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잘 놀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내가 돌도 되기 전 아기 때 엄마가 할머니와 함께 친척들 사주를 물으러 경상도에선 가장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신당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우리 오빠를 보더니 "야는 천재다." 로 입을 땐 점쟁이는 가족 친지 이 사람 저사람 하나씩 생년월일을 넣어 운세를 알려주었다. 마지막에 신당을 떠나기 전 애기것도 봐 달라고 하는 우리 엄마의 부탁에 그 점쟁이는 내 생년월일을 보기도 전에 인물만 보고선 "야는 못 먹어서 탈, 못 놀아서 탈이다. 잘~~ 산다 걱정할것 없으니 아나 잘키워라." 하고 한마디 뱉어 주었단다. 우리 엄마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으시고 그 말은 먹을 것 충분하고 즐길 것 충분하게 금전 구예받지 않고 잘 산다는 말이니 앞일 걱정하지 말라고 해석을 더해 힘든 일이 있을 때 마다 나에게 상기시켜주셨다.
어쩌면 난 그 점쟁이 말 대로 "못 먹어서 탈, 못 놀아서 탈"인 삶을 살고 있다.
학창시절 엄마는 나에게 늘 잔소리를 했다. "왜 너는 공부 안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니?"
난 멍때리기가 좋았고, 공상이 좋았고, 소설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게 좋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선 학원에서 배운 곡을 10번 연습 해 가는 것 보단 오늘 기분을 피아노로 마음껏 연주해 보고 거기다 가사를 붙여 내 노래를 만드는 것이 좋았다.
인기가수의 노래에다 가사만 바꿔 내 이야기를 담아보기도 하고 종이인형을 사서 잔뜩 오려 방을 가득채우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직접 스케치북에 종이인형 옷을 디자인 해서 색칠해 가위질을 했다.
친구들과 고무줄을 할 때 실력이 있어야 잘 뽑히니 그 실력을 키울려고 아파트 6층에 살면서 의자에 고무줄을 묶어 고무줄 실력을 다듬다가 본의아니게 층간소음을 일으켜 아랫집 아주머니께서 항의를 하자 보다못한 오빠는 내 고무줄을 가위로 싹둑 자르고 종이인형을 모두 낚아 채 쓰레기통에 집어 넣는 일도 있었다.
가족이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오후엔 짐방에 들어가 보물찾기 하듯 오래된 장농과 가방 속 짐을 하나하나 꺼내 오랬동안 바라보고 다시 정리해 놓는 것도 재미있었고 십대가 되어 PC통신을 할 땐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거실에 설치하신 탓에 마음껏 체팅을 하거나 나우누리 천리안 카페에 접속을 할 수 없게 되자 우리 아파트 앞 기차가 지나가는 세벽 한시 반에 맞춰 잠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기차 기적소리 시간에 맞춰 컴퓨터 본채를 키고 PC통신 전화연결소리(삐삐 삐삐삐 삐삐삐삐 취-취-)를 기차 바퀴소리에 숨겼 접속했다. 물론 커튼을 쳐서 배란다창문을 통해 모니터 불빛이 안방 창문으로 비춰지는 것도 완벽히 차단했다. 세벽 4시에 무궁화 열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내가 본채를 끄는 시간이였다.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젝스키스 팬클럽 미팅에 나가기 위해 혼자 기차를 타고 대구역까지 갔다 오기도 하고 고1에는 여름방학 한달 내내 연극연습(써클활동)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에겐 영어 연극 써클이라 영어를 배울 수 있다고 설득을 했으나 내 동기 아이들이 공부한다고 작은 배역을 받길 원할 때 난 주인공이 되겠다고 자처해서 나섰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대사를 영어로 외외야 해서 곤혹을 치뤘다.
