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항공권 날린 멍청비용
폭발해버렸다.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줄이 끊어졌다. 학교도 땡땡이 쳐가며 포트로와 런던 여행도 다녀왔는데 잠깐 숨통을 트여주는 정도밖에 안됬나보다. 더이상 여기서 혼자 이렇게 지내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내 스스로가 위태롭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이주 뒤 시작하는 겨울방학에 맞춰 미리 사둔 한국행 비행기표가 있었는데도 그 기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마침 항공권 프로모션이 떠서 결국 그 주 토요일 출발하는 한국행 편도 티켓을 샀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2주 정도의 시간은 아주 짧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었는데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곧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테니 시차 적응도 하지 않았다. 이 기간동안 기억나는건 갑자기 연락도 없이 나타난 딸에 엄청 놀라했던 가족들의 얼굴과 처음으로 힘들다고 아빠 앞에서 울었다는거. 충분히 회복이 되지 않았음에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개운하지는 않았지만 준비중인 공연이 있었기에 집에서도 틈틈히 연습을 하며 다시 몰입하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는 중이었다. 수도 없이 탔던 비행기인데 상상하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항공권 사용하실 수 없으세요.”
“네..? 왜요?”
“왕복 항공권은 무조건 차례대로 사용하셔야해요.”
입국 할 때는 새로 산 편도 항공권으로 들어왔기에 왕복 항공권으로 예약 한 프랑스로 돌아가는 티켓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왕복 항공권은 차례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무효라고 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항공 규정이 있다니. 내 돈 주고 산, 게다가 이미 자리도 예약 되어 있는 항공권이였기에 탑승이 불가능할거라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아니, 나에게는 이런 생각 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건 당연스러운 상황이었다. 환불도 안된다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왕복항공권은 무조건 차례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긴 왕복 항공권을 차례로 안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항공 규정 몰랐던 날 탓해야지. 모든 실수는 경험이라며 위로했지만 내가 치룬 멍청비용 앞에서는 속이 쓰렸다. 왕복 항공권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공항온지 30분만에 다시 4시간 버스 타고 집으로 향했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웃겼다. 꼬박 하루를 무거운 짐을 끌고 공항 왕복하는데 써버린 것이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당장 며칠 뒤 부터 시작되는 수업과 연습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다시 강하게 다잡았었는데 허무하게 긴장감이 풀려버려 찝찝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도치 않게 주어진 시간을 선물로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프랑스는 싸데뻥*의 나라니까 이정도는 이해해줄거야. 기왕 이렇게 된거 일주일 정도 더 쉬다 가자.’ 혼자 결정하고 일주일 정도 더 쉬다 가겠다고 학교에 통보 메일을 보냈다.
마중나온 부모님의 얼굴을 다시 봤을 때, 우린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포복절도 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그 웃음은 분명 딸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부모님의 기쁜 웃음이었다.
*싸데뻥 : 프랑스어로 'Ça depend'. 영어로 'It depends'. 즉, ‘상황에 따라서요.’ 정도로 해석이 된다. 싸데뻥의 나라라라고 할 정도로 프랑스에서는 절대 가능하지 않아보이던 것이 너무 쉽게 해결 될 때도 '아니 도대체 이게 왜 해결이 안돼?' 라는 일도 정말 많다. 정말 그 때 마다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