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무’ 예의가 발라

문화권과 태도에 대한 깨달음

by 애융

어느 날 레슨 후, 평소처럼 인사하고 레슨실을 나오려는데 교수님이 붙잡았다.


“애융, 등을 보이면서 나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다. 어리둥절한 나의 표정을 본 교수님은 웃으시며 두 손을 가슴 앞에 기도하듯 모으고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과장된 종종걸음을 몸소 보여줬다.


“너는 인사하고 항상 그 상태로 뒷걸음질 치면서 문 닫고 나가. 게이샤 같아.”


아하. 난 그저 문 두 걸음 앞에서 인사를 했기에 그 상태로 나온 거였다. 멋쩍게 웃으며 일본인 반주자 선생님 눈치를 살폈다. 프랑스에 오래 살으셔서 그러려니 하시려나 했으나 선생님도 웃음기가 없으셨다. 인지하지 못했다며 다음부터는 등 보이고 나가겠노라 대답을 했다.


그날, 교수님과 반주자 선생님과 함께 학교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자리가 보이면 자리를 잡았다. 유리로 덮인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교수님과 반주자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먼저 안 먹고 있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어요.”

“애융, 넌 너무 예의 발라. (T’es trop polie)”


그때 교수님이 사용한 ‘너무’는 프랑스어로 ‘Trop’ 이란 단어였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너무 과하게 예의가 바르다’라는 뉘앙스였다. 난 나 자신이 정말 예의가 바르다기보다는 내가 살아온 문화권 안의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식사 후, 반주자 선생님께 살짝 물어봤다.


"내가 식사 기다리고 있었던 게 선생님 눈에도 과해 보였나요?"

"난 너의 의도를 잘 알지만 프랑스 사람들한테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


도대체 어떤 부분이 과하게 느껴졌던 걸까. ‘과한 예의’에 대해 고민을 하며 신경 쓰고 있던 중, 준비하고 있던 협연 리허설 날이 다가왔다.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협연자로 뽑아줘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갔다. 당시 차세대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던 이탈리아 지휘자와 프로 오케스트라단과의 협연이었기에 긴장 상태였다. 부드럽게 흐르던 리허설 도중, 한 부분의 템포가 지휘자와 잘 맞지 않았다.


“템포가 느려?”


긴장된 그 순간, 머릿속에서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전에 비슷한 상황에서 먼저 ‘내 생각/의견은 이렇다’ 설명을 하고 ‘네/아니요’로 대답을 해야지 왜 먼저 ‘네/아니요’라고 대답을 하냐는 질책 아닌 질책을 받았었다. ‘그래. 먼저 설명을 하고 대답을 해야지.’ 하고 정말 0.3초 고민을 하고 대답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 ‘응, 아니(Oui ou non)’ 로만 대답해. 너 일본인 아니고 한국인이잖아.”


등 뒤에서 들리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희미한 웃음소리. 지휘자의 그 말이 너무 냉소적(sarcastic)이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긴장돼서 대답이 살짝 늦어진 게 잘못이라면 인정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일본인과 한국인이 왜 나오는 걸까. 어떤 의도였을까.


궁금해졌다. 이 나라에서 ‘예의’란 무엇일까. 프랑스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고를 들었다.


“사람들이 네가 너무 예의가 바르다고 느낀다면 넌 원하는 걸 쟁취하지 못하고 뺏길 거야."


그렇다. 양보나 예의, 혹은 배려한다고 생각한 행동이 소극적인 태도로 보이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자신감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동양 여자애들은 순종적이야.’라는 편견이 더해져 별거 아닌 행동에서 더 과한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봤다.


언어는 노력하면 완벽하게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다. 하지만 관습을 온몸으로 습득하기에는 여러 시행착오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문화에 완벽하게 스며들기 위해 맹목적인 노력을 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걸 배웠다. 문화권과 상황에 따라 내 몸에 체득된 익숙한 행동을 적당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특히, 현지인들과 부딪히며 경쟁을 하거나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과감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나는 원래 이렇게 행동하며 살아왔어요.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옳은 거예요.'가 오히려 자신감 없는 태도로 보인다면 나의 행동이 나를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을 거고 이해를 바라서도 안된다. 과하거나 공격적인 것이 아닌 편안한 나의 모습에서 당당하고 진실되게 행동하는 내가 되길.


*아주 주관적인 경험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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