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그리운 빌루짜 운
아침을 먹으러 호텔 카페로 갔다. 서양식과는 달리 음식을 주문받았다. 남자 종업원이 우리 일행 앞에 찻잔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놓아주었다.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언제나 기분 좋다.
난 물국수를 시켰다. 수저가 담겨 있는 물국수 한 그릇에 쌀 뻥튀기 조각 같은 것이 나왔다. 맛도 있고 건강식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식사 끝날 즈음 툭툭이가 왔으므로 곧바로 차에 올랐다. ‘브리즈 게스트하우스’에서 서양 친구 두 명이 합류했다. 프랑스 친구 폴린과 영국인 친구 핸리다. 폴린은 2개월의 긴 휴가 중이었고 핸리는 대학을 졸업한 후 아직 직장 구하기 전의 상태란다. 햇살에 빛나는 금발의 두 사람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도 잘생겼다.
어제 우리와 함께한 가이드 씨가 툭툭이에 올랐다. 모두 10명이다. 게스트하우스 가까운 곳에 있는 선착장으로 갔다.
현지인들이 우리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짓고 말을 붙여보고 싶어 하는 표정이 눈에 선하다. 우리가 코리언이라 하니, 그들의 얼굴이 더욱더 환해지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거의 매일 저녁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한다. 우리가 그들의 모습과 부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다. 우리가 연예인이라도 된듯한 느낌이다.
몰레먀인에서 ‘빌 루짜 운’까지는 배로 1시간 거리이다. 배는 텅텅 터 소리를 내며 매연을 품어냈다. 이제 이런 것쯤은 익숙하다. 기꺼이 매연냄새를 맡을 수 있다. 빌루짜운에서 빌루는 못된 거인이란 뜻이고 짜운은 섬이란 뜻이다.
영어 이름으로는 oger island(오거 아일랜드)이다.
중세 기사 이야기에 자주 나오는 거인은 언덕이나 산에 살며 인간(특히 젊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태생의 여성)을 잡아먹는 흉악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몸집이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선택된 영웅 이외에는 아무도 대적을 할 수가 없다. 마법은 그다지 잘 쓰지 못하지만 몸의 크기를 바꾸거나 다른 무엇인가로 변신하는 능력은 있다. 다만 머리가 좋지 않기 때문에 아이의 재치에 걸려들어 자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 페로는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이런 성질을 가진 거인에게 오거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거는 고양이에게 "아무것으로나 변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설마 콩알이 되지는 못하겠지요"라는 말을 들은 것이 분해서 콩알로 변신을 해 보이자마자 그대로 먹혀버렸다.
왜 이 섬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가? 약 천년 전쯤 티베트에서 사람 잡아먹는 덩치 큰 거인이 나타났고 용감한 누군가가 그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단다. 티베트와 미얀마의 갈등적 배경이 보이는 듯하다.
배는 탄 르윈(thanlwin) 강 위에서 턱 턱거리는 엔진 소리를 내며 나아갔다. 탄 르윈 강은 2,815km로, 티베트에서 발원하여 중국을 돌아, 미얀마와 태국으로 흘러들어 안다만 해로 빠져나가는 강이다. 바람이 시원했고, 눈앞에 펼쳐져있는 야자수와 고기잡이하는 고깃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몰레먀인 언덕의 불탑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섬에 도착하자, 또다시 우린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미얀마를 최고의 여행지중 하나로 꼽는지를 알겠다. 바로 사람이다. 뭐든지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한 미소와 사람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다. 이는 내 정신세계를 세례 시켜줄 자원들이다.
곧바로 예약했던 툭툭이가 도착했고, 현지인 도우미 두 명이 합류했다. 툭툭이는 키 크고 풍성한 가지와 잎을 지닌 가로수 사이를 신나게 달렸다. 자전거에 가득 짐을 매달고 달리는 사람들과, 머리에 큰 광주리를 이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 없이 평화로운 오지의 모습이었다. 우리 툭툭이 바로 뒤에 선글라스를 멋지게 쓰고 오토바이를 타고 바짝 붙어 달리는 남자가 있었다. 그를 향해 “다례 (handsome)”하고 외쳤다. 견고하게 성을 쌓은 듯 폼을 잡고 있던 그의 인상이 갑자기 무너지며 싱거운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 연꽃에 대해 말했었나 보다. 가이드는 툭툭이를 멈추게 하고 젊은 친구에게 연꽃을 하나 꺾어오라 했다. 그 청년은 가서 연꽃을 하나 가져왔다. 그리고 지그재그로 껍질 안쪽의 줄기를 떼어내니, 연꽃 목걸이가 되었다. 우린 그 꽃을 미스 프랑스(폴린)에게 주라고 했다.
