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적응이 안 되어 새벽 3시부터 뜬 눈으로 누워있었다. 큰 언니의 부시럭 소리에 냉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날씨가 싸늘하여 외투를 하나 더 입었다. 아직 새벽 4시도 되지 않아 캄캄했다. 가끔 어마어마하게 큰 트럭이 지나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걷다가 어두움이 나타나면 발걸음을 빨리하여 또다른 불빛을 찾아 걸었다. 그리고 하나의 벤치를 발견하고 그곳에 앉았다. 큰 언니는 상쾌하다고 했으나 난 너무 추웠다. 그리고 무섭다. 전에는 용감했던 듯 한데 요즘은 무서움이 생겼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새벽에 돌아다니는게 영 뒷골 땡긴다.
큰언니는 엄마의 고달픈 삶의 이야기, 서러웠던 시절, 중학생 때인가 같은 동네 어떤 놈이 피로 love라는 글자를 써서 언니에게 줬다는 얘기, 아버지 얘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도 아버지의 기억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난 고집스럽게 울고 있었다. 아버지가 울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그렇게 울 일이 아니라고 어린 마음에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달래는 소리가 너무 달콤했다. 그래서 더 큰 소리로 울었다. 아버지는 달래시다 지치셨다. 아버지는 내가 계속 울으면 유리창 밖으로 나를 던지겠다고 하셨다. 나의 울음이 계속되자 참다못한 아버지는 나를 번쩍 들어 유리창 밖에 던질 듯이 휙 넘기시더니 허리를 깁숙히 굽혀 담벼락 옆에 쌓여 있는 흙더미 위로 살그머니 내려 놓으셨다. ' 당연하지. 아무리 화가 나셨어도 나를 던지시겠어?'
빠알간 수박, 잘익은 수박의 속살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국민학교 3학년 여름방학 숙제를 하고 있던중이었다. 방학책 속에는 어떤 규칙에 의해 숫자를 따라가면 그림이 나오게 되어있다. 아버지는 그것이 재미 있어 보이셨는지 숫자를 연결하여 그림을 완성하셨다. 한 아이가 입을 크게 벌리고 수박을 먹는 그림이 나왔다. 그리고 아버지는 예쁜 빨강색과 초록색 크레파스로 수박을 색칠하셨다. '와, 아버지가 그림을 참 잘 그리시네.'라고 생각했다. 나를 매혹시킨 그 선명한 빨강과 초록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강력한 매개체가 되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두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것이 기적인 것처럼."
부모님, 형제 자매, 배우자와 자녀들의 만남.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것 같기도 하지만 또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몇 십년전의 기억 하나가 어느순간 되 살아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내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여 뗄래야 뗄수 없는 다른 누구보다도 특별해 보이는 하나의 운명공동체처럼 느끼는 것은 기적이 일어난걸까? 그리고 우린 서로에게 기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