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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Sep 22. 2020

16화:두 명의 영재를 키운다는 것

영재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미국은 주 나름대로 법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공립학교에 들어갈 경우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영재라고 이름을 붙여주며 따로 영재를 관리해 준다. 내가 사는 테네시 주는 초등 3학년이 되면 상위 1~2% 아이들을 Gifted and Talented (GT) 학생이라고 분류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규 과정 안에서 GT학생들만을 위한 수업을 따로 해 준다. GT반 선생님은 다섯여섯 학교마다 한분이 계신데 매주 학교를  돌아가면서 방문해 수업을 하신다. 선생님이 오시지 않는 주는 화상채팅을 통해 수업을 하고 GT수업이 없는 날에는 일반 아이들이 컴퓨터로 수업하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GT반 아이들은 매일 GT반 선생님이 주신 과제를 한다. GT반 수업은 성적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다음 해 GT학생을 뽑는 자료로 사용된다.


GT학생으로 분류되려면 우선은 성적을 보겠지만 성적만으로 아이들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이 All A 가 아니라 하더라도 아이가 영재 기질을 보일 경우 담임 선생님이나 학부모 또는 학생 본인의 추천으로 GT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나라에서 인정해 준 영재다.


첫째 꾸미는 영재의 기질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더라도 딱 영재다. 만 18개월 전에 알파벳 소문자 대문자를 다 알았고, 3살엔 1학년 수준 10 이하 덧셈 뺄셈을 했고, 유치원 입학 시절엔 4-5 학년 용 책을 술술 읽었다. 만 10개월쯤부터 기저귀가 젖으면 나에게 불편하단 표현을 했고 돌이 되어 걷기 전에 내게 불편하단 표현을 하여 아기 변기에 안혀주면 소변을 보기까지 했다. 앞의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처음 달력으로 숫자를 알았던 날, 마침 그날이 장날이라 집 앞 시장 골목에 자동차가 쭉 주차돼 있었는데 그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을 일일이 읽어가며 즐거워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고 배우는 그 자체를 즐긴다. 뭐든 내가 꾸미에게 시도해 보려고 접근할 때 다 거부감 없이 적극적으로 즐겁게 받아들인다. 모든 걸 쉽게 배우고, 기억력이 아주 좋다. 한 번은 무용학원에서 무용 발표회를 앞두고 안무를 배우는 첫날, 마침 발목을 접질려 연습을 몇 주 간 못하게 되었다. 학원 규정상 연습에 하루라도 빠지면 학기 말 발표회 때 참여를 못하게 되어 있었는데 원장 선생님께선 꾸미라면 눈으로만 보더라도 연습하는 아이들 만큼 순서를 다 외우고 똑같이 출 수 있을 꺼라며 연습에 나와 구석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고 모든 학생들 앞에서 말씀해 주셨다. 지금까지 홈스쿨링 한 기간을 빼고 정규학교에서 수업한 기간만을 보면 모든 과목에서 모든 학기마다 All A를 받았다.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수업에도 참여를 적극적으로 잘한다. 