고2 때 미국에 이민을 오자 놀 거리가 널려있었다. 밤 11시 50분까지 야자를 하다 온 나에게 낮 2시 반에 마치는 미국의 고등학교 생활은 그야말로 천국이였다. 노는데 영어가 딸리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친구가 대학가기 위해 만든 베드민턴 클럽에 가입을 해서 방과 후 연습을 하고 방학때 대회에 참가를 하기위해 친구들과 차를 타고 운전해서 3시간 반 떨어진 지역으로 가 2박 3일간 네셔널 베드민턴 대회에 참가를 했다. 파워팀이란 담배, 술, 마약을 초등학생들에게 하지 못하게 권유하는 모범고등학생들의 모임에도 참여해 지역 초등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진행하고 짧은 연극도 보여주고 엑티비티와 퀴즈를 통해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기도 했다. 미술 선택과목으로 컴퓨터 그래픽 수업을 선택해서 들으면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션을 배웠다. 음악수업으론 통기타 수업을 들었고 오디션을 통해 실내 밴드에 들어가서 마림바를 쳤다. 지역대회에서 1등을 한 우리팀은 선생님, 친구들과 아틀란타에서 열리는 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세차를 해서 참가비용을 마련했고 미동부 경연대회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네셔널 클럽에선 회장을 맡으며 인터네셔널 나잇 행사를 주관하며 첫 해에는 어릴적 배운 부채춤 독무를 췄고 둘째해엔 지역 한인 언니들, 친구들과 함께 사물놀이 공연을 했다. 호텔 메니지먼트 수업을 들으며 힐튼과 메리어트에서 직접 실습을 했고 그 수업을 통해 서비스업 경연대회에 나가서 2차 실기시험에선 영어실력이 딸려 떨어지긴 했으나 1차 필기시험에선 지역 3위를 했다. 노숙자 보호센터, 한국인 입양아 단체, 재향군인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했고 매주 한인 문화센터에 나가 풍물을 배웠다. 노숙자를 위한 걷기대회에 참가를 해 DC 거리를 걸었다. 최종 오디션에선 떨어졌지만 학교 뮤지컬에 오디션에 참가해 2차 오디션까지 붙어 한 주말을 하루종알 학교에 모여 춤과 노래를 연습하기도 했다. 엄마는, "왜 너는 공부를 안하니?" 하고 다시금 나를 다그쳤지만 영어단어를 외우고 SAT(대학능력시험) 문제집을 푸는 대신 나는 도서관에 가서 내 수준에 맞는 초등학생용 권장 추천도서를 빌려와 미국 첫 여름방학 3달 동안 40권의 책을 읽었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읽고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못하는 영어로 친구들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방과후 활동과 학교 활동을 한 것이 내가 미국 고등학교 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대학을 입학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쓸데없는 짓 같던 활동 하나하나가 대학 입학 원서에서 한줄한줄 내 경력이 되었다.
'난 미국체질인가봐, 난 한국에 있었더라면 4년제 대학엔 못 들어 갔을꺼야.' 란 말을 난 입에 달고 산다. 겸손이 아니다. 난 주입식 교육과는 맞지가 않다.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내 모습도 어릴적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돈벌고 8am-5pm 에 퇴근하는 직장생활은 나와 맞지가 않다. 대학 졸업 후 두 아이가 어릴 때 까진 직장생활도 해 봤으나 다람쥐 쳇바퀴 돌듯 했던일을 무한반복 하는 일은 나와 맞지않다. 나의 생채리듬과는 상관없이 아침 8시까지 출근 하고 5시에 퇴근 하는 건 더더욱 맞지가 않다.
Covid-19 전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골프레슨을 듣고, 교회에서 하는 무료 요가/필라테스 클레스를 다니고, 36살에 새로운 악기를 배운다고 첼로를 배우러 다니는 나를 일하는 엄마들은 부러워 하기도 한다. 교회 ESL 수업도 가서 봉사활동으로 외국인을 가르치기도 하고, 아줌마들 성경공부도 나가고, 학교 PTA 활동도 하고 그렇게 지내면 한주가 어느새 쓱 지나간다.
