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한해가 지나가 버렸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온 후 매년 이 맘때 쯤엔 지독한 우울증에 빠져 지냈는데 올해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넘어간다. 오히려 활기가 넘친다. 나만 가족을 못 만나는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최근 14일간 같이 살고있는 그 가족들 말고는 만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 대는 턱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가족과 친지를 못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연말이 별로 힘들지 않다.
역시 행복은 상대평가다.
올 3월 학교가 문을 닫자 낙스 카운티 교육청에서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급식이 없어져 굶는 이 있을까봐 서둘러 무료 급식을 배포했다. 낙스카운티는 학생들 중 60%이상이 4인가정 기준으로 연소득 $47638이하를 버는 가정 출신이 있는 학교들은 커뮤니티 학교로 지정되어 전교생이 무료 급식을 받는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메그넷 스쿨은 가난한 도심지역 아이들의 학습 효과와 흥미를 향상하기 위한 취지로 세워졌기에 시험을 쳐 들어오는 2학급의 성적 상위 반이 있더라도 나머지 3학급의 아이들은 지역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전교생이 아침, 점심을 무료로 먹고 있다. 학교를 닫은 날이 봄 방학을 시작하기 하루 전날 이였기에 봄방학 1주일 기간이 끝나자 마자 커뮤니티 학교에선 드라이브 쓰루 방식으로 월, 수 일주일에 2번 급식을 나눠 주었다. 지역 사회봉사단체에선 수요일 급식배포 날엔 같은 장소에서 주말에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나눠준다.
개학을 하지 않고 바로 여름방학으로 들어가자 주 정부에선 Pendemic-EBT 카드를 발행해 이미 무료 급식을 먹던 아이들과 직장을 잃거나 노동시간이 줄어 소득이 줄어든 가정들을 위해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카드를 나눠줬다. 우리도 신청을 하자 아이들 이름으로 약 $500 가량의 금액이 들어 간 카드가 나왔다.
8월 말, 학교가 개학하자 곧 이어 주 정부가 예산을 집행 해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무료로 학기말 까지 급식을 먹을 수 있게 했고 온라인 수업을 선택한 가정들을 위해선 일주일에 2번 학교에서 급식을 받아갈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그 해택을 누리며 무료 급식을 먹을 수 있었다.
구성을 살펴보면 아침식사로는 시리얼, 도넛, 와플, 또는 시나몬 롤과 우유, 점심식사로는 치즈햄 샌드위치,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 또는 햄, 치즈 셀러드에 치즈, 과일, 야채, 우유, 주스가 나오고 간식으론 칩과 과자가 나온다. 아래 사진이 1명이 3일치를 받은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빵과 과자, 우유, 치즈는 모두 통밀, 저지방 상품이다.
아이가 둘 이라 매주 두번씩 저렇게 받아오니 지난 일년간 우리집엔 우유, 당근, 과일, 과자, 주스, 시리얼, 치즈를 살 일이 거의 없었다. 애들이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싫어해서 (잼이 너무 달아서 싫어한다) 가끔은 남편이 도시락으로 싸 가지고 가기도 하고 당근은 카레나 셀러드에 넣어 먹기도 한다. 이렇게 직접 무료 급식을 받아보면 내가 낸 세금이 우리 지역사회를 위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아이들을 위한 급식의 질은 어떤지도 알수 있다. 학교가 닫는 동안에도 무료급식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학교에 급식을 납품하는 납품업자들도 계속해서 돈을 받을 수 있게 되고 그 납품업체의 직원들이나 학교 직원들도 조금이나마 계속 일을 할 수 있는(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펜데믹 초기에 남편은 우리같은 집이 왜 거기가서 밥을 받아오냐고 했지만 나는 나처럼 줄서서 받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그 뒤에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도 계속 있을 수 있는 거라고 남편을 설득했었다.
사실 펜데믹 초기엔 식당과 큰 기관의 구내식당이 문을 닫자 소매 납품용 포장이 도매 납품용 포장이 다르기에 도매업을 하던 회사들이 소매업으로 쉽게 전환 할 수 없어 납품업체들이 도산을 하기도 했고 그런 회사에 납품을 하던 포장용기 업체들 또한 타격을 입었다. 와르르 쏟아 깨서 버려지는 계란들과 하수구로 콸콸 쏟아 버려지는 우유를 비추는 뉴스와는 달리 슈퍼마켓에서 소비자 물가는 계속 치솓는 기이한 현상이 이어졌었다.
지난달엔 펜데믹이 길어지자 지난 5월 P-EBT 카드를 신청한 가정들과 현재 무료급식을 받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P-EBT 카드가 또 나왔다. 내년 5월 방학까지 대비한 카드다. 카드에 들은 금액을 다 합해 보니 대략 천불 가량이 된다.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는 것을 줄이고 월마트나 ALDI 를 이용해 카드를 써 식료품 장을 보기 시작했다. 코스트코에 가면 뭘 집던간에 $10은 하니 한번 가면 $140은 거뜬히 쓰는데 코스트코를 끊고 나니 장 보는데 별로 돈이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가족 모두 운동과 다이어트에 집중 한 한해를 보내는 중이라 고기 대신 야채 위주, 캔, 냉동식품 대신 신선한 재료 중심으로 장을 보고 있는 터라 일주일에 $40불 정도면 4명 충분히 장을 볼 수 있다. 더 좋은 것은 EBT 카드가 세금으로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식료품 값이라 그런지 식료품을 살 때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평소때 9.25%의 세금을 내고 장을 볼 때에 비해 같은 갯수를 집어도 적게 돈이 드는것이 눈으로 보인다. 시내에 주말에 여는 파머즈 마켓에 가서 EBT 카드를 사용하면 파머즈 마켓용 상품권 교환 시 하루 사용할 때 마다 $20을 더해 준다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기도 했다.
일년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이런 느낌의 추수감사절을 맞아하면서도 한편으론 우린 그래도 남편의 안정적인 직장 덕분에 아무일 없이 무사히 지낸것에 감사를 드린다. 4월에 받은 재난 지원금 $3400과 P-EBT 카드, 무료급식, 널뛰기 주식시장에서 기회를 잘 살려 얻어낸 차액등 지난 한 해간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해택을 받았는데 뉴스에 나온 다른 많은 이들은 직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코로나로 잃고 앞으로의 삶과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뉴스가 비춰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평상시 같으면 부모들을 같이 학교로 초대 해 추수감사절 칠면조와 메시드 포테이토가있는 추수감사절 점심을 같이 먹었을 건데 급식으로 받은 호박파이가 그 아쉬움과 상실감을 채워준다. 아니 그 상실감을 상기시킨다.
몇해전 추수감사절 점심식사 사진이 페이스북 메모리에 떴다. 또 이런 날이 언제 올 수 있으려나. 행복은 상대평가고 감사함이란 내 양손이 비어 있는 시간을 견뎌야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닳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