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세계와 클래식 음악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얼굴만 알고 지내던 분에게 연락이 왔다. 알제리에서 단, 조건은 무조건 한 알제리에서 공연할 한국 음악가를 찾고 있는데, 혹시 관심이 있냐고. 감사한 마음으로 수락했다. 단, 조건은 한국인으로만 팀을 꾸려야 한다는 것. 알제리 문화부에서 매년 각국의 음악가들을 초청해 국제 음악 페스티벌을 여는데, 그해 한국팀으로 참가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런던에 있는 앙언니에게 바로 연락했다. 언니는 흔쾌히 수락했다. 자주 합을 맞춰봤고, 언니의 실력을 너무 잘 알기에 함께 연습할 수 없어도 걱정되지 않았다. 고민되는 부분이 있다면, 쉬운 곡 위주로 준비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쉬운 곡, 쉬운 곡이라.
한 번쯤 들어본 익숙한 곡들로 구성해야 할까, 아니면 덜 익숙하지만 예술성이 돋보이는 곡을 선택해야 할까.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관객에게 다가갈 친근함과 동료 음악가들에게 인정받을 음악성, 두 가지를 모두 잡고 싶었다. 며칠간의 회의를 거쳐 레퍼토리를 구성했고, 각자 연습한 후 알제리에서 맞춰보기로 했다.
리옹에 있는 알제리 영사관을 몇 주 동안 들락날락한 끝에, 복장이 터지는 비자 발급 과정을 거쳐 마침내 알제리에 입국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정부 관계자가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VIP 대우를 받으며 세관을 통과했다. 옆 줄에서는 사람들이 길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여권에 도장만 찍고 곧장 통과하는 그 짜릿한 순간. 공연을 위해 초청받았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아프리카 대륙. 하지만 유럽식 건축물과 아프리카 특유의 강렬한 색감이 공존하는 거리. 햇빛을 머금은 지중해의 해변과 익숙하게 들려오는 프랑스어. 흔히 떠올리는 '블랙 아프리카'와는 다른 마그레브 지역의 분위기. 그러나 그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도 여전히 내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수도 알제에서는 게릴라전이 발생할 수 있으니, 호텔 밖으로 혼자 나가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마침내 공연 날, 알제리 오페라에 도착했다. 중국 자본으로 지어진, 하얀 대리석으로 웅장하게 세워진 공간. 소리가 공간을 타고 흐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리허설 때 텅 빈 공연장에 음악이 가득 차오르는 순간의 희열이 가시기도 전에 공연장의 관객들은 매 곡마다 정성스럽게 환호해주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흐뭇하게 손뼉을 치며 미소 짓는 얼굴들. 그 따뜻한 반응이, 우리가 이곳에 온 의미를 다시금 새기게 했다.
"너희가 세계 어디에서 공연을 하든 마지막 곡은 항상 아리랑이 되면 좋겠어." 학사 시절 한 교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알제리 무대의 마지막을 아리랑으로 채웠다. 선율이 흐르며 고요해진 객석.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울림.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듯했다.
공연이 끝난 뒤, 인도와 라오스에서 음악을 전했던 기억이 겹쳐 떠올랐다. 제3세계에서 문화를 전한다는 것. 참 의미 있는 일이지만, 공연장에 오는 사람들은 한정된 계층이다. 클래식 음악을 모든 이가 누리기에는 여전히 장벽이 높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음악가로서의 가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에도 음악은 전해졌다. 관객의 눈빛, 손짓, 공기 속에 남은 떨림. 변화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 하나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