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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stas Mar 31. 2021

7살 아들과 순천 자전거 여행

# 봄꽃길을 달리고 싶어 아들의 자전거를 KTX에 싣다

순천역에서 광장 반대쪽 게스트하우스로 걸어가는 길. 사실은 보름달이 아니었지만 얼핏 보름달 같아 보이는 달이 떴다. 나는 앞서가고 뒤쳐져 걸어오는 아들은 달을 보며 혼자서 얘기를 한다.

- 보름달을 보면 소원을 빌어야 해요.

- 이제 저는 소원이 더 없어요. (이것은 최근 한 달짜리 미션을 아들이 성실히 클리어해 펜타스톰X를 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 아, 딱 하나 남았다.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걷다가 이건 궁금해 뒤돌아 물었다.

- 뭔데?

- 이 지구가 이름답고 평화롭게 해 주세요. 




꽃길 따라 남쪽 끝에서 구례까지 올라오는 기차여행을 계획했다. 여수엑스포역--> 순천역--> 구례역을 무궁화호로 이동하며 마지막엔 십리벚꽃길도 걷고 꽃구경을 질리도록 할 생각이었다. 두 달 전부터 동선을 짜두었는데 주말 내 전국이 비예보. 여행 날짜가 다가와도 예보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우리 여정을 수정했다. 비 오는 날을 피하고 순천 한 곳만 가는 것으로. 구례와 순천을 두고 막판까지 갈등하다 비도 피하고 사람도 피하자 싶어 선택. 그리고 여행 계획에 아들의 자전거를 추가했다. 순천에는 온누리라고 서울로 치면 따릉이처럼 공영자전거 시스템이 잘되어 있다는 정보였다. 내 자전거는 해결. 아들의 자전거를 KTX에 싣기 위해 앞바퀴 빼는 노하우를 익혔다. 보호헬멧을 배낭 속에 넣고, 출발.


보통 어른들은 자전거를 고속버스 짐칸에 싣는다고 알고 있다. 무궁화호에는 드물게 예매할 수 있는 자전거 좌석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궁화호를 선택하기에는, 코로나19로 기차 취식이 안되기 때문에 7살 아이가 기차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러닝타임을 고려해야  했기에 KTX를 선택. KTX 짐칸에 앞바퀴를 빼고 고정해 실을 수 있었다. 아주 완벽한 적재였다. 그런데 18인치 바퀴는 크기가 작아서 앞바퀴를 빼지 않아도 문제가 없을 거 같았고, 실제로 올라오는 길에는 그렇게 했더니 단단히 고정한 것만 확인하고 직원도 문제 삼지 않았다.

숙소는 순천역 뒤쪽 덕암동 게스트하우스를 선택. 도미토리룸이었지만 코로나19로 같은 룸에 일행을 섞지 않는 방침이었는 데다가 여행객이 우리밖에 없어서 2층 전체를 단독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아담하고 깨끗한 숙소였다. 조식은 숙소 주인이 운영하는 바로 옆 카페에서 American Breakfast로 유료 제공.


첫날과 셋째 날은 네 시간씩 쏘카를 대여했다. 거의 대부분의 기차역에는 쏘카존이 있어서 필요할 때 잠깐 빌릴 수 있어, 기차여행이 가지는 동선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쏘카로 다녀온 곳은 낙안읍성 민속마을과 드라마 세트장이다. 차창을 열고 벚꽃터널길을 달리니 꽃향기에 어지럽다. 하하는 자기 휴대폰의 꺼내 요즘 최애 하는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 노래를 틀었고 우리는 같이 큰소리로 합창을 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어슬렁어슬렁 순천역 명물이 된 카페 브루웍스와 청춘창고를 다녀봤다.


(여기서 성장과 휴대폰에 대한 기록 잠깐. 한 달 전쯤 하하의 휴대폰을 장만해주었다. 보통 빠른 경우에도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사주니까 많이 이르게 사준 경우다. 7살 봄을 맞으면서 하하는 조금 더 성장했다. 혼자 샤워를 하고, 유치원에서 태권도장에 갔다가 엄마 퇴근이 늦는 날에는 태권도장 옆 김밥집에서 혼자 김밥을 사 먹기도 한다. 그리고 태권도가 끝나면 태권도 차량에서 내려 혼자 집에 오고 싶다고 해서 아파트 단지 밑에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과 필요에 맞게 휴대폰을 장만해줬다. 단 위치추적 기능만 있을 뿐 스마트폰은 아니었고, 사용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정했다. 처음 이틀 정도 유치원에서 휴대폰을 꺼내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며 분별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뒤부터는 휴대폰을 철저히 기능에 맞게 사용하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라고 해봐야 자는 시간 빼고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은 네댓 시간이 전부다. 그 외 하루 종일의 시간, 특히 유치원에서 나오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아이가 필요할 때 엄마가 언제나 연락이 닿는다는 안심을 주고 싶었고, 나도 그게 너무 안심이 된다. 하하는 "엄마 태권도장 잘 왔어요." "엄마, 김밥 사 먹었어요." "엄마, 이제 축구 시작해요, 끝나고 연락할게요." 이런 전화를 수시로 한다. )


