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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웃어도 봄이다

일상의 기록-1

by 이종희


프린트 잉크를 리필하기 위해

동네 PC 가게에 들렀더니 하필 외부 출장 중이다.

그냥 돌아가기엔

피부에 와닿는 바람이 너무 달달해서

걸음을 좀 더 먼 곳까지 옮기기로 했다.


철탑 길과

예전에 살던 마을을 스쳐 시장에 도착했다.


스쳐가는 사람들 표정과

걸음의 속도만 보아도 봄이다.

그리고 가게의 옷들과 노점의 채소들과

화원의 꽃들만 보아도 봄이다.



왜 꽃을 보면 절로 화사해지는지

설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화원의 꽃들이 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쪼그려 앉아

보라, 노랑, 하늘, 빨강과 눈맞춤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가벼운 부딪침이 내 어깨를 스치는 것이...


돌아보니 웬 중년의 아낙이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긴 한데

내 표정은 너무 아득했는지,


“작년 여름에 우리 보았잖아요?”

“ 아~~ 그 우산!”


그랬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급하게 들어간 옷가게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말에

한 참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던

그 가게 주인이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많이 쇠약해 지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바람에 지난 겨울 내내

가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아버지도 어느 정도 회복하시고

계절을 놓친 옷들을 처분하기 위해

가게에 나왔다며,그래도 단골손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물건이 거의 빠졌다고 한다.



가게에 도착해 보니 손님 몇 분이

주인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세상에, 작년에 저 방에

아버지 모셔 놓고 장사하더니

겨우내 가게 문을 닫았지 뭐예요.

자식이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누구 하나 도와주겠다는 형제 없이

혼자 독박 간호 한다니까, 쯧. 쯧. 쯧”


한 손님의 말도 무색하게

주인의 목소리는 너무 밝고 친절하다.


마음속의 소란은 얼굴로 나온다는데

저 여인은 어디에 마음을 비우고 오길래

저리도 햇살일까...


이 불황에

속사정을 알고 찾아온 단골들이나

제 안의 맑은 기운을 나누는 그녀나

모두 봄이다.


쇼핑백을 들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갑자기 맑아져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수선화를 구입했다.


그 후

매일 나는 똑같은 감탄을 한다.


"아유~~ 예뻐라! "



#일상 #수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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