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서로를 끌어당기기만 할까

이기려고 할수록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이유

by 미적호기심

요즘 대화는 종종 결론 없이 길어진다. 서로 말은 많이 하지만, 이야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회의에서는 각자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관계에서는 먼저 물러서는 쪽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 들기보다 내 입장을 지키는 데 에너지가 먼저 쏟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런 상태에 놓인다. 모두가 기를 쓰고 애쓰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순간. 누군가가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옳다고 박수 칠 수도 없는 기묘한 교착 상태 말이다.


이때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말한다.

“내가 틀린 건 아니잖아.”

“상대가 먼저 양보해야 상황이 풀리지.”


그러나 이런 말들이 공중을 오가는 동안에도 상황은 제자리에 머문다. 힘은 계속 쓰이고 있지만, 방향은 좀처럼 정해지지 않는다.


줄다리기.jpeg 〈네덜란드 속담〉(Netherlandish Proverbs) 중 ' 줄다리기를 하는' 부분장면


피터 브뤼겔의 「네덜란드 속담」에는 바로 이런 인간의 상태를 닮은 장면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줄을 붙잡고 서로를 향해 힘껏 당기고 있지만, 정작 아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은 움직임보다 긴장을 먼저 드러낸다. 두 사람 모두 힘을 쓰고 있고, 노력 또한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줄다리기 놀이와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 있지 않다. 한 사람은 긴 벤치 위에 몸을 반쯤 기댄 채 줄을 뒤로 끌어당기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나무 기둥을 지렛대 삼아 버티고 있다. 힘의 크기보다 그들이 각자 '어디에 몸을 기대고 있는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결코 게으르지 않다. 대충 힘을 쓰는 모습도 아니다. 각자는 자기 쪽으로 줄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며 사력을 다한다. 문제는 그 간절한 힘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장면에는 '협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대신 치밀한 '계산'만이 존재한다. 상대가 조금만 밀리면 내가 이긴다는 계산, 조금 더 버티면 결국 상대가 먼저 포기할 것이라는 오만한 기대. 그런 계산이 반복되는 동안 상황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않는다.


이 그림이 이토록 불편하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이 모습을 너무 자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혹은 소중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종종 같은 줄을 붙잡고 서로를 겨눈다. 설득보다 밀어붙이기를 선택하고, 합의보다 버티기를 택한다.


상대가 물러서야 내가 안전하다는, 손해 보지 않는다는 계산 속에서 대화는 점차 힘겨루기로 변질되고, 관계는 미동도 없는 대치 상태에 갇힌다.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이 있다.

“제 논에 물 대기”

공동의 상황 속에서도 오직 자기에게만 이롭도록 행동하는 태도를 뜻한다. 전체가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지금 당장 '내 논에 물이 들어오는지'가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림 속 줄을 잡은 두 사람의 손에도 바로 그 태도가 묻어 있다. 함께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잊힌 지 오래다. 오직 상대를 밀어내고 내 구역을 지켜내는 것만이 목표가 된 싸움. 줄은 점점 더 팽팽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계는 조금도 단단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은 무능해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부족해서 제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노력들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 남는 것은 소모된 에너지와 서로를 향한 피로뿐이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더 옳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지금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가를.


나아가 한 가지를 더 묻는다. 지금 벌이고 있는 이 힘겨루기가 정말 우리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를 지켜주고 있느냐고 말이다.


방향 없는 힘겨루기의 끝에서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같은 제자리다. 줄은 여전히 끊어질 듯 팽팽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비장하다. 각자의 논에만 물을 대려다 정작 소중한 줄을 놓치고 마는 것. 이것이 방향을 잃은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조용하지만 잔인한 결말이다.


브뢰겔 1번.jpg 〈네덜란드 속담〉(Netherlandish Proverbs), 1559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the Elder)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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