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8 트레킹 둘째 날 (미얀마 여행기 12, 띠보)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안개비가 내려 주위는 눅눅하고 추웠다. 잔뜩 옷깃을 세운다. 일찍 떠나야 하는 우리를 위해 차알스 호텔에서 아침을 준비해 주었다. 비닐봉지 하나씩을 받아서 툭툭이에 올랐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어두워서 인지 먼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어둠 속에서 미친 듯이 흙먼지를 뿜어댈 것이다. 채널 5 터미널에서 만델레이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그런대로 편안했다, 의자에 걸쳐져 있는 담요로 무릎에 덮었다. 그리고 호텔서 준 간식을 먹었다. 바나나 1개, 삶은 계란 1개, 토스트 한 조각이다.
2시간을 넘게 달렸는데도 차가 쉬지 않았다. 화장실이 급했다. 버스 조수에게 언제 화장실 갈 수 있냐고 물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았으나, 그는 이해를 했고 알아서 내려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차가 멈췄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차를 세우면 어쩌라는 것인지, 난 다시 토일렛을 외쳤고 버스는 다시 움직였다. 몇 번 차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가 드디어 한 가게 앞에서 차를 세워주었다. 내려서 주인에게 화장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버스로 돌아오니, 버스 기사와 조수가 매우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약 20분 후 삔우린 버스터미널에서 차가 멈췄다. 초등학교 5,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산타 복장을 하고 음식을 주문받았다. 동작도 빠르고 얼굴도 밝았다. 비록 행색을 남루했으나 무척 활기찼다. 커다란 호빵과 국수를 먹었다. 호빵도 괜찮았고 국수는 마치 비빔냉면 같았다.
드디어 만델레이에 왔다. 사람들의 동작이 빠르고, 오토바이도 이곳저곳에서 순식간에 달려왔다 사라지곤. 했다. 다시 눈이 매웠다. 매연과 흙먼지로 가로수가 뒤 덮여있었고, 그런 중에도 올망 졸망한 가게들이 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다. 빨래도 널려 있었다. 도대체 이 흙먼지를 어찌해야 하나. 우린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도로는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갔다. 일부 사람들은 흙을 밟고 살아야 한다며 거부반응을 보여왔었다. 그러나 이곳 미얀마를 보니, 온 세상이 흙먼지로 덮여있는 느낌이다.
버스에서 내릴 때 항상 그렇듯이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한 남자가 입은 상의는 우리나라에서 보낸 것인지, 이 아무개라는 이름이 새겨진 군복이었다. 아침 햇살은 눈이 부셨고 몹시 더웠다. 우릴 호텔로 데려다 줄 차량이 정해지자 한 떼의 남자들이 몰려들어 차의 지붕에 우리의 짐들을 싣고 노끈으로 그것들을 묶었다. 그들은 협동을 잘하는 듯했다. 만원의 택시비를 내고 A1호텔에 짐을 풀었다. 방은 다소 협소했다. 짐만 놓고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호텔 후론트로 나왔다. 호텔 밖에서 영어를 매우 잘하는 남자가 차량을 구하는지를 물어보면서 자기 동생이 좋은 차를 갖고 있으며 영어를 잘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선생님에게 전했고, 선생님은 그 보다는 호텔을 더 신뢰해서 인지, 가격이 약간 더 비싼데도 호텔에서 소개해주는 차량을 예약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기사를 소개해달라고 했으나, 우리 미니버스기사는 영어를 할 줄 몰랐다.
배가 고팠다. 만델레이 궁을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 있는 먼지 날리는 가게에 들어갔다. 봉지에 싸인 빵이 있으므로 물과 함께 먹었다.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입안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보니, 기다란 머리카락이 빵과 내 입을 연결하고 있었다. 도넛도 기름에 절어 있었다. 급한 대로 배를 채우고 나와 만델레이 궁으로 발길을 옮겼다. 입장료가 1인당 1만 짯이다. 그 입장표는 다른 곳까지도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 궁전은 2차 대전 때 소실되어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거대한 궁전, 화려하게 조각된 가구들을 보니 그 당시 왕이 얼마나 사치를 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 세월이 무심하여, 하늘 같았던 왕이 있었던 궁들이 이제 관광지가 되어 거침없이 드나드는 곳이 되어 버렸다. 망루에 올라 궁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한쪽엔 궁전이 있었고 다른 한쪽엔 울창한 숲이 있었다.
다시 차를 타고 쉐산도 사원에 갔다. 오래된 건물인지 거무스름해 보였다. 건물은 티크나무로 지어졌으며 건물 외곽에는 여러 형태의 정령 신이 조각되어 있었다. 부처님의 전생과 현생에 대한 조각도 있었다. 건물 전체가 매우 섬세하며 예술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하나씩 감상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사원을 보는 사람들은 신을 찬양할까? 아니면 신을 찬양한 인간을 찬양할까. 모나스 트리를 빠져나와 만델레이 힐에 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니 만달레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찍기 위해, 포토존에 진을 치고 있었다. 차츰 시간이 지나 해가 점점 순한 빛을 내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 키 큰 서양인들 사이를 파고 들어가야 할 만큼 서양인들이 많았다. 우리가 유럽여행을 하면 여기저기 한국사람 천지라고 한다. 이곳 미얀마는 여기저기 서양인들 천지다. 20일간 돌아다니며 한국인은 단 4명만 보았을 뿐이다.
저녁은 한국식당으로 갔다. 한국인 주인은 매우 쾌활한 사람이었다. 선생님이 전에 온 적이 있어서 그 집 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그 아들은 우리말과 미 dis마 말을 잘하였다. 삼겹살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음식은 반가웠다. 코감기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워 밥 먹기가 힘들었다. 코는 막히고 입으로 숨 쉬면서 만델레이의 모든 먼지와 매연이 입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 하여 식당 주인에게 말해 인근 진료소로 갔다. 의사라고는 하는데 너무나 어려 보이고 순박해 보였다. 인턴인데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밤에 봉사 활동하는 것이라 했다. 약은 외국에서 지원받는단다. 진료소의 작은 공간 한쪽에 낡고 조그만 책상과,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키 작은 의사 선생님, 그리고 한쪽 벽엔 진료 침대가 있었다. 또 한 모퉁이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고입 준비하는 중학생에게 과외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코에 액체를 주입하고 주사를 놔주었다. 커튼도 치지 않고 주사를 놓는다. 내 엉덩이를 길을 걷는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다. 왜 커튼도 치지 않냐고 물으니 아무도 안 본다며 웃었다. 약을 받아 식당으로 돌아와서 먹었다. 잠시 후 코가 뚫리며 몸이 다운되기 시작했다. 몸이 자꾸 쳐지면서 정신이 몽롱해졌다. 식당에서 호텔까지 오는 동안 잠이 든 것도 모르고 왔다. 간신히 양치질만 하고 잠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