집에서 애를 키우며 논다고 게으른 것은 절대 아니다. 텃밭을 가꾸고,빵을 굽고, 남편 도시락을 싸고, 거의 모든 음식을 원 재료로 부터 만들어 먹고, 아이들 피아노를 직접 가르치고, 학원이나 과외 하나 없이 집에서 직접 아이들의 공부를 직접 가르친다. 코바늘 뜨게질을 해 집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할로윈이나 학교 행사를 위해 아이들 커스튬을 직접 만들어준다. 중간중간 주식거래도 해야하고 매일 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경제, 정치 뉴스를 읽어놔야 주식거래의 흐름이 잡힌다. 머릿속엔 늘 시도해 보지 않은 음식과 빵, 만들어 보지 않은 프로젝트 들이 가득하다. Covid-19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져 마음과 손이 늘 바쁘다. 집에만 갇혀있는 아이들과 우리의 건강을 위해 저녁식사 후엔 공원에서 거의 매일 밤 온가족이 테니스를 치거나 그린웨이를 걷거나 뛰기 시작하니 요즘 내 삶은 Covid-19 이전의 삶보다 더 바빠지고 알차졌다.
진정한 21세기는 2020년 2월에 시작했다고 어느 학자가 이야기 했다. AI의 등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을 하고 10년이내 사라질 직종 Top 10, AI가 대체 할수 있는 직종 Top 10등을 검색하는 동안 왜 AI 가 사람의 일을 대신 해 주는 동안 내가 어떻게 재미있게 신나게 놀지는 생각하지 않는 걸까?
난 어릴적 피아노와 한국무용을 배우다가 아빠의 반대로 3학년이 되자 그만두어야 됬다. 이유인 즉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으니 이젠 공부에 전념할 시간이란다. 나와 비슷하게 한국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미취학 아동시절과 초등학교 저학년에 집중적으로 예체능 수업을 받다가 전공할 것이 아니라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피아노를 접고, 미술을 접고, 태권도를 접고, 발레를 접고, 또 많은 꿈들과 재미와 흥미와 창의성과 다양성을 접고 현실과 입시를 직시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공무원이란 이상한 꿈을 꾸고 건물주를 동경하는 삶이 당연한듯 획일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세계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주먹도끼에서 반달칼로 발전하고 땐석기에서 간석기로 발전하고 바늘을 발명해 가죽으로 옷을 지어입고 그렇게 인류가 발달한 이유는 어제보다 더 많은 음식을 배불리 먹기 위함이였어. 그런 문명의 발달로 먹을 것이 많아지고 정착생활과 농경생활을 통해 잉여생산물이 생기자 계급이 생기게 되었지. 계급이 생겨 먹을 것이 풍부한 귀족들은 이제 배가 부르니 같은 음식재료로 어떻게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새로운 음식과 저장 방법이 생겨났고, 옷이 몸을 보호하고 채온을 지켜주는 function에 충실한 것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고 계급이나 성별을 구분하는 수단이 되었어. 그릇 또한 단순히 음식을 담고 조리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 하게 되고 집도 잠자고 생활하는 공간의 역할만이 아닌 아름다움 조형미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지. 배가 부르니깐 기분좋아 노래가 나오고 시가 나오면서 음악과 문학이 발달하고 노는시간에 재밌게 잘 놀기위한 예술이 발달한거야.
그러다 먹을게 부족하거나 다른 집단에 먹을 것이 더 풍부하다면 그걸 차지할려고 전쟁을 일으켰어. 전쟁에서 이기거나 더 많은 식량을 수확할려고 제련기술이 발달을 했지. 그렇게 싸우다가도 점점 더 먹을게 많아지면 무기에도 날카로와서 사람을 공격하거나 단단해서 나를 보호해주는 역할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보석이 박히고 갑옷과 방패에 문양이 박히면서 아름다움이 표현된단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들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건 충분한 음식과 물이지만 그것이 충족된 이후에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가장 큰 부분은 아름다움을 표현 할 수 있다는 것,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즐기기 위해 잘 노는 것이란다. 엄마는 너랑 네 동생이 잘 노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 음악, 미술, 문학, 체육, 영화, 춤, 그런 다양한 매채를 통해 너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잘 공유하고 남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 그럴려면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것은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배가 고프면서 잘 놀기는 힘들거든. 그럴 땐 잘 놀기보단 에너지를 세이브해야 하니깐. 미국에 처음 온 청교도들이 옷에 단추를 몇개 어디에 다는지 까지 세세하게 아주 복잡한 법을 가지고 게으름 마저도 죄라고 한건 당장 먹을게 부족해서였어.