한마디로 모범생 형이다. 그래서 밖에 나가면 어른들에게 귀염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둘째 기쁨이는 다르다. 유치원이 되기 바로 직전 여름방학이 되어서야 글을 읽을 줄 알았다. 2학년이 끝날 때(만 8세)쯤이 되어서야 밤 소변을 가릴 수 있게 되어서 그 전까진 아침마다 이불빨래와 샤워를 시키느라 나는 하루를 지치면서 시작해야 했다. 아이가 크면서 소변 양도 그만큼 많아진 탓에 어린이용 기저귀론 감당을 못해 환자용 병원 방수 매트리스로 바꿔줬다. 그래서 아직도 기쁨이는 환자용 방수 매트리스를 쓴다. 성격은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태그가 있는 옷을 입지를 못하고 긁어대는 탓에 목 뒤엔 상처가 나서 흉터가 되어있다. 앙말 안 봉제선 때문에 일 년 내내 양말을 신기려면 애와 싸움을 해야 되고 운동화도 사이즈가 2개쯤은 큰걸 신어야 별 말이 없다. 조금만 죄어오면 작다고 난리를 쳐서 아들인 기쁨이는 누나인 꾸미보다 더 자주 신발을 사 줘야 된다. 단추로 잠기는 셔츠는 신축성이 없어 답답해 못 입고 청바지도 못 입는다. 그래서 항상 티셔츠, 운동복에 크락스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학교에 입학하니 이것저것 사고를 하도 많이 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선생님께 전화나 문자가 오는 건 예삿일도 아닌 게 돼 버렸다. 미국 초등학교에서 문제아가 되면 교장실에 가서 수업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들을 통해 배웠다. 그것도 심해지면 pack room이란 곳에 가서 며칠간 혼자 수업을 받아야 된다는 사실도. 그중 대다수가 그냥 선생님이 지적하면 죄송하다고 하고 끝내면 될 것을 대답을 안 하거나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그러는 반항적인 모습 때문에 가중처벌이 되어 일어나는 일이었다. 쉬운 걸 시키면 쉽다고 하기 싫다고 그러고 어려운 걸 시키면 못한다고 난리를 친다. 잘하다가도 한번 실수를 하면 짜증을 내고 안 한다고 버팅긴다.  말로는 엄청 종알종알 잘 떠들다가도 그걸 글로 쓰라면 모르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종이를 찢어 꾸기던가 연필을 부러뜨리던가 하며 거부반응을 보인다.  진단평가 시험을 보면 학기 초 보다 학기 말에 점수를 덜 받기도 하고, 그림을 참 잘 그린다 싶은데도 미술시간엔 선생님의 지시를 따라 하지를 않아 A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유치원 이후론 중요 과목에서 A를 받아 본 일이 거의 없다. (참고로 아이들 학교는 성적이 참 후한 편인데 A, B honor roll을 받는 아이들이 전체 학생의 반 정도다) 새로운 걸 접할 땐 두려워하고 약속한 것이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지켜질 수 없다거나 그날 하루 계획한 스케줄이 달라져야 할 상황을 접할 때면 불안감을 보이거나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짜증을 내고 때를 쓴다. 그래서 뭔가 아이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며 새로운 곳을 가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는 게 힘들다. 4학년이지만 아직 운동화 줄을 잘 못 묶어서 줄을 묶을 필요가 없는 운동화를 골라서 사 줘야 한다. 한 동안 이런 모습들 때문에 ADHD가 아닐까 의심되어 상담을 받기도 했다. 



