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챙총’은 친해지고 싶음을 나타내는 인사야

인종차별에 관하여

by 애융

프랑스에도 코로나가 관련 소식이 슬금슬금 매체를 통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마스크도 없었을뿐더러, 유럽에서 마스크를 쓴고 다닌다는 건 이미 중증 환자라는 것을 의미했기에 적당히 눈치 보며 목도리로 얼굴을 돌돌 말고 생활했었다.


몇 개월 동안 준비한 공연이 있었기에 코로나는 뒷전으로 하고 다들 열심히 막바지 준비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에도 코로나의 위험성이 공식화되어, 영화관, 공연장 같은 폐쇄된 공공장소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었다. 관객 수가 반으로 줄었지만 공연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끝까지 의기투합했다. 그런 우리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2회 차 공연 날 자정 이후로 모든 공공장소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정상화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아 갑작스러운 무기한 휴식이 주어진 것이다.


여전히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들은 함께하는 마지막 자유의 밤이라며 펍으로 갔다. 사장님도 재고를 없애야 한다며 반 값에 맥주를 팔기 시작했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모든 것을 잊은 즐거운 폭풍전야였다.


아쉬운 나머지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파티(soirée)를 하기로 했다. 마침 루루가 자기 집이 빈다며 제안을 해줘서 다 같이 밤거리를 걸으며 언덕을 올라갔다. ‘오! 드디어 루루랑 친해질 기회가 생기겠다.’ 며 내심 기대했다.


루루를 처음 본 것은 학교 입학시험 마지막 날이었다. 일주일 동안 치러진 시험이 다 끝나고 후련하게 학교 정문으로 나오는 길에 주차장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한 사람을 보고 멈춰 섰다. 긴 금발 생머리에 화려한 꽃 자수가 박힌 보헤미안 스타일의 흰 원피스를 입은 키 큰 프랑스 여자 사람. 눈이 마주쳐서 살짝 웃어 주는데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 매력적이었다.


학교에 입학하고 며칠 안 돼서 우리 과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는 자리가 생겼다. 혼자 대학원생으로 입학해 아무도 몰랐기에 뻘쭘하게 혼자 문 앞에 서있었다. 하나둘씩 사람과 인사를 하고 있던 그때, 멀리서 그 여자애가 보였다. 내적 반가움이 몰려왔다. 웃음소리가 시원했던 루루는 파리출신인 프랑스-영국 혼혈이었고 외모만큼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역시나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학부, 대학원 통틀어 20명 정도 되는 작은 인원이었지만 학년이 달라 제대로 본 적도 없었기에 조금이나마 대화하고 싶었다.


10명쯤 루루집에 도착해 파티를 시작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도 피로감이 쌓였던지, 저질 체력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루루포함 몇 남지 않은 친구들과 함께 얼떨결에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다.


루루는 비빔밥이 파리 보보*들 사이에서 트렌드라며 자기도 최근에 먹어봤다고 했다. 비건인 루루는 너무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발견했다며 뿌듯해했다. 찬장에서 여러 가지 중국과 일본차를 가져와 보여주기도 하고 요가와 명상에 빠져있다며 나에게 요가와 명상에 관련된 여러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호의를 표현한 스몰토크인 건 이해했지만, 전형적인 아시아 클리셰였다.


“애융, 너는 왜 프랑스 사람들이 ‘니하오’, ’ 곤니치와’라고 하는 거에 기분 나빠해? 그건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사람들이 인사하는 거야!”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런던에서 교환학생 했을 때 레스토랑에서 일했었어. 그때 손님들이 내 억양 듣고 따라 하면서 나한테 ‘Hey, French girl’ 했을 때 나는 기분이 하나도 안 나빴어. 공격하는 게 아니라 친해지고 싶어서 던지는 말이잖아. 그것처럼 사람들이 너한테 똑같이 인사하는 거야. 네가 어느 국적인지 모르니까 ‘니하오’, ‘곤니치와’라고 인사하는 거고.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아시아 사람들은 그걸 왜 인종차별이라고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어.”


너무나 해맑은 그녀의 표정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름다운 백인인 이 친구는 인종차별이 뭔지 모르는 걸까. 하긴, 모르겠지.


“아 그런가? 나와 너무 친해지고 싶어 그 짧은 시간에 달리는 차 안에서 “니하오! 칭챙총!”이라고 외치며 지나간 거였네. “곤니치와” 하며 밤에 따라오는 것도 내가 위험할까 봐 친해지려고 하는 거였구나. 심지어 버스에서 너무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뒷자리까지 따라와 앉았었어. 게다가 친절히 내 국적에 맞춰 인사를 하기 위해 구글 번역기를 써가며 온갖 아시아 언어로 내 뒤에서 웃으면서 크게 따라한 것도 나랑 친해지려고 한 거겠지. 아, 정말로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한 사람 있었어. 서점에서 젊은 프랑스 남자가 다가오더니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먼저 인사를 했어. 그러더니 한국어로 모르는 문장이 있다 하면서 미리 캡처해 둔 화면으로 보여주더라고. ‘나 너랑 자고 싶어.’ 한국어로 인사했으니 이건 정말로 나랑 친해지고 싶다는 거겠네?”


정말 순수하게 친해지고 싶은 의도로 ‘니하오’, ’ 곤니치와’라고 인사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누군가에게는 한국이 중국, 일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어서 그랬다고 할 수도 있다. 아시아라고는 중국 밖에 모르는 정말 무지한 사람일 수 있다. 또는 매일 집 밖을 나가면 겪는 일상이 되어버려 피해의식을 가지고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일 수도 있다.


거두절미하고 인사는 사람에게 예의 또는 호의를 표현하는 행동과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에 상관없이 우리가 인종차별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좋은 의도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토니 모리슨의 <타인의 기원>에서 말하듯이 인종차별은 타자화를 통해 사회적, 심리적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 권력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행동이다. 단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외모와 피부색이 다르니 맥락 없이 한마디를 툭 던지며 타자화 시키는 행위 자체가 기분이 나쁜 거다. 결국 언어 뒤에 숨어있는 ‘의도’가 핵심이다.


지금은 무시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다고!




*보보: 'Bourgeois-bohème'의 약자이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문화생활 즐기고 체제에 반대하는 신흥 세대를 일컫는 프랑스의 젊은 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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