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솔에게

담장 틈새에 싹튼 소나무 유묘

by 애린 이종희

푸른 솔에게


꿈을 품고 날아오른 작은 솔씨가 하필 멈춘 곳은 흙 한 줌 없는 섬마을 빈집 담장 틈새였다.


몇 년째 성장을 미룬 채 비쩍 마른 해송을 만날 때마다 뿌리 밑동에 흙을 채워주곤 했지만, 다시 찾아가면 그 자리는 비바람에 씻겨 너무 깨끗이 비어 있었다. 더 좋은 자리로 옮겨주고 싶어도 이미 내린 뿌리가 다칠까 봐 선뜻 손댈 수 없었다.


오래전 나 역시 목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무기력하게 살아야 했다. 사방을 에워싼 콘크리트 벽은 바깥세상을 꿈꾸지 못하게 했고, 나는 그 안에서 체념하며 지냈다. 습기 없는 공기와 냉정한 색의 벽면이 생활을 갉아먹던 날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새로운 바람이 스며들었고, 나는 그 바람을 타고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어제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게 작은 문을 열어주었다.


어쩌면 그 척박한 자리가 내게 가장 소중한 배움터였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기류를 만나도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무언의 가르침이 있었는지 모른다.


"솔아 솔아 예쁜 솔아. 그 길 끝에서 땅을 박차고 힘껏 올라 보렴. 높이 올라설수록 더 많은 풍경이 펼쳐질 거야. 그중에 네게 꼭 어울리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