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_눈사람 자살사건

MAR 30. 2018

by AERIN



눈사람 자살사건 by 최승호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 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웃프다가

자살해버린 눈사람을 말릴 수 없을 것 같아서

멍하게 바라만 본다.


나쁜건가..

쉬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웃픈데
자살하려는 눈사람을 말려야 하는데
안아줄수 없는 걸 아니까,

마냥 바라만 본다.

미안,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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