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 취약 국가와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작년 6월 말, 허리케인 베릴(Beryl)이 캐리비안을 덮쳤다. 가장 이른 시기에 발생한 카테고리 5 허리케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섬에 도착한 지 보름 정도 된 상황에서 허리케인 대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남자친구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 심각성이 와닿지 않았다.
바람이 점점 강해질 때쯤, '사고 예방해야 해서 전기를 다 끊어야 하니 걱정하지 마'를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실시간 소식을 확인하려 해도 간간이 보이는 현지 뉴스 몇 개 정도뿐, 그 마저도 정확한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 그 근처의 섬을 직통으로 통과해 그 섬이 파괴되었다는 기사를 보며, 안타까움과 동시에 다행히 그 섬은 피해 갔겠구나 하며 한 시름 놓았다. 며칠 후, 딱 장소에서만 와이파이가 된다며 연락이 왔다.
전기가 끊겨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고, 전자 기기 충전도 거의 불가능하다. 물 공급이 중단되어 제대로 씻을 수도 없고, 식량 보급 경로가 차단되어 매일 음식 저장량을 확인하며 조금씩 나누어 먹고 있다. 게다가 통신사 케이블과 전신주도 날아가 인터넷도 여전히 되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도 안 온다는 실시간 생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상황이 안정된 후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
3개월이 지나 도착한 섬은 여전히 재앙의 흔적이 선명했다. 공항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 처음으로 보이는 섬 안내 표지판은 반쯤 기울어진 채 겨우 버티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날의 흔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지어진 대부분의 집들은 지붕이 날아갔고, 색색의 페인트가 칠해진 벽은 무너져 있었다. 어떤 집은 그저 터만 남아 있었다. 산사태로 흙 무더기가 도로 위로 내려와 있었고, 태풍의 위력을 보여주듯 뿌리째 뽑혀 쓰러진 나무들이 가는 길마다 늘어져있었다. 원자재는 다른 섬에서 공급받아야 했고, 그 섬조차도 다른 나라의 지원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기에 복구는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을 빠져나올 때까지 공사 소리와 파도 소리가 뒤섞여 울려 퍼졌다.
이렇게 작고 평화로운 섬마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주어진 자연환경을 보존하며 관광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모든 것을 잃어야 할 만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왔던 걸까. 그러나 사람들은 특유의 긍정적인 힘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다시 마을을 세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나라들은 기후 변화 대응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할 수 있지만, 이곳처럼 작은 섬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기후 변화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강대국들이지만, 그 피해는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심지어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은 거의 알지 못한다. 피해를 받아야 할 사람이 정해진 것은 아닐 텐데, 왜 가장 약한 이들이 가장 큰 희생을 치러야 할까. 앞으로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고, 그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마치 정해져 있는 듯하다.
기후 정의(Climate justice)는 어디에 있는 걸까. 기후 정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권리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