전국영재아동협회에서 말하는 영재아동의 특성을 보면 우리가 흔히 영재아동이라 할 때 쉽게 접근하는 인지적 능력은 4가지 영역 중 하나일 뿐이다. 


기쁨이는 저런 많은 단점이 있어 나를 힘들게 하는 면도 있지만 유머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말장난이나 몸동작 만화를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을 웃길 줄 안다. 유치원 첫날 쭈뼛쭈뼛하며 불안해하며 심지어 울음을 터뜨린 아이들 속에서 기쁨이는 아침식사를 하며 우유로 가글을 하고 시리얼을 소리 내며 웃기게 (어른들이 볼 땐 지저분하게) 먹자 울던 아이들도 곧 울음을 멈추고 웃으며 기쁨이 처럼 따라 하며 아침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이해하는 딸 같은 아들이다. 내가 몸이 좀 아프거나 맘이 불편할 땐 말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알고선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고 뽀뽀해 준다. 그림을 잘 그린다. 유머스러운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고 포켓몬 카드처럼 자신의 이름을 넣어 카드를 만들어 각 캐릭터에다 이름과 파워를 정해주고 이야기를 만들 뿐 아니라 자신이 만든 카드들로 포켓몬 카드처럼 게임을 한다. 1학년 때는 '캡틴 언더팬츠'에 나온 아이들처럼 자신이 만든 만화를 집에서 복사해서 발행 해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팔았다. 1학년이 돈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안 기쁨이는 구독자 친구들에게 돈 대신 학교에서 선행을 할 때 모아 학교 마트에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학교 포인트로 지불할 수 있도록 해 줬다. 그래서 학교에서 문제아인 기쁨이는 자신이 모은 포인트는 별로 없었지만 학교 마트를 갈 때면 여느 아이들처럼 선물을 포인트로 교환 해 올 수 있었다.  청음이 뛰어나 음악을 가르치면 듣고 따라 하기를 잘한다. 심지어 화음까지도. 그래서 피아노를 가르칠 때 3년이 지나도 악보를 잘 못 읽는 모습을 보였다. 두 시간이 넘게 꼼짝없이 앉아 거미가 거미줄을 쳐서 날파리를 잡아 동동 감아 액을 빨아먹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다른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는데 학교 쉬는 시간에 온라인 게임을 오프라인 게임으로 개조해서 새로 게임을 만들고 친구들과 룰을 가르쳐 주고 함께 게임을 한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학교에서 조류에 대한 리서치를 하라고 시키니 어느 이름도 잘 들어 보지 못한 섬에 살고 있는 멸종위기종 새를 고르고, 광합성 작용에 대해 배우고선 식물 리서치를 시키면 몸이 투명해 광합성 작용을 못하고 기생해서 살아가는 식물을 찾고, 위인전에 대해 배운 후 인물을 정해 위인전을 써 보라 하니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4D 큐브인 Tesseract를 처음 발표한 수학자를 골라 프로젝트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Charles Howard Hinton 는 '시간의 주름'에 나오는 주인공의 남동생 이름(차럴스)이기도 했다.(우린 이 프로젝트가 있기 몇 년 전 '시간의 주름'을 아주 즐겁게 읽었고,  그 이듬해엔 디즈니에서 나온 영화도 재미있게 봤었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만큼 컴퓨터 작동도 잘하는데 미디어 수업을 하는 중 기술적인 도움이 필요한 친구나 선생님이 있으면 자신이 나서서 고쳐주고 도와준다. 2년 전 외갓집을 방문했을 때도 외할머니께 컴퓨터 사용법을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었다. 몇 번이나 똑같은 걸 물어보아도 짜증도 내지 않고 오히려 아주 즐거워하며 자신이 아는 것을 할머니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 주었다.


