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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tuti Nov 01. 2021

한국 갔다 오는 길에 소고기 다시다 좀 부탁해요.

고향의 맛

첫째 땐 뉴욕에서도 한인타운, 플러싱에 살았으니 낮에 아무리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못 먹다가도 24시간 하는 음식점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으니 밤 11시가 되어서라도 뭔가 먹고 싶으면 남편과 함께 밤마실을 나가 국밥을 먹곤 했다.


둘째 때는 앨라배마에 살고 있어 한국 식료품 가게도 딱 하나, 한국 음식점도 그리 많이는 없었지만 시어머니 찬스가 있었다.  큰 아이를 데리고 임신하면서 직장 생활하기가 힘들다고 시어머님께 SOS를 해서 한국에서 시어머님이 6개월간 큰 아이를 봐주러 오셨는데 어머님이 오시던 바로 그 주말에 하혈과 함께 뱃속에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 임신 중기... 진행이 꽤 됐던 터라 소파수술까지 하고, 어머님은 어머님 나름대로 미안해하시고 나는 나 나름대로 미안해하고... 어차피 6개월 왕복 티켓을 끊었으니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큰 아이를 어린이집 대신 맡아 키워주시며 집안일을 해 주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친정엄마가 몸을 회복하라고 보내 주신 한약을 먹고 몇 개월 만에 우리 기쁨이가 뱃속에 다시 들어섰다. 앞에 아이가 잘못된지라 친정엄마 못지않게 옆에서 잘 챙겨주신 어머님 덕분에 부엌에서 설거지 한번 안 해보고 밥 한번 안 지어보고 해 주시는 음식만 맛있게 먹으면서 6개월을 보냈다.  마침 남편 직장이 한국으로 단기 발령이 나는 바람에 어머님과 함께 가족 모두 한국에 귀국을 했다. 남편은 울산에 나는 경주 친정집에서 주말부부로 지내며 큰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아기를 낳고 기쁨이가 백일이 될 때까지 친정집에서 편하게 태교와 육아를 했다. 더군다나 첫째가 딸인데 뱃속 기쁨이가 아들이라 친정엄마 아빠는 뱃속 아기가 친정집에서 어떻게 잘못되면 안 된다고 집안일을 건들지도 못하게 하시면서 산모에게 좋다는 온갖 맛있는 것을 해다 바치셨다. 봄에 장날이 서면 길만 하나 건너면 500원에 3조각 하는 내가 좋아하는 콩고물 묻힌 쑥떡을 먹을 수 있었고, 주말에 남편이 찾아오면 미국 맛 진하게 나는 치즈가 먹고 싶다고 졸라 피자나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미국 촌동네에서 셋째를 임신하니 입덧을 오롯이 나 혼자만 견뎌야 한다. 음식 냄새 때문에 죽겠는데도 아이들 밥은 챙겨 줘야 되고, 식기 세척기가 있다고는 하나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식기 세척기 안에 그릇을 넣는 건 나의 일이다. 위드 코로나 덕분에 남편은 다시 출장이 잦아졌고 조금만 음식을 많이 해도 한번 냉장고로 들어간 음식은 다시 손을 대기가 힘들어진다.


낙스빌엔 한인마트가 한 곳, 중국 마트가 한 곳이 있는데 한인마트엔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팔 때가 있어 우린 잘 가지 않는다. 몇 년 전 계산대 맞은편에 할인코너를 마련 해 놓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만 쌓아 놓고는 한글로만 작은 글자로 안내되어있었다. 콩나물 콩을 팔길래 사 와서 물에 불려 키워봤더니 아무것도 발아되지 않고 썩어버린 적도 있다. 지역의 일본인이나 미국인들도 찾는 가게인데 너무 양심적이지 않는 것 같아 그 이후론 발길을 끊었다.  무나 콩나물 같은 한국 채소를 사려면 중국 마트를 가야 하는데 중국 절임 채소 및 정육과 생선을 팔기에 그곳 냄새와 비주얼을(보고 싶지 않아도 오리 머리나 돼지 내장, 이름 모를 생선을 보고 지나가야 한다) 견디기가 힘들다.


밭에서 뽑아 내가 담근 열무김치, 총각김치가 많아 이번 여름엔 배추김치를 안 담갔는데 내가 담근 김치는 먹을 입이 없어 이제 군내가 나기 시작했고 더더욱 먹을 엄두가 안 난다. 거진 8-9년 만에 남이 담근 김치를 사다 먹었다. 코스트코에서 종갓집 김치를 한병 사서 먹었더니 아이들도 좋아하길래 그다음 주 한 병을 더 샀더니 이번엔 맛이 다르다.


고기도 웰던으로만 먹어야 하고, 계란도 노른자를 다 익혀야 하고, 샌드위치 햄도 다시 삶거나 구워 먹으라고 그러니 오히려 안 먹게 된다. 일주일에 한 두 모씩은 꼭 먹던 두부도 왠지 안땡긴다.  어묵의 기름 냄새도 치킨너겟의 기름 냄새도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기름냄세. 그게 문제인 것 같다. 아무리 오븐로스트라 해도 치킨의 기름냄새, 두부를 부칠 때 쓰는 식용유의 기름냄새, 시금치 나물에 들어 간 참기름 냄새, 달걀 후라이를 할 때 기름냄새, 비욘드 미트 버거를 구울 때 나는 그 기름냄새, 라면을 끓이면 나는 라면 기름냄새까지.


결국 된장을 조금 넣고 시금치와 양파, 당근을 조금 다져 넣어 죽을 만들어 밥을 넘겨 본다.


물도 잘 못 마시다 오렌지 주스가 넘어가길래 오렌지 주스를 사놨는데 서너 번 마시고 나니 그 단맛이 너무 자극적이라 아이들만 먹이고 있고, 입덧을 그나마 누그러뜨려 줬던 단무지는 다 먹고 없다. 유분기 없는 시원한 셔벗이 당겨 사 왔는데 시고 단맛에 한입도 못 먹고 다시 냉동실에 처박아 두고 한 동안 아침에 한 개씩 먹었던 골드키위도 세 상자 째가 되자 더 이상 당기지 않아 냉장고 속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이 신났다.


먹지는 못하고 먹고는 싶고. 그 딜레마 속에서 먹방을 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뷔페 먹방을 보고 있으면 '아... 나도 저거 한입 먹으면 속이 좀 나아질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8월 초, 애틀란타에 가서 마지막으로 장을 본 이후로 집안에 한국 식재료가 떨어져 간다.  말린 표고버섯도 이제 두 스푼 정도, 다시마도 한 줌 밖에 안 남았다. 그나마 국물요리를 하면 밥 말아서 대충 먹을 수 있는데 국물요리 육수를 낼 재료가 떨어져 가니 막막하다. 미역이 다 떨어져서 결국 꾹 참고 중국 마트에 한번 갔다. 간 김에 콩나물과 무, 오징어를 함께 사 왔다. 말린 표고버섯은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한국 출장길에 올랐다. 일주일 출장. 그중 가는 날 하루, 오는 날 하루는 비행기 안에서 지낼 테니 5일 출장이다. 한국 가서 뭐 사 올까 라는 질문에 "쇠고기 다시다 좀 부탁해요"라는 말을 건넸다. 임신을 하고 입덧을 하니 한국의 고향의 맛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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