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머리가 차에 이리저리 부딪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깍아지듯한 산 위에 만들어진 도로가 뱀처럼 굽이치며 버스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창밖을 보니 인부들이 돌가루가 날리는 환경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큰 돌덩이를 나르고, 돌을 깨고, 채에 돌을 골라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원시적인 모습이다. 이들의 임금이 일당 3천 원이란 말을 들었다.
미얀마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높다는데, 이 사람들도 행복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산길을 넘어 조금 더 가니 만델레이였다. 대도시여서 그런지 만델레이는 아침 녁부터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볐고 차량의 운행 속도도 빨랐다. 도시의 혼잡함과 돌가루 날리는 회색 길과, 먼지로 절어 있는 도롯가 건물들을 보니 숨이 막히고 답답해 왔다.
두 시간 정도 더 달려 삔우린에 도착했다. 꽃과 나비의 도시인 삔우린은 길가에 휴지도 없고 날씨도 선선하고 쾌적했다.
삔우린은 미얀마 만달레이 구에 있는 마을이다. 1887년 영국의 식민지 시절 영국 제5 벵갈 경비 사령관으로 부임한 제이 메이의 성과 도시라는 뜻의 미얀마어 '묘'가 합쳐져 메 묘라고 부르기도 한다. 삔우린은 만달레이에서 67km 정도 떨어진 마을, 지대가 높고 시원하여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의 휴양지 별장으로 조성된 곳이다. 지금은 많은 방갈로나 고급주택이 부유한 인도인이나 중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툭툭를 구해 호텔로 향했다. 아침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호텔 측에선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를 대접했다. 참으로 정스럽다. 호텔이 갈수록 좋다고 입을 모았다. 잘 꾸며진 정원이 있고 널찍하고 편리한 책상이 있었다. 짐 풀고 샤워하고 나왔다.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자전거를 빌려 타는 방법과 마차를 타는 것이다. 3명은 자전거를 타고 나를 포함한 4명은 마차를 탔다. 샘은 마차가 연애용 같다고 했다. 창이 작아 밖을 보기가 불편했고 말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우리 걷는 속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툭툭이 타고 쌩쌩 달리던 우리에겐 속이 터질 지경이다. 마부는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들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엘 데려다주지 못했다.
시장을 구경하다가 미얀마 전통 옷인 롱지를 보러 갔다. J와 나만 롱지가 없었다. 다들 롱지를 입고 으스대고 돌아다니므로 하나를 꼭 사서 입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다. 종업원이 보여준 롱지라는 것이 마치 밑 빠진 자루처럼 옷감을 통으로 박아 놓은 옷감일 뿐이다. 이게 롱지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무슨 이런 옷이 있나 싶었다. 500원을 내면 완전한 롱지가 된다며 완성하는 데는 10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린 오케이 했다.
이 사람들, 태평하던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정직하던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무엇을 믿고 '그럼 10분 후에 오라'하고 옷감을 들고 수선집으로 향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가게를 구경한 후 10분 후에 그 가게로 다시 갔다.
그냥 허리 부분에 검은색의 헝겊 띠를 이어 붙였을 뿐이다. 옷을 입어보았다. 통자루 같은 것을 입으니 너무 길어서 발로 밟히고 허리를 묶었던 것이 쉽게 풀려 아래로 후루룩 떨어졌다. 종업원이 웃으며 다시 허리에 묶어주었다. 3500원의 값을 치르고 나와 조금 걷다 보니 묶인 곳이 헐거워졌다. 어기적 거리며 걷다가 론지를 허리에서 몇 번 접다가 보자기 묶듯하였다. 미얀마 현지인들이 내 롱지 입은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시 마차에 올라 이곳 아이들이 스님이 될 때 하는 ‘신쀼’라는 의식을 보러 가기로 했다. 미소로 무장한 우리 마부 아저씨에게 ‘신쀼’, ‘신쀼’라고 몇 번을 말했다. 한참 듣다가 드디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를 데려다준 곳은 중국인 사당이었다. 어이가 없지만 왔으니 구경하자 하고 둘러본 후, 다시 설명을 했다. 그 아저씨 알았다는 듯 다시 길을 떠난다. 그러다 동료 마부들이 있는 곳에 가서 그들끼리 열띤 토의를 벌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와 어딜 가려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또, 신쀼' '신쀼'를 외쳤다. 아하' 이제 알았어하는 표정을 보이며 우리 마부에게 뭔가를 알려준다. 이제 모든 것을 이해했다는 듯, 우리 마부 아저씨가 우리를 데려다준 곳은 어떤 조그만 기관인데, 간판엔 오직 미얀마 글자만 쓰여 있으니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다.
어린아이들이 승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입구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우리를 향하기 시작했고, 우린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점점 더 승복 입은 어린 스님들이 몰려오니, 한 어른 스님이 다가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우린 여행자이며 신쀼 의식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왔다고 했다. 그녀는 마음껏 구경을 하라 했다. 우리가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어린 스님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큰 스님은 물론이라며 아이들에게 전부 나오라고 했다. 순식간에 건물 안에 있던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점점 아이들이 불어나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큰 스님이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영어를 할 줄 아는 중학생 정도의 여학생을 불러냈다. 그리고 다시 묻기 시작했다. 왜 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우리가 한국인이고 여행 중이며 신쀼 의식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학생의 통역을 통해 영어가 미얀마어로 큰 스님에게 전해지자, 그녀는 더욱 얼굴이 밝아지며 어린 스님들에게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했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다시 환호했고, 큰 스님의 지휘에 따라 모든 어린 스님들이 동시에 엄지 손가락을 들고 환호했다.
신쀼 의식을 보고자 했던 우리의 뜻이 있었으나 그 부분은 통역이 잘 되지 않았던 듯하다. 함성과 함께 반가움의 표시만 하고 다음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환영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만 하고 물러나왔다. 우리가 지금 나온 곳이 어디냐고 서로에게 물었으나 알 리가 없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그 장소는 아닌 듯했다.
다시 마차를 타고 국립공원 입구까지 갔다. 다른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므로 국립 깐도지 공원을 구경하고 호텔까지 돌아가기는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늙은 말이 힘들어했다. 말과 마부를 돌려보내고 걸어서 호텔까지 가면 시간이 맞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부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가셔도 좋습니다.'라고. 그가 우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웃으며 따라왔다.
"왜 자꾸 웃으며 따라오지? 아마 우리말을 이해 못했나 봐."
"그냥 가셔도 좋다고요."
그래도 마부는 웃으며 우리를 따라왔다. 할 수 없이 샘이 걸어가는 시늉과 바이 바이하는 흉내를 내었다.
“마부 돈 줬어요?” 혹시 해서 물어보았다.
“아니요.”
“그러니까 자꾸 따라 오지요.”
마부는 마차 값을 받고 자기의 갈 길로 갔다.
샘은 호텔에서 마부에게 돈을 주었고 우리가 호텔에 돈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첫 장에 나오는 표현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삔우린에서는 대체로 마차가 운송 수단인듯하다. 그러나 창이 낮고 좁아 밖을 내다보기 불편하고 말이 노쇠하여 씩씩하게 걷지 못하니 타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이곳은 자전거 여행이 제격일 듯하다. 난, 자전거를 못 타니 그만큼 마이너스다. 남들 할 때 뭐라도 같이 해 놓으면 나중에 다 쓸모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