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면 좋고 져도 괜찮아.

체육(스포츠)이 지니는 가치에 대해

by 문핑

만 3세가 되던 봄, 놀이학교로 딸아이를 픽업하러 갔을 때 일이다. 평소였다면 큰 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뛰어와 안겼을 텐데 무슨 일인지 눈물이 그렁그렁 곧 터지기 직전의 얼굴로 나온다.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하원 전 마지막 수업이었던 체육활동에서 게임에 진 후 울었다는 것이다. 불현듯 지난번 유아 체육클럽에서 자기가 맨 마지막 순서였다며 속상해했던 기억이 났다.


“린아, 이기면 좋겠지만 져도 괜찮아.”


내가 딸에게 체육 활동을 시키는 이유는 즐겁게 놀기 위해서나 체력 증진 때문은 아니었다. 체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의 의미를 알고 다양한 움직임을 경험하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체육에서의 가치는 무엇일까? 부모들이 그 가치를 알고 아이들에게 체육을 시키는 것일까? 유아체육 교사들은 그 가치를 반영하여 수업을 구성하였을까? 궁금증을 품고 내가 지향하는 체육의 가치를 곰곰이 생각하고 글로 쓰기로 했다.

체육교육의 가치는 크게 외재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로 나뉜다. 외재적 가치는 기술(운동 기능 숙달), 체력(성장 발달), 활력(스트레스 해소)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내재적 가치는 ‘신체활동’이라는 교과를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스포츠의 내재적 가치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정의하여 유아에게 알맞은 교수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스포츠맨십을 통한 올바른 성격 형성


박사과정 재학 시절 ‘체육교수 기능 개발 및 접근 연구’라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 당시 담당 교수님은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하셨던 분이셨다. 교수님께서 하루는 한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참관하실 일이 계셨는데 그날 아이들이 배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선생님: 얘들아, 오늘은 수업을 하기 전에 서로 팀을 만들고 어떤 순서로 정하는 게 좋을지 너희끼리 의논하고 팀과 순서를 정하는 거야.

그리고 아이들은 서로 모여 어떻게 팀을 나눌지에 대해 그리고 누가 먼저 하는 게 좋을지, 그리고 그다음, 그다음의 순서를 어떻게 정하면 좋을지에 대해 의논하고 순서를 정했다고 한다. 이 수업에서 아이들이 배운 것은 바로 스스로 공정하게 경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당시(만 3세) 다니던 스포츠클럽에서도 이처럼 ‘순서 지키기’를 배우며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이 덕분에 아이들은 자신의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먼저 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잘 참았다.


“순서를 지켜야 친구들 모두 할 수 있어.”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님의 지도하에 아이들은 “친구야, 힘내!”를 외친다.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가 있다면 격려해 주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친구 모두에게 즐거웠다는 인사와 함께 서로를 안아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매 수업마다 아이들의 즐거웠다는 마무리 인사가 참 인상 깊었는데, 이는 스포츠맨십에서 말하는 경기의 승패에 얽매이지 않고 그 순간을 즐기는 것을 강조하는 바가 순수한 모습으로 발현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체육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스포츠맨십을 배운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성격 형성(책임감, 협동심, 예의, 자제력, 관용)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가치와 의미를 깨달은 아이들은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으로서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삶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이다.


2. 문화 체험


체육활동은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만큼 역사적 깊이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구성원에서 공유되는 만큼의 사회적 넓이를 가지고 있다(인문적 체육교육과 하나로 수업, p.97, 최의창).

방학을 맞이하여 서울에 가기 위해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나와 딸은 공항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시청하였다. 큼지막한 화면에서는 여자 씨름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딸아이는 한참을 보더니 온갖 궁금한 점을 쏟아내었다.


“엄마, 텔레비전에서 재밌는 게임을 하고 있어. 저게 뭐야? 넘어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저건 노는 거야?”


“저건 씨름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하던 놀이였어. 그리고 동시에 체육 활동이었지. 린이 학교에서 하는 PE(체육수업)처럼 말이야. 옛날 사람들은 밭에서 일을 하다가 씨름을 하며 쉬는 시간을 가졌단다. 씨름을 하거나 구경하면서 밭일을 하며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즐거운 기분으로 바뀌는 거지. 또 씨름을 하면 산을 지나가다 호랑이 같은 무서운 동물을 만나더라도 용감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긴단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이들, 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 모두 씨름을 좋아했어.

씨름은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리와 허리에 묶은 샅바라는 줄을 잡고 힘을 겨루는 경기야. 줄을 어떻게 잡고, 어느 방향으로 힘을 주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상대를 넘어뜨리려야 하지. 그리고 상대가 다치지 않게 모래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경기를 해야 해. 씨름대회에서 이기면 천하장사가 된단다. 천하장사에게는 황소를 상으로 줬어. 옛날에 씨름 대회에 나간 선수들 중에는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많았거든. 옛날에는 밭일을 할 때 황소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황소가 아주 귀했단다. 그래서 저기 화면에 나오는 천하장사도 황소 모양의 트로피를 받은 거야. 엄마랑 오늘 집에 가면 이불 펴 놓고 씨름해 볼까?”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씨름 경기였지만 나의 딸은 오늘 씨름을 통해 경기 방법, 유래, 그 옛날 농경사회의 문화 일부를 알게 되었다. 씨름은 삶의 애환을 달래는 놀이이자 전통 무예, 그리고 지금은 국기가 되었다. 씨름은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민족의 얼이 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가 씨름처럼 저마다의 얼을 지니고 있다. 아이들은 스포츠를 통해 그 속에 담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그 다양함을 이해하게 된다.

김홍도 <씨름>


3. 스포츠를 하는 이유는 사랑이야!


필자가 생각하는 체육의 궁극적 가치는 인류애이다. 이는 올림픽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다. 유아기 때의 체육은 다양한 신체 활동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것에 목적을 둔다. 재미를 느끼게 되면 실력 향상에 따른 기술 습득이 이루어진다. 이때 아이는 어려움을 경험하고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를 격려한다. 이 순간은 유아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예술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자기 한계에 부딪쳤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는 자기 한계가 아니다. 한 단계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연습단계이다. 이 순간을 넘어서면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이는 자기애로 발전한다. 자기애는 인류애의 시작이다. 자기애가 있는 사람은 상대의 노력과 그 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 체육활동이나 다 함께 하는 단체활동, 그리고 그 활동의 밖에서 지켜보는 것 모두 나 자신만큼이나 서로를 아끼고 응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딸에게 다시 말한다.


“린아, 이기면 좋지만 져도 괜찮아. 그런데 즐거웠니? 함께 한 친구들에게 멋졌다고 인사해 주었니? 네가 친구들과 함께 한 그 시간 동안 엄마도 밖에서 너를 응원하며 함께 그 시간 속에 있었단다. 너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널 자신감 있게 만들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친구를 응원하고 격려하게 만든단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에도 사랑을 심어주지. 스포츠는 결국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을 만들게 해 준단다. 즐겁고 재밌었다면 이긴 것만큼 좋은 거야. 그러니 이겨도 좋고 져도 괜찮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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