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레이 잉아왕국

by 프레이야

중간에 여러 번 깨었다. 밖이 환했다. 몸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나야 하는데 하는데, 그냥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의지를 다하여 일어났다. 사진을 저장매체에 옮겨놓게 하고 다시 누웠다. 잠시 후 일어나 사진이 외장하드에 옮겨진 것을 확인하고 메모리카드를 지웠다. 나중에 보니, 사진의 절반이 외장하드로 옮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메모리카드를 지워버렸으므로 다시 찾을 길이 없다. 내 기억의 실마리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마약 먹은 것처럼 기분도 안 좋고 붕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물로 내장을 씻어내고 싶어 졌다. 코를 선택하는 대신 몸을 대신 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침식사를 기다렸다. 배도 고프고 속도 이상했다. 아침식사는 토스트, 계란, 바나나, 수박, 볶은 국수류가 나왔다. 속이 이상한데, 이상하게 잘 먹힌다.
툭툭이 기사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란다. 그러나 그는 말이 없었다.

샘은 만델레이 와서 가이드를 쓰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고 한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여자아이들이 목걸이와 모자를 들고 달려들어, 언니. 예뻐요, 천 원, 이천 원하면서 달려들었다. 에야와디강을 배로 약 5분 정도 타고 잉아 왕국으로 건너갔다. 배에서 내리자, 이번에도 목걸이류와 그림엽서를 사라고 아우성이다.

‘만델레이 와서 돈 자랑하지 말라. 옷은 허름하게 입고 다니지만 금세공으로 부자가 많고, 돈이 없는 사람도 돈 있는 사람들을 그다지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들었건만, 지금 이곳엔, 한 푼이라도 벌려고 달려드는 어린 소녀들이 있다. 저 아이들은 학교는 안 가고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잉와 또는 아바라고 불리는데 14세기에서 19세기까지 고대 미얀마 왕족의 수도였다. 역사적으로 여러 번 보수되었는데 1839년 3월에 있었던 대규모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어 옛 왕국의 영화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한 흔적만 남아있다. 오늘날에는 만델레이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하루 일정의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잉아 왕국은 교통수단이 마차였다. 마차를 타고 바나나 숲으로 난 길을 달려 야다나 심미 파야를 보게 되었다. 벽돌로 지어진 최초의 종탑이라 했다. 맨발로 원래는 궁전 안에 있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길가에 있어 버려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신을 벗고 돌아다니니 조금만 돌 알갱이에 발바닥이 따끔거린다. 그곳에서도 한 여인이 목걸이류와 우편엽서를 팔고 있었다.

다음엔 바가야 모나스 트리에 갔다. 이 티크나무 사원은 1593년에 만델레이에서 18킬로 떨어진 위치에 지어졌다. 바기도 왕(1819–1837) 때 큰 화재로 바가야 사원뿐만 아니라 많은 중요 건물이 소실되었다. 1992년 이 자리에 부처상과 율장을 위해 새로운 사원으로 복구했다. 267개의 거대한 티크 나무 기둥과 벽돌로 복구된 사원이 논과 야자수 나무, 바나나 나무 그리고 많은 덤불 덩어리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원은 조각이나 화려한 아라비아풍 꽃장식과 새와 동물 또는 애벌레의 모습을 평면에 도드라지게 새겨 벽면을 장식했다. 미얀마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중요 사원이다.

다음엔 잡초가 무성하고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 아바 궁터도 가 보았다. 지금은 단지 27 미 터의 석축 시계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것은 19세기 초 미얀마의 대표적 건축양식으로, 궁전 안에 세워졌던 건물인데 1838년 지진으로 붕괴되었던 것을 보수해 놓았다.
다음엔 ‘마하 아웅메본잔’을 갔다. 입구에서 바나나를 천짯에 사서 나누어 먹었다. 이 사원은 1818년 바지도 왕의 부인 난마도 메 누에 의해 세워졌는데 그녀의 종교적 스승인
나웅간 사야도의 종교적 주거용으로 만들어졌다. 1838년에 지진으로 파괴되었으나 1873년 민돈왕의 부인, 신규 마신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 건물은 전통 미얀마식 사원과는 달리 석축이 아닌 나무로 건축되었다.

