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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Oct 08. 2020

17화: 미국 인디언의 세종대왕

문자. 평등. 계몽.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국에서 있을 땐 늘 그렇게 배웠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종대왕만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자를  창조했다고.


미국에 온 지 13년 만에 테네시 주 낙스빌에 이사 오고 나서야 나는 미국 인디언들에게도 세종대왕과 같은 분이 계셨다는 걸 배웠다. 자신의 민족을 위해 글을 만들어 교육시키고 스스로의 힘을 길러 백인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사람.

세쿼야  Sequoyah


프랑스인 아빠와 체로키 인디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세코야는 엄마와 함께 체로키 인디언들 속에서 자랐다. 미국 인디언 역사의 격변기였던 18세기 말에 태어난 그는 자신의 외삼촌이자 부족 추장이 백인들과 싸우다 땅을 빼앗기고 평화협정을 맺고도 그 평화협정을 뒤엎고 자신의 땅을  짓밟은 모습을 목격하면서 자랐다. 백인들은 인디언이 알 수 없는 기호를 종이장에 써 놓고는 입으로 맺었던 평화협정은 무효라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1812년 전쟁에서 미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자신과 같은 참전 인디언들은 참전 백인 군인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액수의 금액을 받을 것을 알고는 워싱턴에 찾아가 항의했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쟁 터에서 백인 병사들은 그리운 아내와 가족에게 '말하는 잎사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인디언들은 그러지 못했다. 마치 백인들은 마법사들처럼 서로 만나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말하는 잎사귀'를 통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할 수 있었다. 백인이 신이 전해주는 이야기라고 읽는 책인 '성경'에는 얼굴을 보고 만날 수 없는 그들의 신, 하나님이 모세라는 이에게 돌판에 말을 새겨 보여준 일이 쓰여 있다고 했다.


세코야는 자신이 민족이 백인들처럼 글을 배우고 사용할 줄 알아야 백인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1821년 체로키 문자를 만들었다. 은세공과 금속세공의 기술이 있었던 그는 문자를 만들고 그것을 활자로 만들어 신문과 책을 만들어 편찬하고 교육했다.



사실 세코야의 체로키 알파벳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에 비해서 그 수준이 떨어진다. 한글이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 비해 세코야의 알파벳은 음절로 이루어졌기에 86개나 되는 글자를 배워야 한다. 10개의 모음을 천지인을 통해 표현하여 핸드폰 문자 시대를 앞당긴 한글을 바라보면 얼마나 세종대왕이 또 한국사람들이 똑똑한지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많은 한국사람들은 북미 대륙에 있었던 초기 13개 주는 알아도 인디언 국가인 체로키 네이션은 잘 모른다.  체로키 네이션은 1794년부터 1907년까지 북미 대륙에 있었던 공식적인 인디언 국가로 5개의 부족이 서구 나라들에서 아이디어를 본떠 3권 분립이 된 정부를 세우고 기숙학교, 신문사, 법정, 경찰서, 교회를 세우기도 했다.  그들은 엔드류 젝슨에 의해 무력으로 짓밟혀 땅을 빼앗기고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을 통해 서부 인디언 보호구역(도대체 무엇이 보호란 말인가? 당장 백인의 잣대로 지은 저 이름부터 뜯어고치고 싶다.)으로 쫏겨 가면서 최소 만 오천 명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병에 걸려 죽었다.


일제시대에 우리가 문화 탄압을 받으며 한글을 말하고 쓰지 못하게 억압받았던 것처럼 미국에서도 인디언들은 공립학교에서 그들의 언어를 쓰면 체벌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토록 죽이려고 했던 그 인디언 언어 덕택에 2차 세계대전에서 적들을 교란하는 암호로 활용하여 전쟁을 이길 수 있었지만 그 인디언 부대원들을 최근이 되어서야 그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막으로 쫓겨난 미국 인디언들은 아직도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 물탱크를 채우러 물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일회용 그릇을 이용해 밥을 먹어야 하고 양치와 머리를 감는 일 마저 사치로 여겨야 한다.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 좁은 컨테니어 집에 3대가 살아가는 집이 흔한 미국 인디언 마을은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하는 취약한 상태에서 코로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그들의 존속에 위험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렇게 취약한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에게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언들은 1924년 미국 시민권을 보장받았지만 1962년까지 주에 따라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투표권이 없었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사회에 반영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아가야 했다. 미국 인디언들은 비로소 작년 5월이 되어서야 투표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선거 등록 장소와 투표장소가 자신들이 사는 곳 근처에 마련되는 것, 영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주소지가 명확지 않는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서 부제자 투표권의 보장 등을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다.

https://www.congress.gov/bill/116th-congress/house-bill/1694/text?q=%7B%22search%22%3A%5B%22H.+R.+83%22%5D%7D&r=62&s=1




문자는 힘이다. 

