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 트레킹 첫날 (미얀마 여행기 10, 띠보)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살짝 들어 보니, 강에서 올라온 안개로 온천지가 뿌옇다. 트레킹 준비를 하고 식당에서 아침으로 토스트와 수박을 먹었다. 우린 트레킹을 호텔에 의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호텔에서 설명해 주고 관리했다.
안개 낀 가로수 울창한 거리를 지나 미스터 차알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주위에는 붉은 승복을 입은 여자 스님들이 무리 지어 다니고 있고 트럭은 짐칸에 잔뜩 사람들을 태우고 달린다. 이들은 일터로 가는 중이다. 관광 사업이 잘 되는지 찰스 게스트하우스는 분점까지 내는 가 하면, 가족들이 하나둘씩, 건물을 사들여 병원 일도 보는 등, 가족 간 똘똘 뭉쳐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소개받은 가이드는 앳되 보이지만 나이가 서른이다. 툭툭를 타고 트레킹 지역으로 쑥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기념으로 여행 인생, 예술인생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개 낀 길을 서서히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바나나 나무가 심심찮게 보이고 반대쪽에는 눈에 익은 노란색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가이드 싸아씨는 차분하게 설명을 잘해주었다. 손을 대면 움츠러드는 식물의 이름도 알려주고, 만져보게 하고, 이것들이 어떤 종류의 약재로 쓰이는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 모든 것을 기억에 넣으려고 무지 애썼다.
조금 가다 보니 학교가 나왔다. 가보니, 선생님 혼자서 책상에 앉아 있었고 아이들은 방학이라 학교는 비어 있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교실 안에는 칠판과 약 20명 정도 수용할 정도의 나무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싸아씨 말에 의하면 이 산골에 사는 학생들 10명 중 2명 정도만 비보에 있는 중학교로 입학하고 대부분은 초등학교 마치고 집에서 가사 일을 돕든지,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집안이 어려우면 초등학교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만델레이 대학을 졸업하고 싱가포르에서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몇 년간 투어 가이드를 하였고 돈을 더 벌어, 와이프가 음식을 잘하니까,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외국 관광객을 만나도 보았고 싱가포르에서 직장 생활도 했으니, 이곳 산골 사람처럼 폐쇄된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을 떠날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사람들은 거의 대분분이 자신이 태어난 반경 몇 키로 안에서 살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미국 가서 살아볼까? 필리핀 팔라우가 좋다는데 거기 가서 살아볼까? 별 생각을 다 해보지만, 모든 것 다 포기하고 내 바운더리를 벗어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며 위로 위로 걸어 올라갔다. 옥수수 밭이 보이더니 집안 곳곳에서 아이들이 나와서 뛰어놀고 있었다. 소꿉놀이도 하고, 풀피리를 부는 애기들도 있었다. 트레킹 하며 수도 없이 많은 어린아이들을 만났다. 귀엽고, 순수하고, 이쁜 아이들이다.
이 산골의 위에는 팔라우 족이 차를 재배하며 살고, 아래에는 샨족이 살고 있다고 한다.
옛날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고 있었을 때 차를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에게 차를 재배하게 했고 평생 비탈진 산에서 차를 재배하던 사람들은 몸의 형태가 뒤틀리고, 다리의 길이도 서로 달라졌다. 찻잎을 딸 때도 새순을 살짝살짝 따야 하는데, 어른들이 따면 잎이 뭉그러지니, 힘이 약한 어린아이들에게 따게 해서 대표적인 어린이 노동력 착취의 예가 되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차 밭이 마냥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가며 가며 질문하고, 산골 아이들과 말 걸고, 사진 찍고 하다 보니 날이 어두워져 더 이상 트레킹을 할 수 없었다. 차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겠다며 가이드는 우리를 데리고 가정집을 가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찻잎을 찌고 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현지인 가정집에서 저녁을 먹고 밤이 되자 날씨는 싸늘해졌다. 미얀마 맥주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방에 전등불도 없으니, 오지이긴 오지다. 이불을 덮어도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