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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Jan 15. 2021

갓라벨

인터콥 BTJ 열방센터 뉴스를 접하면서 떠오른 지난 날의 QT

워라벨이란 단어가 유행을 했었다. 저녁이 있는 삶. 돈을 아무리 많이 준데도 일과 삶의 벨런스가 필요하다고 느낀 산업세대 이후의 우리들이 추구하는 또 다른 세상이였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산다고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배는 안굶을 정도로, 아니 이젠 일을 너무 하느라 모든 밥은 밖에서 해결하거나 배달음식, 편의점 음식에 의존 해 성인이 되어 독립하고 결혼을 했으나 찌게 하나 끓여 먹는 걸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쩔쩔 매고 요리란 자고로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착각까지 하게 된 세대. 그런데 먹을 걸 걱정하지 않게 되어도, 이번 달 집값을 걱정하지 않게 되어도, 통장에 돈이 따박따박 쌓여가는 동안 아이들은 나 몰래 훌쩍 커 나와 대화를 나누기는 커녕 눈도 안마주치고 헨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는 교감을 나누면서도 부부끼린 반려견 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며 여행은 커녕 마지막으로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했던 적이 언제인지 되뇌어 봐야 하는 그런 세대. 그 속에서 워라벨은 빛을 발하며 사람들의 로망이 되었다.


일상생활에 워라벨이 중요하다면 기독교인에겐 갓라벨이 중요하다.


재작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파리 열방교회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유학생들이 스스로 걸어들어갔으나 꿈을 이루기보단 하나님 일을 한다는 목적으로 수업도 안가고 비자도 만기 되도록 내버려 두어 불체자가 되었는데도 잘 하고 있다고 부추긴 교회 이야기였다.


그 곳처럼 사이비는 아니였지만 나도 한때는 교회에 미쳐(?) 있었던 적이 있다. 못하는 영어로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한국어권 한인 학생들이 모인 그곳은 나에게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였다. 한국말로 마음 껏 이야기 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한국 밥을 줬다. 선배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돌아가며 자기네 아파트로 불러 밥을 해 줬다. 차가 없는 아이들에겐 라이드까지 해 가며 기숙사에서 우리를 테우고 가서 밥을 해 먹였다. 힘든일이 있어 고민을 이야기 하면 무조건 들어주고 내 편이 되 주었다. 주말에도 돌아가며 그룹별로 밥을 해 먹였다. 밥을 먹고 나면 버스가 한시간에 한번 정도 다닐 정도로 늦은 시간이 된다. 그러면 선배들은 또 차에 우리를 태워 학교 캠퍼스에서 열리는 화요 기도모임과 금요 저녁예배에 우리를 데리고 간다. 밥을 먹었기에 거기서 빠져나가기도 참 미안해진다. 주말엔 선배네 집에서 밥을 먹고나서 상이 치워지면 성경책이 나오면서 소그룹 성경공부가 바로 진행이 된다. 그렇게 난 서서히 교회에 물들어 대학 1학년에 침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다. 1학년 2학기가 되면 기도모임에서 다음 해에 올 신입생들을 위한 기도제목이 나온다. 올해 CCC에서 맺은 결실에 감사드림과 동시에 다시 내년에 새로 입학 할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그들을 위해 그들의 마음을 준비해 주시고 우리를 훈련시켜서 그들을 하나님 곁으로 이끌고 열매를 얻을 수 있길 기도드린다. 처음 선배들의 그 기도를 들었을 때 난 내가 하나님을 몰랐을 시절부터 이들이 이렇게 내 영혼을 위해 기도 해 주었다는 것에 감동해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3학년이 되면 이젠 이야기가 달라진다. 순장 또는 부순장이 되어 이젠 밥을 얻어먹는 입장에서 밥을 해 줘야 되는 입장이 된다. CCC순장이나 부순장은 누가 시킨게 아니라도 그들끼리 룸메이트를 해서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1학년 때 부터 계속 붙어다니며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다들 CCC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자기 순원들을 위해 밥을 해야 하고 적어도 한학기에 한번은 각 순이 돌아가면서 신입생들을 위해 밥을 해야한다. 금요예배와 주일예배 후 먹는 친교음식도 각 순에서 돌아가면서 하기에 그런것 까지 합하면 순모임 밥 이외에도 한달에 한번은 밥을 하게 된다. 금요예배와 주일예배엔 예산이 주어지지만 신입생과 자기 순원들을 먹이는 돈은 거의 모두 순장과 부순장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순장이나 부순장이 되면 lab이 있는 8학점 짜리 수업을 듣는 거나 마찬가지란 농담이 있었다. 화요일 기도모임 (1시간), 금요 예배 (7시 반에 시작해 공식적으론9시에 마치나 그 후 친교가 따르면 언제 마칠지 모른다) , 주일 예배(친교까지 보통 2시간), 순모임(2시간), 리더 성경공부(2-3시간)이 매주 있는 것이고 금요예배에 찬양팀을 맡는 이들은 5시부터 준비와 연습에 들어간다. 첫 학기엔 수련회가 있고 두번째 학기엔 4월 부활절을 맞아 부흥회가 있는데 1월부터 각 순원들이 각자 팀을 짜 영상팀, 찬양팀, 홍보팀, 댄스팀, 연극팀, 등등  각 팀에 들어가 매주 연습을 하거나 자기가 맡은 역활을 하며 준비를 해야한다. 교회 학교에서 교사를 맡았다면 교사모임에도 나가야 하고 자기반 학생을 위해 수업준비도 해야한다. 일년에 한번 교회 운동회가 있고 크리스마스 발표회가 있다. 그리고 순장은 매주 각 순원들에게 가르칠 성경공부를 준비해야 한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친교를 가지며 운동을 같이 하거나 영화를 같이 보고, 쇼핑을 가고 수다를 떨거나 하면서 또 시간을 보낸다. 순장이 사는 아파트에 한번 사람들이 모이면 보통 7-8명에서 많게는 15명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