모범생인 꾸미가 항상 키우기 쉬운 건 아니다. 규칙을 따르는 걸 엄청 좋아하는 꾸미는 그 수준이 지나쳐 남이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한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따지고 들어 선생님이나 친구들 그리고 나와 남편, 특히 기쁨이가 힘들어한다. 2살 아기 때 기저귀를 땐 이후 밖에 오래 외출해야 하는 날 기저귀를 채우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엉엉 운 적이 많다. 야외로 놀러 가서 소변이 급해진 꾸미에게 우리는 화장실을 빨리 찾을 수 없으니 그냥 기저귀에 누던지 저기 나무 밑에 누고 오자고 하니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교우관계가 나쁜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는 몇 명뿐이다. 교회에서 야영을 가면 친구를 사귀기보단 그룹을 지도하시는 선생님과 절친이 되어 돌아온다. 아마도 자기 나이 또래 친구들과는 관심사가 서로 맞지 않아서 일 테다. 만 3세도 안된 아기가 저녁만 먹고 나면 밤 10시가 되도록 몇 시간씩 계속 산수문제를 풀자고 때를 써서 당시 주말부부였던 나는 다음 날 5시 반에 일어나 갓난아기인 기쁨이와 꾸미를 혼자 챙겨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했기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었다. 몬테소리에선 아이가 집중하면 스스로 그 집중이 사그라 질 때까지 계속 아이가 그 활동을 하도록 지지해 주라고 하지만 나는 꾸미에겐 시간을 정해 놓고 '시간 다 됐어, 내일 또 하자' 하며 단호하게 책을 접어야 했다. 책을 읽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만 책 읽고 자라고 구슬려야 한다. 잠 안 자고 책 읽냐며 다그치며 새벽에 일어나 다시 아이 방 불을 꺼 준 다음 날 아침 못 일어나는 아이 곁엔 손전등이 책과 함께 놓여있기도 하다. 우리 집이 아직 부자는 아니어서 아주 좋아하는 책, 또는 지역 도서관에 없는 책이 아니고서는 무조건 도서관을 이용하라고 한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일 년에 족히 200-300권의 책을 읽는 것 같다. 그것도 그림책이 아닌 한 권에 400-600 페이지가 되기도 하는 두꺼운 책들을 포함해서. 한 번 도서관에 갈 때면 에코백 2-3개에 가득 책을 빌려온다. 그래서 우리끼리 우스겟 소리로 또 도서관을 털고 왔다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빠지자 3년간 한 주도 안 쉬고 1편에서 7편까지 매주 영화를 돌아가면서 보고 책도 모든 권을 4번쯤 읽었다. 그것도 너무 해리포터에 빠저 있어 내가 다른 책을 한 권 읽으면 해리포터도 한 권 읽을 수 있다고 룰을 정해 다른 책과 병행하면서 읽었는데도 말이다. 4학년 때는 쉬는 시간 놀이터에 나가서도 책을 읽는다기에 담임선생님께 부탁 해 운동장 1바퀴를 걷고 나면 책을 읽어도 되도록 허락해 줬다. 이를 2개나 뽑는 수술을 하느라 금요일 오후 수업을 못 들어갔는데 월요일 오후까지 마처야 하는 프로젝트가 그 수업에 있었다는 사실을 월요일 수업에 들어가서야 알아낸 꾸미는 내가 선생님께 양해 편지를 써 주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엉엉 울면서 그건 싫고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마쳐서 정정당당하게 점수를 받고 싶다고 한다. 그 프로젝트는 월요일 저녁 6시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매일 감점이 적용되는 데다 부모 도움이 있을 경우 감점이 적용된다고 쓰여 있었다. 결국 마감 1,2 분을 남겨두고 프로젝트를 제출한 꾸미는 만족감에 씩 웃는다.



오랫동안 영재아동과 학습장애를 연구해 오신 린다 크레거 실버맨(Linda Kreger Silverman)은 영재아동 또한 정신지체아동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이 인정하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다른 한쪽 끝의 아이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어릴 적에 정신지체아가 커서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어릴 적에 영재성을 나타낸 아이가 크면서 영재성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나갈 뿐. 

그래서 영재아동들 또한 정신지체아동들처럼 아이들이 자라나고 학습하는 동안 특수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낙스 카운티의 영재아동교육은 특수아동 교육을 하는 같은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다. 영재아동들은 기쁨이처럼 ADHD스펙트럼 안의 많은 점을 공유하기도 하고 때론 자폐아 스펙트럼의 특징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까이서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영재아동들은 대체로 쉽고 빠르게 학습하기에 가만히 일반 학교에 다니도록 나 두고 신경 쓰지 않아도 스스로 잘 따라오고 배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무관심이나 지적 욕구를 계속적으로 무시하는 태도는 아이에게 절망감을 주고 사회에 대한 불신과 저항을 일으킨다. 


영재아이들이 커서 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교수나 유명한 정치인 또는 기업가가 되겠지만 어떤 이는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나 가정주부가 될 수도 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보듯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1-2%는 영재아이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 한 반에 48-50명 정도가 있었으니 두 반에 한두 명쯤은 영재였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의외로 많은 숫자의 영재들이 우리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국가적인 입장에서 이런 영재들을 인적자원으로 사용 해 사회에서 제대로 쓰이지 않고 낭비되지 않도록 영재교육을 한다. 그래서 일부 영재아동의 부모들은 나라가 나서서 영재 아이들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교육시켜 아이들 나름대로의 관심사와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모난 곳을 깎아가며 사회라는 태두리 안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공교육 안에서의 영재교육을 반대한다. 사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단 아이들 나름대로의 삶의 행복을 우선에 두고 싶어 하는 부모들이 거기에 속한다. 아마 김누리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인적자원에 대한 혐오 또한 아이들 하나하나,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기에 나온 생각일 것이다. 