로마인들은 자신이 가진 문자를 통해 문자가 없는 민족을 야만인이라 칭하며 차별하고 무시했다. 교회는 성직자라는 특수 집단만이 문자로 된 성경을 독식함으로 그들만의 권익을 위한 집단으로 중세 암흑시대를 보냈다. 유럽에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은 평등으로 가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여 많은 이들이 문자를 접하게 했고 종교혁명과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키며 부르주아를 만들고 신분이란 족쇠를 뛰어넘는 것을 가능케 했다. 양반들은 문자를 독식하며 여자와 상놈들을 멸시했고 선진국들은 문자를 총 칼 삼아 불합리한 협정(두 언어로 된 협정에 번역의 차이가 있을 시 자신들의 언어로 된 협정이 우리말 협정을 대신한다는 문구를 더했다.)으로 우리나라를 잡아 삼켰다. 현대에서 문자는 법률과 투표라는 문서화된 제도를 통해 나의 권리를 보장받고 나를 사회로부터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여성이 학교를 가고 글자를 배움으로 여권이 신장되었고 흑인 노예들은 도망 나와 글자를 배워 그들의 삶을 세상에 알림으로 더 많은 흑인 노예들을 구출 해 낼 수 있었다. 


문자를 가르치는 것은 힘을 나누고 정의를 실천하고 평등을 넓히는 길이다. 아직 많은 개발도상국의 나라들은 예전 우리 할머니 어머니 시절처럼 여자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그들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한다. 월드비전을 포함한 많은 자선단체들이 따로 여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자는 정보의 저장능력뿐만이 아닌 창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치 DNA처럼 먼 세대에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고 내게 시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만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을 더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 70년대 히피문화는 컴퓨터와 인터넷이란 매개를 통해 전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냈다.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에 접속만 할 수 있다면 모든 정보를 누구나 동일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21세기 알파 세대들의 가장 큰 숙제는 정보의 평준화를 이루는 노력일 것이다. 구글을 비롯한 많은 IT회사들이 여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컴퓨터 엔지니어가 되라고 권유하는 것은 여성 권익을 신장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세계의 경제를 이끄는 정보화 사업이 프로그래밍이란 컴퓨터 언어의 집약체이고 그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적다란 것은 여성과 남성의 부의 불평등, 임금의 불평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문자는 자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로마서 8:2

태초에 말씀(word)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진리)을 아는 것을 자유를 얻는 길이라 말한다. 그래선지 유대인들은 어디에 살든 간에 그들의 문자와 언어를 자신의 자녀에게 가르치고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다. 미국의 기독교 가정에서도 자녀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고 글을 읽게 하는 기본 목표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아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  그래서 서양의 교육은 종교교육에서 발단이 되어 나왔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 단어와 문법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해 논리력을 배우고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과 과학과 역사가 발달했다.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열반에 이르는 그 길은 문자를 통해 지식을 쌓고 정보를 공유하며 나 혼자가 아니라 전 인류가 다 함께 권익이 신장되는 길과 통해 있음을 느낀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이 세종대왕과 세쿼야 두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아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문자는 정신이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아직 그들의 문자와 언어가 남아있기에 그 부족들의 정신을 이어 오클라호마에 거점을 두고 백인들에게 받은 상처를 고치려 DNA를 통해 상징적 시민권을 부여하고 직업교육, 의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어가려고 한다.

https://www.cherokee.org/


가끔 우리가 일제에게 해방하지 못하고 계속 지내 우리의 말과 글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상상을 해 본다. 퓨전 음식을 만들어 놓고도 그 이름을 뭐라 짓느냐에 따라 어느 나라 음식이 되듯 (미국엔 현지엔 없는 많은 음식들이 각 나라 음식으로 팔린다) 내 나라 말이 살아 있었기에 내 나라 이름으로 된 문화가 살아남고 정신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문자는 희망이다.


2020년은 미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해였다. 트위터에 온갖 잡소리와 말도 안 되는 거짓 정보를 쏟아내는 대통령부터 통제되지 않는 바이러스, 수세기간 해결되지 않은 인종차별의 역사가 곪아 터져 일어난 폭력사태들. 하지만 내가 보는 미국 초등교육은 이런 부끄러운 만행의 역사를 가감 없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반성할 줄 안다. 지금 대통령인 트럼프는 모르지만 적어도 현직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과 교육자들은 그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반성하는 것이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문자는 문자를 아는 우리들을 향해 끊임없이 기록하게 하고 그 기록을 들춰 내게 하고, 진실을 바라보게 하고, 평등과 자유의 목소리를 높이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앞날에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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