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난 순장이 되어있었고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되어있었다. 간사님들은 다들 잘 하고 있다고 했고 그게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했다. 내 밑에 딸린 동생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그만두면 또 다른 순장들이 그들을 맡아 또 내가 해야하는 일을 맡아 해 내야 하기에 힘들다는 말을 내뱉기가 어려웠다. 계속 한국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던 탓에 영어가 늘지도 않았었고 성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웠다. 취업도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나는 어떻게 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아무런 계획이 서 있지 않았다.


그때 QT를 하다 문뜩 떠 오른 생각이 있었다.

도데체 내 시간의 몇프로를 학업에 쓰고 몇프로를 교회일에 써야 하는걸까?

갓라벨.

역학 문제를 풀 때 저렇게 어떤 힘(과제/이벤트)이 주어졌을 때 학업과 교회 두가지만 생각한다면 풀기가 아주 쉽다. 힘이 작용하는 구간이 더 많아 진데도 풀기가 아주 쉽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아주 복잡하다.

만약 저런 상황라면 문제를 풀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위 그림과 달리 단 하나의 힘이 주어진데도 풀기가 아주 복잡하다. 대학을 들어가 매년 수천불의 학비를 내고 토목을 전공해서 3학년 2학기가 되어 토목역학을 들어야만 밑에 서포트가 3개가 될때의 문제를 풀 수 있다. 메이트릭스를 사용해 풀어야만 가능하다. 서포트가 많아지고 가해지는 힘의 갯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점점 더 복잡해져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돌려야 한다. 만약  써포트에 해당하는 부분이 지탱해야 할 힘 배분을 잘못계산한다면 내 삶이라는 구조물은 무너져내리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어떤 써포트도, 그 어떤 건물과 구조물도 땅에 의지하고 있기에 각 써포트에 주어진 모든 힘은 모두 땅이 바치고 있다. 그리고 그 땅은 어떤 힘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모든 힘을 지탱할 수 있다.

어짜피 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일, 가정, 학교, 회사일, 친구관계....

어떤 수많은 부분으로 자신의 삶을 나누어 매일매일 내 삶에 일어나는 이벤트들을 벨런스 잡으려 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의지해 살아간다면 삶은 단조로워진다. 어느곳에 몇프로의 힘으로 지탱해야 하는지는 무의미해 진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하나님을 내 삶 전체의 지지대인 땅으로 보낼 때 내 모든 삶의 순간이 그의 것이 되어버린다.

교회일과 내 일을 나눌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는데로 내가 할 수 있는만큼 하면 되는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는 것도, 아이들 밥을 챙겨주는것도, 운전을 하여 출근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주말에 쇼핑을 가는 것도 모두 하나님을 위한 일이 되어버린다. 교회에서 찬양을 하고 새신자를 위해 성경공부를 준비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 된다.


나는 그때의 그 깨달음을 통해 의무감에 휩싸여 교회일을 하던 바리세인에서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일주일에 몇시간 하나님을 섬기는지 신경쓰기보단 내가 숨을 쉬는 모든 시간이 그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존재의 이유가 하나님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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