짐작해서 알겠지만 영재성을 발현하는 데는 어른들, 특히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꾸미는 비교적 학교에서 모범생인 영재였지만 유치원 내내 학교에서 교과적인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없어 심심해했다. 나는 선생님과 상의 해 반 전체가 해야 하는 숙제 대신 집에서 내가 알아서 다른 책을 읽히던 수학 공부를 하던  음악을 하던 시키겠다고 허락을 받고 학교 숙제에서 벋어 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을 끝낸 후 2년간 홈스쿨링을 통해 꾸미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었다. 

꾸미가 3학년이 되어 다시 학교로 돌아간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기쁨이 때문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오는 기쁨이의 선생님 탓에 꾸미를 집에 데리고 공부시키기가 힘들었다.  그런 전화를 받고 다시 꾸미의 수업을 진행하려면 내 감정이 모든 걸 딱 끊고 사무적으로 돌아설 수 없었다. 

기쁨이는 눈치가 빨라 학기 초에 선생님을 간을 보다가(학기 초엔 선생님들이 대부분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신 편이다) 선생님이 정해 놓은 애매모호한 규칙을 아주 그 근처까지 왔다 갔다 하며 그 경계선을 넖힌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애가 자기 맘대로 하는데 그때가 되어 다시 새로운 엄격한 규칙을 정하려면 기쁨이 입장에선 억울할 뿐이다. 오전까지도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갑자기 불허하니 말이다. 그런 기쁨이에겐 학기 초부터 아주 정확하게 반의 규칙을 설명해 주고 예외 없이 처음부터 조금이라도 규칙을 어기면 봐주지 않고 지적해 주는 선생님이 필요하다.

 

기쁨이는 정말 선생님이 누군가에 따라 문제아가 되기도 하고 사랑스럽고 모범적인 영재가 되기도 한다.

어떤 선생님은 이동수업 중간에 복도에 기다릴 때 입에 공기를 물고 뒷짐을 진 자세로 5분 넘게 (현장학습을 가기 전엔 때론 20분가량) 조용히 기다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걸 어기면서 장난을 치거나 말을 걸로 앞 뒤 옆 아이들몸을 건드려 집적거리면 야단을 치고 태도 점수를 깎는다. 하지만 또 다른 선생님은 그런 기다리는 시간을 일단 최소화하고, 기다리는 시간엔 긴장을 풀고 복도에 앉혀 책을 읽어주신다. 구연동화를 하는 것처럼 등장인물마다 목소리도 바꾸고 내용에 따라 동작을 섞어가며 빠르기와 목소리의 높낮이를 바꿔가며 읽어주시면 아이들은 심심해서 장난치는 대신 이야기에 빠져든다. 


어떤 선생님은 수학 시간에 정부에서 선행학습을 허락지 않으니 이것 이상으로는 가르쳐 줄 수 없다며 아이가 다 아는 덧셈 뺄셈만 계속 문제를 준다.  다른 수학 선생님은 자신이 아이들을 선생 학습하는 건 불법이라 불가능 하지만 학생들이 서로를 가르치는 것은 괜찮다며 아주 수학능력이 좋은 아이들은 따로 그룹을 만들어 그들끼리 그날 배우는 콘셉트를 가지고 문제를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퀴즈를 내고 풀어보도록 시킨다. 그럼 다른 아이들은 덧셈, 뺄셈을 배우는 동안 그 그룹 아이들은 덧셈을 응용한 곱셈 같은 덧셈 문제도 만들어 풀어보고, 한자리 수 곱을 하는 동안 100자리 수 곱을 풀어보기도 한다.