곧 꽃이 그녀의 목에 걸렸다. 우린 박수를 쳐 주었다. 덕분에 어색해하는 그들과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길 가에서 한 가족이 탈곡을 하고 있었다.
살색이 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키 크고 잘 생긴 한 남자가 희고 커다란 소 세 마리를 가지고 넓게 펼쳐진 볏단을 밟으며 돌고 있었다. 무거운 소가 볏짚을 밟고 돌다 보면 하나하나 알갱이들이 떨어진다. 그러면 그것들을 바구니에 담아 옆에 있는 그물망에 쏟고, 흔들어서 알갱이만 떨어지게 한다. 너무나 신기한 탈곡 방식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 잘생긴 남자는 우리가 사진 찍기 좋게 포즈를 잡아 주었다.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 때였다. ‘21세기에 아직도 이렇게 탈곡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다만 ‘밍글 라마’ 한마디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곳 ‘빌 루짜 운’ 사람들은 코코넛 섬유를 이용해 신발털이 메트도 짜고, 손으로 나무를 깎아 담배대와, 지압봉, 볼펜 등을 만들었다. 직조판의 페달을 밟으며 실을 아래로 당기면서 옷감을 짜는 모습은 보기에도 짠했다. 옷감을 짜기 위해 수도 없이 페달을 밟고 줄을 당겨야 한다. 그렇다고 비싸게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은 코코넛잎으로 만든 일명 ‘베트콩 딱따기 모자’를 하나 샀다. 하나에 천 짯, 천 원이다. 그 후, 그 모자를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쓰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얀마의 ‘국민 모자’다. 선생님은 기존의 모자를 베트콩 모자로 바꾸어 쓰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점, 그 모자의 존재에 힘겨워했다. 딱딱하기 때문에 가방에 절대로 넣을 수 없어 휴대가 불편했다. 그 모자는 이 사람이 들고 있다가 저 사람이 갖고 있다 하면서,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그런데 그 모자가 어느 날 나에게 왔다. 그 모자는 처음부터 나에게 오도록 예정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자 집에 갔을 때, 일행들 몇 명이 모자를 써 보았고, 그놈의 뙤약볕 때문인지, 여러 군데 수공예 기념품점을 들려 심신이 피곤한 때문인지, 일행들은 모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단지, 선생님만, “내가 하나 사지.”할 뿐이었다.
미얀마에 와서 현지인의 기분을 내고 싶었던 건지, 하나하나 잎을 따고 말리고 손질하며 오리고 꿰매 모자를 만든 그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인지, 선생님은 모자를 하나 샀다.
사실, 그때, 나도 한번 써 보고 싶었다. W가 ‘한번 써 보세요.’라고 말할 때 난 고개를 저었다. 분명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행동은 반대로 나왔다. 가끔 난 그렇게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내가 감지할 정도로 모자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그 모자가 그리 대접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에도 난 아무 말 안 했다. 내가 쓰겠다고 하면 분명 내 것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갖고 다니는 내 고질병이다.
그 모자와 나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가져온 모자를 쓰고 티켓 끊으러 삔우린 역사로 들어갔고, 그 모자는 P가 들고 있다가 J에게 옮겨졌고, J는 그 모자를 내 머리에 씌웠다. “야, 딱이다.” 모두가 그렇게 말해줬다. 난 못 이기는 척, 그 모자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줄기차게 쓰고 다녔다.
툭툭이를 타고 세찬 바람에 모자가 날아갈 것 같으면 노란색 비닐 끈을 쫙 잡아당겨 머리에 고정시켰고, 기차나 버스에서 모자를 벗어 두기에 적당한 곳이 없으면 내 머리는 모자 보관 장소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돌려달라 말하지 못할 만큼, 선생님의 표현처럼, 베트콩 딱따기 모자를 내 머리의 일부로 만들어 버렸다.
교회의 목사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당신의 아내를, 남편을 생각하시오. 나에게는 버리고 싶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칠 사람도 있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