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 섬으로 이사왔습니다.

여정과 첫 인상

by 애융

약 3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새로운 현실로 들어가는 날. 푸르게 펼쳐진 바베이도스 사탕수수밭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을 도와줄 에이전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한의 것들만 챙겼다고 생각했지만, 30kg에 가까운 여행가방 두 개, 기내용 가방 두 개, 그리고 백팩 두 개. 무게 초과가 걱정됐지만, 더 이상 구할 수 없을 라면과 한국 음식들로 가득 찬 가방을 포기할 수 없었다. 추가금액을 내야 한다면 기꺼이 내리라.


걱정과는 정반대로 무게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고 티켓을 받았다.


공항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탑승장. 연착을 예상했기에 차분히 기다렸다. 티켓 확인 후 활주로를 가로질러 비행기로 향했다. 그런데, 세상에. 지금까지 타 본 비행기 중 가장 작다. 좌석에서 조종실이 바로 보이는, 정원 12명의 경비행기. 색다른 경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제대로 날 수 있을까?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은근한 불안감도 스며들었다.



국적도 이름도 모르는 10명의 승객들. 하지만 같은 섬을 향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내적 동질감이 생겼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그 작은 섬을 향하는 걸까? 여행? 일? 어쨌든 작은 섬에서 지내다 보면 한 번쯤 마주치겠지. 아니, 이렇게 작은 섬인데 분명 마주칠 거야. 나조차도 인생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 목적지를, 이들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긴 활주로를 달려 이륙. 바베이도스를 등지고 투명한 카리브해로 나아갔다.

어마무시한 소음과 진동 속에서 소리쳐야 겨우 대화가 가능한 수준. 하지만 곧 익숙해지면서 옥빛 카리브해를 감상했다. 바다 위에 덩그러니 놓인 섬들, 가끔씩 떠다니는 하얀 요트, 그리고 물결 위에 드문드문 흘러가는 갈색 띠들.


45분의 짧은 비행인데 예상보다 더 빨리 섬에 착륙했다. ‘벌써 도착이라고?’ 어리둥절한 승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여기 맞아?”

“여기 어디야?”

“이렇게 빨리 도착한다고?”


지도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인터넷이 없어 확인할 수도 없었다. 답답해하던 그때,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명의 영국인 부부가 손을 흔들며 내리고, 남은 승객들은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동료라는 묘한 유대감을 확인한 듯했다. 자연스레 서로의 목적을 공유하며 앞으로 마주칠 동료인지 가늠했고, 뎅기열에 걸려 고생한 경험과 해결책부터 소소한 여행 정보까지 공유했다. 긴장이 풀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 비행을 이어갔다.


15분쯤 더 날아가니, 저 멀리 보이는 섬 하나.

‘아, 저기구나. 여기가 내 새로운 집이구나.’


비행기 문이 수동으로 열리고, 노을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공항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공항이라고?’

어두컴컴한 실내, 켜지지 않은 조명, 어수선하게 구석으로 몰려 있는 가구들. 폐허 같은 분위기였다. 작동되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는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입국 심사관이 서 있었다. 형식적인 질문과 절차를 거쳐 공항 밖으로 나오니, 우리를 기다리는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처음 마주한 풍경은 분홍빛 하늘과 맑은 바다, 그리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들. 허리케인의 피해 규모는 뉴스와 기사로 보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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