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 감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지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사유와 작품의 진행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사유이다. 전자의 경우가 바로 미술, 문학 작품 감상이고 후자의 경우가 무대예술작품 감상이다. 감상의 흐름이 내 의지에 따라 속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유로 미술관에 가면 극장보다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막상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걸려 있는 벽면을 따라가다 보면 왠지 모를 조급함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흘러가다 보면 내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 순간을 맞이하고 나면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된다.
미술관에 가면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설치된 작품을 보아야 하는 어린아이의 경우는 어른보다 보물찾기 놀이가 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벽에도 아이들의 미적 주목을 이끌어내는 작품은 항상 있다. 최근 내 딸이 찾은 보물은 <라울 뒤피: 색채의 선율> 전시에서 본 <전기의 요정 La Fée Electricité >이라는 작품이었다.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7월의 예술의 전당,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분수의 물줄기가 화음을 만들어내고 동시에 춤추는 무용수처럼 만들어내는 물줄기사이로 무지개가 피어난다. 그 모습을 본 딸아이가 외친다.
“전기의 요정이 나타났다!”
예술의 전당 분수대에 피어난 무지개
1. 무엇이든 그려내고 어디에도 그릴 수 있어!
이 할아버지가 ‘라울 뒤피’인가 봐.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태어나 파란색을 많이 보고 컸대. 그래서 그림에 파란색이 많은가 보다.
“엄마, 나처럼 바다 근처에 살았나 봐. 꽃도 많이 보고 컸어? 그래서 꽃 그림도 많은 거야?”
그럼, 린이처럼 예쁜 꽃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들었어. 그래서 여기 바이올린과 꽃이 함께 있는 그림도 있네.
“바이올린이랑 꽃이 예쁜 색으로 그려져 있어. 둘이 숨바꼭질하는 것 같다.”
라울 뒤피는 종이에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지만 다른 방식으로도 그림을 만들어냈단다. 이건 판화라고 하는 거야. <동물시집>이라는 책에 그림을 넣기 위해서 나무에 그림을 그린 후에 조각처럼 파내는 작업을 한 다음에 잉크나 물감을 묻혀서 종이에 찍어내는 거지. 저기 가서 우리도 한 번 찍어볼까?
라울 뒤피는 천에도 그림을 그렸어. 그래서 그 천으로 멋진 옷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지. 저기 있는 커튼도, 의자도 모두 라울 뒤피가 천 위에 그린 그림들로 만든 거야.
“엄마, 그림으로 만든 것들이 정말 많다. 집에 있는 것들도 다 그림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맞아, 라울 뒤피가 보여준 것처럼 어느 곳에서도 색은 만들어지고 작품이 될 수 있단다.
전시장 한 켠에 마련된 판화 체험
2. 이렇게 많은 사람들 덕분에 전기가 생겨났다고?
이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라울 뒤피: 색채의 선율>에서의 백미는 높이가 8m나 되는 방에 미디어아트로 설치된 <전기의 요정 La Fée Electricité>이었다. 전기의 발명이 시작된 고대 학자들에서부터 출발하여 올림푸스의 신 제우스와 에디슨, 퀴리부인 등 전기 개발에 기여한 과학자들, 그리고 전기의 요정으로 묘사된 무지개 여신 아이리스까지 차례로 전시실 벽면에 나타나 자연의 빛과 전기에 의해 발견된 다양한 색채로 방 안을 채운다.
탈레스(가운데): 정전기를 발견한 사람
겨울에 이불 덮다가 찌릿했던 적이 있었지? 그때 엄마가 정전기라고 알려줬던 것 기억하니? <전기의 요정>에서 가장 먼저 나왔던 세 사람 중에 가운데 있던 사람이 바로 처음으로 정전기를 발견한 사람이야. 아주 옛날에 살았던 ‘탈레스’라는 사람인데 호박에 털이 달라붙는 것을 보고 정전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대. 정전기기의 발견이 전기 발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뒤피는 이 사람을 그림의 시작 부분에 그린 거야.
제우스: 번개를 던지는 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저 수염이 긴 아저씨가 보이니? 저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신이야. 신들의 신이지. 제우스는 ‘번개’를 만들어 내는 힘이 있는데 언제든 번개를 만들어 던지기도 하지. 이 그림에도 제우스의 바로 밑에 번개가 생긴 것이 보이지? 이 번개가 왜 그려져 있냐고? 그건 번개가 내리칠 때 전기가 생겨나기 때문이지. 라울 뒤피는 제우스가 인간 세상의 하늘에 던진 번개를 보고 사람들이 전기를 발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렸던 거야. 이러한 이유로 번개 그림 바로 밑에 전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을 그렸지.
에디슨: 전기를 발명한 사람
우리가 깜깜한 밤에도 환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은 여기 그려진 토마스 에디슨이라는 사람 덕분이야.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했는데, 이 전구 덕분에 사람들이 밤에도 낮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지. 늦은 밤에도 책을 읽거나 일을 할 수 있었고, 깜깜한 길거리가 환해지니 사람들이 밖에 나갔고, 가게나 식당들도 저녁까지 장사를 하게 되었단다.
아이리스: 전기의 요정
이 그림에서 전기의 요정은 누구일까? 저기 입으로 바람을 만들어내는 여자 요정이 보이니? 바로 아이리스야. 아이리스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무지개 여신이야. 아까 제우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왕이라고 했지? 바로 그 같은 신화에 함께 나오는 여신이지. 이 그림에서 무지개 여신인 아이리스가 전기의 요정으로 나온 이유는 뭘까? 전기로 다시 환해지기 시작한 밤에 아이리스가 입김으로 무지개 빛을 불어넣었어. 전구 빛이 무지개를 비추니 밤에도 아름다운 색으로 빛나게 되었지.
낮에 보는 알록달록한 세상과 다르게 밤에는 또 다른 알록달록한 색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전기의 요정은 우리에게 더 많은 색깔들을 알려주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닐까?
3. 전기를 통해 볼 수 있는 색들 colors
세상에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색들이 많아. 태양, 태양 빛에 일렁이는 바다, 하늘과 구름, 꽃, 꽃과 나뭇잎 위에 움직이는 벌레들, 새들과 동물, 그리고 너무나 예쁜 린이의 모습. 그렇지만 전기를 통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또 있지.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던 린이의 모습, 린이가 응급실에서 찍었던 x-ray 사진 속에서의 린이의 뼈 모습, 저녁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 어두운 바닷속, 그리고 드넓은 우주의 모습들 말이야. 전기가 없다면 우리는 그곳이 어떤 색으로 빛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엄마는 전기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린이와 함께 <전기의 요정> 그림을 보고 전기 덕분에 더 멋진 색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색깔 찾기 놀이를 하고 싶게 만드는 재미있는 그림이야.
“엄마, 그럼 우리 오늘 밤에 자기 전에 라이트(light) 켜고 색깔 찾기 놀이해 볼까?”
그날 밤 우리가 찾았던 방충망에 붙어 린이 방을 구경하러 온 벌레, 짙은 초록의 잎들, 주황색과 분홍색을 합친 것 같은 색의 너와 나의 발. 그래, 우리는 언제라도 여러 색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지. 함께하는 모든 순간마다 비춰내는 색을 찾아 눈에 담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