한 번은 과학시간에 물질의 상태에 대해 배우는데 물질의 상태는 고체, 기체, 액체 3가지라고 가르치자 기쁨이는 물질의 상태는 그 3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플라스마도 있다며 자신이 아는 걸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그건 너희 나이 때에는 어려워 배울 수 없고 더 나이가 들면 배울 거라고 이 3가지 상태는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태라 이것을 배워야 한다고 다그쳤고, 기쁨이는 지구 밖에선 플라스마 상태가 가장 보편적인 물질의 상태이자 이 교실에 있는 형광등도 플라스마 상태를 이용한 것이고 오로라나 번개도 플라스마 상태인데 왜 그것이 3학년은 배우면 안 되는 것인지 받아쳤다. 결국 기쁨이는 그날 수업을 방해하고 선생님께 반항한 이유로 학칙을 어겼다고 노트를 받아왔다.  다른 선생님은 앞에서 말한 차럴스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글을 썼을 때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다 알려진 사람을 소개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 조사해 반 아이들과 선생님께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 것을 칭찬해 줬다.  그렇게 칭찬을 하고, 기다릴 땐 책을 읽어주고, 학기 초부터 단호한 규칙을 정해 지키게 한 선생님이 3학년 기쁨이 반 담임을 맡은 영어 선생님이자 기쁨이를 영재반에 추천해 준 선생님이셨다. 


영재 아이들도 칭찬을 고파한다. 자신도 대답 잘할 수 있어 손을 드는데 수업 안에선 맨날 한 아이만 지목해 시킬 수 없느니 그 아이들만 젤 나중으로 남겨놓았다 아무도 답을 못할 때만 발표를 할 수 있게 된다. 기쁨이는 자기를 지목해 주지 않는 선생님께 화를 내며 씩씩거리며 집에 올 때도 있었고, 꾸미는 학교에선 손을 잘 안 든고 했다. 다른 아이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그런 면에선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있는 교실 보단 홈스쿨링이 도움이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되도록이면 꼭 필요한 칭찬을 해 주려고 한다. All A를 받은 꾸미는 그건 당연한 거지 대단히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꼭 해야 될 일을 잘 끝낸 것도 칭찬받을 일이라 설명해 줬다. 사람들이 사회에서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잘할 때 사회가 잘 돌아가는 것이니 특별히 더 잘해도 칭찬할 일이지만 자기 몫을 다 한 것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영재성(giftedness)은 말 그대로 선물이다. 그래서 선물로 받아 저절로 잘하는 것이 아닌 다른 부분을 포인트 잡아 칭찬해 주려고 노력한다. 꾸미는 음악적 재능은 일반 아이들과 비슷하다. 하지만 노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3학년 이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을 한 결과 비슷하게 시작한 아이들에 비해 바이올린을 꽤 잘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노력을 칭찬해 준다. 기쁨이는 청음이 아주 뛰어나 피아노를 치다 중간에 틀리면 악보를 보고 틀린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기보단 첨부터 다시 시작해야 곡을 완주할 수 있다. 하지만 악보를 보고 차근차근 자기가 틀린 부분을 고쳐 연습을 한 날에는 아낌없이 칭찬을 해 준다. 암산이 빨라 문제만 보고도 답이 나오지만 왜 그렇게 답이 나왔는지 풀이과정을 설명하라고 했을 때 몸을 비비 꼬며 '이게 답이니까 답이지!' 하고 소리 지르다가도 하는 수 없이 풀이과정을 마지못해 억지로 쥐어짜 썼을 때 나는 아주 큰 칭찬을 날려준다. 


가수 이소라는 자신은 재능이 없어 남들처럼 노래를 잘하고 싶어 연습에 연습을 더하는 노력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노력'이라는 것도 영재성의 한 부분이다. 요즘 '노오력'해도 흙수저는 금수저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들 하지만 '노력'이야말로 나의 영재성을 발현 해 낼 수 있는 단 한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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