나에게 이런 수업을 받은 큰 딸을 데리고 작년 여름 4학년을 마치고 경주 박물관에 방문하여 내가 "여기 신라의 석상들, 건축물, 왕관과 유물들이 있는데 이건 신라라는 나라 이곳이 어땠음을 이야기 해 주니?" 하고 물었을 떄 큰 딸은 " 여기가 주위의 다른 나라에 비해 먹을 것이 풍부했고 나라의 힘이 세서 침략받지 않을 정도라 먹고 사는데 힘을 쓰기 보단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더 힘을 쓸 수 있었다는 걸 알수 있어요." 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한국은 세계 경제 강국 12위 국가이다. 한국은 더이상 가난하여 먹고 살 것을 걱정 하는 나라가 아니다. 아이들이 학교대신 일자리로 떠밀리지도 않는다. 교육의 기본권이 보장이 되고 의료 복지가 세계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선진국이다. 이런시점에 한국이 4차산업 혁명을 바라보며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한국인은 세상 어느민족 보다 잘 노는 사람들이다. 옛날부터 음주가무에 능했고 술에 취해서도 술잔이 도는 사이 시를 한편씩 턱턱 지어내는(포석정에서 알 수 있듯) 풍류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노래방 문화가 발달했고 때창을 부르며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로 묶이며, 신입생이나 신입사원 소개에선 노래를 한곡 하거나 장기자랑을 하는게 당연한 문화다. 회식을 하면 3차, 4차까지 술의 종류, 안주의 종류, 분위기까지 달리 해 가며 무대와 테마를 바꿔가며 파티를 하고 (마치 콘서트에서 1부, 2부 무대와 조명, 무대효과와 분위기가 바뀌듯) 술을 마시면서 하는 게임조차도 무궁무진하다. 심지어는 엠티를 가면 사람들만 있으면 카드 한장, 게임 도구 하나 없이 우리몸에 부착된 손과 입만 가지고 공공칠 빵, 디비디비 딥, 마피아 게임, 아이엠 그라운드 등등 밤세도록 놀수 있는 게임들이 즐비하다.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가서도 세벽부터 일어나 현지인보다 먼저 돌아다니며 아침 식사 가게가 열기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놀이동산에 가서도 자유이용권의 뽕을 뽑으며 놀줄 안다. 우리가 얼마나 잘 노는지를 증명해 낸 것이 싸이이고, BTS이고, 기생충이고, 킹덤이고, 노는게 제일 좋은 뽀로로 이고, 팽수고, 핑크퐁이고, 먹방이고, YouTube 인기 호스트 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잘 하는 걸 하면 된다. 얼마나 우리가 잘 노는지 자랑하고, 남들도 우리처럼 잘 놀기를 따라하도록 꾹꾹 찔러보면 된다. 쓸데없는 짓을 계속 창조해 내는 것, 쉬는 시간이 모자란 것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4차 산업을 준비한는 우리의 자세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간다. 이젠 탈 학교 시대다.
지방 소규모 사립대학들은 콘텐츠에서 유명 대학의 온라인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고 문을 닫을 것이다.
잘 놀 준비가 된 자들이 21세기 뉴 노멀을 지배 할 것이다. 문화를 이끌어가는 자들은 항상 남들 보다 한발 먼저 배를 채우고 잘 놀았던 자들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놀이를 생각하고 창조해 보자. 흥이 끓어 오른다. 이제 문화를 이끌어 가는 축이 이동했다.
자 이제 우리의 무대에서 한판 잘 즐겨보자.
Are you R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