨을 거야.


엄마가 들꽃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 때부터였단다. 한번 떠난 고향은 너무 멀어 쉽게 돌아갈 수도 없었지. 그래서인지 유년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낯익은 풀들이 우연히 라도 마주치게 되면, 꼭 옆집 살던 친구의 얼굴을 본 것 같이 반갑고 정다워서 어딜 가면 습관처럼 풀밭에 가 있곤 했지. 언제 보아도 풀꽃들은 소박한 기품이 있어 그 편안함에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단다.


한국을 떠나올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 고운 우리나라 들꽃을 어린 너희에게 다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단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식물도감을 짐 속에 꾸역꾸역 넣어왔다만 들꽃에 대한 갈증은 쉽사리 풀릴 것 같지가 않구나.


그래, 엄마가 보았던 풀꽃이 우리나라 지천으로 만발한 날 언젠가 우리는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러기 전에 엄마는 너희와 좀 더 넓은 세상을 배우며 들꽃처럼 소박하고 끈질기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순응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그것은 황대권 님이 옥중에서 일궈낸 야생초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엄마는 말하고 싶다.


(2004.6 베트남 호찌민 반탁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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