다시 배를 타고 잉와에서 사가잉으로 이동했다. 이라와디강 위로 만델레이와 사가잉을 연결하는 잉와다리가 보였다. 점심 먹은 후 우리가 간 곳은 사가잉 힐이다. 사가잉은 파간 왕조의 몰락 후 생긴 여러 조그만 왕조 가운데 하나인 사가잉 왕조의 (1315–1364) 수도였다. 만델레이 남서쪽으로 16킬로에 위치해 있는데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미얀마 불교과 수도원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가잉 힐에는 1312년 이 지역의 장관으로 있었던 뽄야에 의해 지어진 순우뽄야신 파야가 있다. 240미터에 위치한 사원까지 타일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타일 바닥이 깨끗했지만 어떤 곳은 새똥도 있어서 주의를 해야 한다. 뜨거운 태양으로 몸은 지치고 계단 오르기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사가잉 언덕을 내려다보니 푸르른 숲 속 곳곳에 자리한 황금색 불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언덕에 있는 불교 사원과 명상센터만 해도 600곳이나 된다고 한다. 불탑 뒤로는 에와야디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여기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은 부처상을 만들었는지. 그렇다고 잘 보존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인다. 색이 벗겨져 있기도 하고 먼지에 쌓여 있기도 하다. 너무나 많아서 부처님과 사원이 그게 그것 같다. 똑같은 형상이 수없이 많다. 부처님이 좋아하셨을까? 부처님은 나를 믿지 말고 나의 법을 의지하라고 하셨는데, 부처상 제작이 부처님의 의도와 맞는 것일까?

밍군 파야는 1790년에 꽁바웅 왕조를 건국한 보도파 야왕에 의해 조성된 미완성 탑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탑을 건설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일단 탑이 완성되면 왕이 죽을 거라고 주장하는 한 점성술사에 의해 그 탑은 완성되지 않았다. 만약 완성된다면 150미터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혹독한 노역을 견디지 못한 노예 천명이 인도의 아쌈 지역으로 도망갔다. 이를 추격하며 인도의 국경을 넘게 되었고 당시 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이 이를 빌미로 전쟁을 선포해 3차례의 전쟁 후에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다. 입구엔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문구가 쓰여 있다. 그러나, 주위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아이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이곳으로 올라가세요.”

계단을 타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인데 나는 올라가지 않았고, 몇 명은 올라갔다. 탑에 1839년 3월 23일에 있었던 지진으로 탑은 크게 금이 갔고, 탑의 떨어진 덩어리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다음엔 만달레이 벨을 보기로 했으나, 지금 가야 우베인 다리에서 석양을 볼 수 있다 하여 부지런히 그곳으로 달렸다.

우베인 다리는 티크 나무로 만들어져 강 위로 길게 나 있고 많은 관광객이 그위를 걸어 다녔다. 태양이 내려 않으며 빨갛게 주위를 물들였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사람, 동글동글한 자전거 바퀴의 아름다운 실루엤이 넘실댔다.

우베인 브리지는 1850년 경에 아마라푸라 강 근처의 타웅 따만 호수 위에 세워진 1,2킬로 미터의 티크나무다리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길다. 이 다리는 지역 주민의 생활 다리이기도 하지만 기념품 상인에게는 중요한 관광 수입 자원이다.
저녁은 또다시 한국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밥을 기다리는 가운데, P는 이렇게 강행군을 하니 여행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하였다.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함께 다니니 힘들다 하였다. 트레킹 할 때도 자기가 먼저 앞장서는 것이 그 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그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느낌을 말했다는 것도 나름 내기 어려운 용기일 테니까. 솔직한 말, 진실은 양날의 칼과 같다.

한국식당에서 어제 날 데려다준 아이와, 식당 주인과, 그의 부인을 다시 만났다. 반가웠다. 청국장을 시켰는데 한국음식이라 하기엔 미얀마 향이 너무 짙었다. 한국에서 온 부부를 만났다. 한국사람 봐서 좋다고 기뻐했다. 호텔로 왔는데 그분들이 또 있었다. 참 인연은 인연인듯하다. 방에 들어와 간신히 씻고 잠으로 퐁당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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