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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Jan 16. 2020

3화: 육아에도 연습이 있었다면

육아서적 독서 남발의 부작용: 평균 강박감

몽고메리 앨라배마는 흑인과 백인들이 사는 지역이 철저히 갈려진 곳이었다. 이미 먼저 와서 살고 있던 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흑인지역의 위험성을 들은 우리 부부는 같은 크기의 아파트 가격이 3배가 넘어도 흑인지역으로 들어가서 살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뉴욕에 있을 때 할렘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아이가 태어난 이후엔 더욱더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앨라배마에 내려와 처음 15개월 동안 남편 혼자 벌면서 생활비가 모자라 한 달에 천불씩 그동안 세이빙에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빼 쓰면서도 백인 지역 비싼 아파트를 벋어 나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세이빙을 다 까먹고 카드빚이 늘어 갈 무렵 내가 다시 일을 하기 시작한 후 내 봉급의 3분의 2를 아이들의 보육비로 바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주에 100불을 받는다는 어린이 집을 사전 탐방을 했을 때 마치 고아원에 온 착각이 들었다. 방방마다 문에는 아이가 나가지 못하게 강아지를 가둬놓을 때 쓸 것만 같은 쇠창살이 있었고 비 좁은 방들 뒤로는 자질러지며 우는 아기들이 콧물 눈물을 범벅을 하며 뒤엉켜있었다.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선생님들의 강한 흑인 엑센트 때문이었는지 우는 아이들의 소리 때문이었는지 대화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그곳을 벋어 나고 싶었다. 차마 내 아이를 그런 곳엔 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집 앞에 비싼 어린이집인 Kindercare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비싼 어린이 집은 달랐다. 탁 트인 공간에 입구 앞엔 높은 천정과 밝은 조명이 있는 실내 놀이터가 있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입구 오른쪽엔 스테인리스 주방기구가 양쪽 벽을 가득 매운 깔끔하고 널찍한 주방에 직원들이 위생모를 쓰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원장실을 지나 왼쪽엔 통유리로 되어 안이 훤히 내다보이는 0세 반 아기들에게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고 계셨다. 각 아기들은  각자 자기만의 아기침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야외엔 널찍한 잔디밭과 놀이터에 충분한 숫자의 놀이기구와 공, 줄넘기, 자전거가 구비되어 있었고 꾸미가 있을 2세 반 교실은 달리기를 해도 될 만한 넓은 공간에 알록달록한 색의 카펫이 깔린 책 읽는 공간과 그리기, 찰흙놀이 등을 할 수 있는 책상이 놓인 공간과, 각종 장난감이 잘 정리되어 있는 공간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유치원을 다녀본 적이 없는 내가 다니고 싶단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10개월을 보내고 온 큰 딸, 꾸미는 말이 느렸다. 


책과 인터넷에 리써치를 해 보니 30-36개월 아이는 평균적으로 약 550 단어를 말할 수 있다던데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열어놓고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을 영어, 한글, 의성어, 의태어, 나와 뜻이 통하는 그 어떤 소리라도 다 합해봤자 150개를 넘지 않았다. 한국에 가기 전 18개월 때 108개를 표현하던 것에 비해 그리 늘지 않은 숫자였다. 이중언어를 하는 아이들의 특징일까? 언어를 집중적으로 배우는 시기인 0-5세 사이에 한 가지 언어체계가 확실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의 뇌는 혼란을 경험하며 두 가지 언어 모두에서 학습지연을 일으키는 언어 발달지연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쓰여있었다. 내 아이도 이런 케이스일까? 한국말에 없는 r이나 f, s 발음 정도면 모르겠지만 한국말이랑 영어에 모두 있는 n, b, p 같은 발음마저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한창 유행했던 '베이비 위스퍼'를 따라 하려다 돌 이전 아기에게 매일 밤낮으로 잠들 때마다 너무 많이 울게 내버려 뒀던 게 아이에게 문제를 일으킨 걸까? 불안했다. 첫 아이라서. 


비싼 어린이집은 그만큼 돈 값을 하는 걸까? 마침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성장 시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행동발달사항을 두고 원장 선생님과 1대 1로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건강상태, 식성, 대소변, 아이들과의 관계, 선생님의 지시에 대한 리엑션뿐만 아니라 대, 소 근육의 발달사항, 언어 이해도, 눈의 초점, 색깔, 모양의 구별, 집중도 등 120여 가지 테스트에 대한 평가서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특히 인지능력이 만 4-5세 수준으로 아주 뛰어나다고 전해 주셨다. 신기한 것은 그 나이에 덧셈과 뺄셈에 대한 시험을 했고 할 수 있다란 평가가 내려졌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말도 잘 못하는 내 아이에게 이런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내 질문에 원장 선생님은 아이에게 인형을 한쪽에 2개 또 다른 쪽에 한 개를 보여준 후 다 치운다음 아까 선생님이 가진 숫자만큼 인형을 달라고 시키거나 처음에 블록을 4개 보여 준 후 2개를 떨어트린 후에 손에 든 인형을 등 뒤로 숨기고선 선생님이 손에 들고 있는 숫자만큼 다른 블록을 가져와 보라고 시켜본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에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이 어린이집에선 이런 발달사항에 관한 테스트와 연구들을 본사에 근무하는 유아교육학 박사님들이 체계적으로 확립시켜 선생님들에게 테스트 방법을 교육시키고 평가를 통계화하여 센터의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지 알아본다고 한다. 


