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피는 꽃

무화과

by 애린 이종희

안으로 피는 꽃


나는 고요와 적막을 좋아한다.

바람조차 흔들지 않는 상태,

무형의 그늘이 최적화된 곳으로

삶이 뻗어 간다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처럼 이기적인 나무도 없다.


가끔 내가 추구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지를 늘리는 나 자신과 마주할 때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들추고 싶지 않은 열등의식과

어설픈 지적 허영심으로

내 발등을 찍은 탓에

아프다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게 굴러 높은 가지에 올랐건만,

조금이라도 틈을 보일라치면

말벌들은 여지없이 쏘아댔다.


덕분에 나는 어떤 폭우에도

자유로울 수 있는 수로를 만들어

빈틈을 찾아내 수시로 난처하게 하는

예민한 눈초리를 대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 저지선이 무너질 때가 있다.

만지면 금방 바스러질 것 같은

별일 아닌 일에 발목이 잡혀

나는 깊숙한 곳에 숨겨둔 웃음을 꺼내

매운바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하루치의 볕이 소멸되는 가지에 기대면

곧 터져버릴 듯한 감정을 억누르던

그날의 서늘한 행적이 다가와

내 옹졸한 심사를 건드린다.

넓은 잎 아래 고인 어둠을 들출수록

힘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이유를 만드는 끝없는 소란 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달콤한 추억을 피워내는 것,

그것이 바깥으로 꽃을 피울 수 없는 이유임을 깨달은 순간.


비로소 무화과는 껍질을 깨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