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레먀인, 놔라보 파야-내 인생에 축배를 (미얀마 여행기 3부)
여기저기서 오토바이와 툭툭이가 매연을 뿜어댔다. 탄 르윈 다리 아래로 야자수 가득한 풍경도 보이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작은 불탑들도 눈에 들어왔다. 이곳을 봐도, 저곳을 봐도 불탑을 보지 않고서는 돌아다닐 수 없을 지경이다. 또한 계속 짓고 있는 것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미얀마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발생적 사라짐, 또는 과거 몽고군에 의한 무차별적인 파괴 속에서도 현재까지 450만 개의 불탑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왜 그들의 삶에 그토록 많은 불탑이 등장해야 하는 것일까?’
“사원을 짓거나 탑을 세우면 죽은 후에 극락에 갈 수 있으니까요.” 미얀마 현지 가이드의 대답이었다. 탑을 쌓음으로써 복을 받고, 내세를 기약할 수 있다는 수많은 불경의 가르침에 기인하는 것 같다.
초록색 치마와 하얀 블라우스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통적인 불교국가 이면서 동시에 서양의 교육시스템을 받아들인 그들이다. 요즘 세계는 미얀마를 떠오르는 블루오션으로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미얀마다.’라며 기업인, 관광객뿐 아니라 서구화된 문물이 몰려오고 있다. 그들이 오랫동안 걸어 놓았던 빗장을 열어 놓았으니 지금은 미래를 향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힘을 모을 중요한 시기인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초록색 론지와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미래의 주역들은 새로운 미얀마를 건설하기 위해, 그들만의 고민이 깊어져야 할 것이다. 그 아이들이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우린 오늘 해발 9백 미터 산꼭대기에 있는 놔라보 파야를 볼 예정이었다.
출발 시간에 맞춘 11시에 트럭에 올랐다. 트럭의 짐칸엔 나무판을 사이사이에 걸쳐 놓아 의자를 만들었다. 방문객이 의자에 꽉 차게 앉자, 마지막으로 키 큰 한 남자가 오더니 맨 앞자리의 짐칸 꼭대기에 앉았다. 꼭 코끼리 머리 위에 앉은 형상이 되었다. 트럭 뒤로 젊은 두 명의 남자가 역시 짐칸으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왔다. 깎아지듯 가파른 산길을 달렸다. 마치 코끼리가 삐융 삐융 소리를 내듯, 트럭은 중간중간 경적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묘하게 사람을 들뜨게 했다. 트럭이 덜컹거리고, 뱀처럼 휘휘 감긴 도로를 휘돌아갈 때는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트럭 주위를 움켜잡았다. 하늘의 태양은 뜨거웠다. 작렬하는 햇살은 ‘알베르트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를 생각나게 했다.
오직 작렬하는 태양 때문에 아라비아 사람을 죽이고, 외롭지 않기 위해 사형 집행 날 많은 구경꾼이 증오 차서 자신을 맞아주었으면 하고 바라었던 그 남자를. 그리고 영화 ‘태양은 가득히’도 생각났다. 자신이 그토록 욕망하던 삶을 살았던 필립을 없애고 그의 흉내를 내고 살아가고 있는 불쌍한 톰 이야기가. 그러고 보니, 욕망으로 얼룩진 일그러진 인간의 숨겨 놓았던 내면을 태양은 그대로 다 들추어내는 듯하다.
달리는 트럭의 속도에 눈 앞으로 먼지바람이 세차게 날렸다. 차가 튀어 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괴성을 질렀다. 스릴 만점이다. 드디어 10킬로미터의 대장정 끝에 산 꼭대기에 오롯이 자리한 탕 파운십 불교사원과 ‘짜익띠요’의 single golden rock과 비교되는 3단 황금 바위인 ‘놔라보파야’를 보았다. 둘째 바위 밑에 부다의 머리카락이 있다고 했다. 세 개의 개별 된 돌이 세월을 견뎌내고 그렇게 서 있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지만 더 큰 불가사의는 큰 인연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렇게 머나먼 여행지를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예측 못한 내 생애의 불가사의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축배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