둘째 날은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르는 화창한 날씨였지만 전국에 황사가 심했다. 이놈의 코로나, 이놈의 봄철 황사. 순천역에서 동천 자전거길 진입까지 5분, 순천만 습지까지 자전거길로 10km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하하가 만 세돌이 되기 전 밸런스바이크를 사줬고 만 4년 5개월 즈음 18인치 바퀴 두 발 자전거로 넘어왔다. 보조바퀴 안 거치고 사준 날 바로 타더라. 밸런스바이크로 중심 잡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 공원,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탄게 전부였고, 자전거길로 아이와 나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자전거 타는 성인들한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과 연습을 거친 뒤 실행했다. 현재 하하는 만 5년 3개월이다.


10개월 정도 두 발 자전거를 틈틈이 탄 셈인데, 그래도 사전에 대화를 많이 했다. 찻길 인접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우려는 다른 라이더와의 충돌이다. 1) 헬멧을 벗지 않는다. 2) 자전거를 타면서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 3) 경주를 하지 않는다 4) 뒤에서 자전거가 오는 것 같으면 당황하지 않고 가던 길로만 쭉 가라 뒷 자전거가 너를 피해 앞질러갈 것이다, 등등. 뭐 나도 전문 라이더는 아니다. 심지어 개인 자전거도 없고 따릉이 족이다^^


순천역에서 순천만 습지까지 10km, 주차하고 순천만 습지 구경. 하하에게는 낙조보다도 끝도 없는 갈대밭보다도 놀라운 광경은 갯벌에 사는 게와 짱뚱어 들이었다. 나는 좀 걷고 싶었지만, 이 아이는 갯벌 쪽으로 머리를 처박고는 일어설 줄을 몰랐다. "엄마 저기 게가 있어요!" 그래 거기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는 게 천지다, 좀 걷자 아들아!!


순천만 습지에서 다시 순천역 방향으로 8km 정도를 라이딩해 순천만 국가정원에 왔다. 여기도 안에 자전거를 가지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주차해두고 걸어야 한다. 세계 각국의 정원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곳. 풀코스로 둘러보면 네 시간을 걷는다는데 이미 20km 라이딩을 한 7세 아이에게는 무리였다. 관람차를 타고 둘러봤다. 사실은 옆에 강을 끼고 아들과 자전거길을 나란히 달린 경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뒤는 아무래도 좋았던 거 같다. 월요일이라 자전거길은 한적했다. 하하는 여기서도 <한국을 빛낸 100인의 위인들> 노래를 틀었고 우리는 함께 바람을 가르며 노래를 불렀다. 달리다 꽃이 예쁘면 멈춰 서고, 공벌레 같은 예쁜(?) 벌레가 보이면 또 멈춰 섰다. "이 벌레 너무 예뻐요. 집에 가져가서 키우면 안 될까요?"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광명역에서 내렸어야 했는데 잠깐 정신을 팔다 지나쳐버렸다. 일반도로에서 아이가 자전거를 타게  수는 없어서 원래는 광명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계획이었다. 그다음 역인 용산역에 부랴부랴 내렸는데 용산역에서 집까지 택시는 너무 요금이 많이 나오는 거리였.

- 하하야 자전거 다시 한번 탈 수 있겠니?

- 네! 탈 수 있어요.

자전거길이 있는 전철역까지 이동해서 최대한 집에 가까운 곳까지 다시 예정에 없던 라이딩. 나는 등에 큰 배낭을 메고 따릉이를 탔다.


이틀 숙박 10만 원, 쏘카 네 시간씩 두 번 렌트 5만 원, KTX 내려갈 때는 마일리지와 특실 업그레이드 쿠폰으로 무료 특실 이용, 올라올 때 5만 2천 원, 각종 입장료 아이는 무료 나만 2만 원, 조식은 숙소에서 먹고 꼬막정식 등등 맛나게 먹은 비용. 여기까지 대략 30만 원에 다녀온 아들과 나 둘만의 2박 3일 순천 여행에 대한 기록^^



이번 여행을 하며 든 생각. 우리의 아이들이 사는 시대는 내가 어릴 적 시대와 다르다. (내가 마흔에 낳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 아이의 시대는 기후위기의 시대이고 코로나의 시대이고 그렇다. 그래서 경험하는 것이 다르고 접하는 것이 다르고 생각하는 게 다를 수밖에 없다. 지구가 아름답게 지켜지기를 바라는 소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이가 벌레를 사랑하면서 크는 것에 안도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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