꾸미는 숫자를 알고 있었다. 한국 외할아버지 집 식탁 벽에 걸린 그림 하나 없는 커다란 달력을 통해 하루 아침에 숫자 0에서 9까지 배우게 된 꾸미는 바로 그날 집 앞 시장에 장날에 세워진 차 한 대 한대 번호판을 짚어가며 숫자를 읽어댔다. 마치 숫자에 집착하는 아이처럼. 수학 선생님이셨던 아빠는 그놈 참 똑똑하다며 기뻐하셨다. 

어린이집을 다녀오면 나는 임신을 해 무거워진 몸으로 놀아줄 수 없으니 좁은 집 거실에다 밥상을 펴고 앉아 서점에서 5천 원 주고 산 학습지를 내주고 색칠을 시키며 놀게 했다. 그런데 그것이 학습지 집착으로 나타났다. 학습지를 한번 펴기만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해댔다. 내가 허리가 아파 나가떨어져 그만하자고 할 만큼.  그 학습지 중독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더욱더 심해졌다.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긴 것 같은 마음에서 일까? 학습지를 할 때면  동생 기저귀를 가릴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 자신 옆에 딱 붙어 앉아 학습지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제를 읽어달라 때를 썼다. 

한국에서 돌아와 바로 직장생활로 돌아간 나에게 매일 밤 꾸미의 학습지 공부는 나의 야근이 되었다. 한국에서 사 간 학습지 7권을 다 했을 땐 꾸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매일 밤 인터넷에서 학습지를 프린트해서 10시, 11시까지 하다 꾸미에게 이젠 프린트 한 종이가 없어 더 이상 못한다고 조르고 졸라 그만두게 해야만 했다. 다행히 둘째는 순했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일까? 저녁 분유병을 마시고 난 후론 혼자서 기지도 못하는 몸으로 꾸물거리다 그냥 조용히 잠이 들어주었다. 


꾸미는 알파벳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아직 걷기도 전 9개월쯤 되었을 때 집에서 가지고 놀던 LeapFrog 알파벳 블록으로 알파벳 이름을 모두 땠다. 말이라곤 엄마, 아빠밖에 못하면서도 'K 가져와' 하고 시키면 기가 막히게 기어가서 맞는 알파벳 블록을 가져다줬다. 26개 알파벳 블록 모두를 맞혔다. 가끔 Z와 N, M과 W, I와 H를 잘못 가지고 오는 적도 있었지만 블록을 꽃아보다 방향대로 안 들어가면 이내 제대로 된 블록을 가져와 꽃았다. 30개월이 되어 반을 바꾼 이후론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날 활동한 종이 뒷면에 크레용으로 이름을 쓰도록 가르쳤다. 손이 아프지도 않은지 내가 프린트 한 종이마다 매일 밤 자기 이름을 대여섯 번 써 댔다. 다만 이런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말할 수 있는 단어의 수는 150개 밖에 되지 않았다. 평균이라도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가 1대 1 상담에서 이런 꾸미의 언어지연에 대한 걱정을 했을 때 원장 선생님은 근처 대학교 언어발달센터 연구실에서 무료로 상담과 평가 테스트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소개 해 주셨다. 주 정부의 지원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 대학에서는 무료로 발달 지연 아동을 찾아 내  적절한 치료와 교육을 통해 발달 지연을 멈추거나 정상 아동과의 차이를 좁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였다. 소득에 따라 치료과정에서도 무료나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테스트는 30-40분가량 교수님과 아이 단 둘이서만 진행되었다. 초조했다. 

닫혔던 문이 열리고 교수님은 나를 방으로 초대하셨다. 꾸미는 마치 재미있는 게임을 한 듯 웃고 있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그림카드로 진행된 테스트에서 꾸미는 오히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언어의 이해도가 오히려 뛰어나 상위 1-2%대에 해당이 된다고 말씀해 주시며 한국에서 10개월을 보내고 온 아이가 미국에 다시 온 지 2개월 만에 이런 결과를 보인 것에 놀랍다며 아이들의 뇌 발달은 정말 경이로운 것이라며 감탄하셨다. 한국말로도 이 정도를 알아듣냐고 질문하신 교수님은 오히려 꾸미를 만나게 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이번 기회가 본인의 앞으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감사의 말을 전해 주셨다. 일반 어른들이 들었을 땐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라도 아이들은 표현을 하고 있는 거라고. 내가 읽었던 책이나 인터넷의 내용은 그 나이 때 그 발음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아이들의 언어발달 스펙트럼은 정상 범주 이내에서 빠른 아이와 느린 아이의 차이가 2년 가까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발음의 정확도는 구강근육의 발달과 함께 만 6-9세 까지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거라고 이테까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 지식을 정정해 주셨다. 


정상이었다. 

뒤처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 안도감의 파도가 물러 간 자리에 내 아이가 천재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피어났다. 

아이가 이렇게 뛰어난데 내가 아이가 필요로 하는 서포트를 다 해 주지 못해 본인의 역량을 다 펼치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불안감의 역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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