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새해맞이

by 프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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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었다. 장엄했다. 어제 가보고 싶었던 학교를 둘러보았다. 매우 큰 학교였다. 한 교실에 아이수가 적은 지 책상과 의자가 적었다. 오늘은 학생들의 이동이 없었다. 새해이기 때문이다.
동네의 한 아주머니가 차를 끓이고 있었다.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니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를 달려 낭쉐에 도착했다.
헤호 시장을 구경하러 막 들어서던 참에 수박인지 뭔지 모르게 생긴 것이 있어 유심히 쳐다보니, 옆에 있던 한 아가씨가 수박을 크게 잘라서 선생님과 나에게 주었다. 고마운 생각에 값을 치르려 하니 받지 않았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다시 장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미얀마 남자가 나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는다. 지금까진 내가 그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왔는데 내가 사진의 피사체가 된다니 우습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초래’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이다. 나는 오케이를 했다. 이쁘다는데 뭔 부탁을 안 들어주랴.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시장엔 사람들로 북적였고 명랑하고 활기찬 웃음으로 좋은 기운이 가득하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 호텔’에 짐을 풀었다. 이 호텔은 처음엔 작게 시작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두 부부가 서로 아끼던 사이였는데 돈을 벌고 호텔을 확장하고 나서는 친절하지도 않고 부부의 사이가 나빠졌단다. 그놈의 돈이 문제다. 왜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처음에 가졌던 그 마음이 옅어지고 불순한 생각을 갖게 되는 걸까? 마음은 본질이고 돈은 현상이다. 현상으로 인해 본질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방은 널찍하고 아기자기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에 있는 매우 럭셔리한 레스토랑엘 갔다. 미얀마 음식뿐만 아니라 이태리식도 있었다. 난 무려 3천 5백짯 하는 샨 국수를 먹었고 간 큰 사람들은 무려 4천 짰이나 그 이상의 4천 오백짯을 하는 파스타나 카레를 먹은 사람도 있었다. 하루 종일 돌을 나르고 고르는 일을 하면 일당 3천짯을 받는다는데 한입에 하루 일당을 털어 넣었다고들 말한다. 이곳 북부지역으로 오면서 ‘짜다.’라는 말을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부지역에 있을 때는 맛도 있고 영양도 있을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너무 짜다’라는 말을 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이곳 미얀마 음식은 야채가 항상 풍성하게 들어간다. 그래선지 미얀마 사람들은 살찐 사람이 거의 없다. 얼굴도 몸매도 다 예쁘다.


식사 후 낭쉐에서 카누를 탈 예정이었는데 호수의 물이 말라 카누를 탈 수 없다고 했다. 선생님은 매우 실망스러워했다. 자전거 탈 수 있는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못 타는 사람은 2인용 모터사이클을 빌리려 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난 내일 보면 되지 하는 생각에 호텔서 쉴 생각이었으나 오늘 가는 곳과 내일 갈 곳이 다르단 말과 피곤하지 않으면 걷는 것이 좋다는 장 샘과 유샘의 권유에 함께 걷기로 했다. 샘은 쪼민씨와 할 얘기가 있다며 걷겠다고 한다. 걷다 보니 나름 좋았다. 장 샘이 3륜 자전거를 발견하고 ‘저건 뭐야?’하고 물었다. 자전거를 태워주는데 1시간에 4천 짯이었다. 자전가 못 타는 여자 셋은 삼륜 자전거를 샘과 쪼민씨는 천 원 하는 일반 자전거를 빌렸다. 나를 태운 자전거 기사는 시원스럽게 페달을 밟으며 호수 주위를 달렸다. 기분이 좋았다. 경치도 좋고 나무 그늘이 많아 시원했다. 사진 찍기도 좋았다. 처음엔 자전거를 교통수단의 하나로 생각했는데 문득 생각하니 자전거 기사가 페달을 밟음으로써 내가 편하게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4천 짯을 벌기 위해 한 시간 동안 페달을 밟아야 한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멋들어진 가로수 아래를 어린 여자아이도 남자아이도 자전거를 타고 쌩쌩 내 앞으로 질주해 나갔다. 건강해 보였다. 샘과 쪼민씨도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조를 맞췄다. 어느 지점에선가 멈췄다. 불교 사원이 있었다. 구경을 하란다. 앞에 소떼가 있었다. 소도 구경을 하라 하였다. 이곳으로 와서 사진을 찍으라며 안내를 했다. 수많은 버펄로가 걸어 다니고 사람들이 소떼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 참으로 보기 어려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장쌤도, 유쌤도, 쪼민씨도 자전거 기사도 모두 모두 고마웠다. 그 사진들은 호텔로 돌아와 외장하드에 옮겨졌고 메모리카드는 다음을 위해 지워졌다. 그리고 나중에 그 부분, 즉,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며 찍었던 사진과 버펄로 떼의 사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벌써 두 번째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사진이 없어졌으므로 더욱 신경 써서 기억해야 할 아름다운 장면이다.


뚝을 타고 걷다 보니 물 위에 카누가 하나 매어져 있다. 샘은 저거 타자고 했다. 쪼민씨에게 말해 카누 주인에게 말을 해보라고 했다. 우리가 카누 앞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러 몰려왔고 인상 좋은 한 아주머니가 우리를 태워주겠단다. 얼마인지 물으니 얼마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 영업으로 배를 이용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쪼민씨와 상의한 후 6천짯을 달라했다. 꼬마 아이가 쪼로로 달려서 카누로 쏙 들어갔다.
자전거 기사는 돌려보냈다. 그들은 끝까지 타지 않았으니 3천 짝만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샘은 되었다며 그냥 가시라고 했다. 그들은 매우 고마워하며 우리가 배를 잘 탈 수 있도록 배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카누 앞쪽엔 꼬마의 할머니가 서서 노를 저었고 이모쯤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뒤에 섰다. 배가 움직이니 꼬마가 쓰레받기로 카누에 고인 물을 야무지게 퍼냈다. 나이를 물어보니 7살이란다. 부모는 이혼을 해서 각자 중국과 대만으로 떠나버리고 지금은 외 할머니 집에서 사는 것 같다. 샘은 그 아이를 많이 보듬어 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 마음은 느꼈을 것이다.


왜 물이 말라 카누를 못 탄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수량이 많은데 말이다. 카누를 타고 가면서 물가에서 머리 감는 총각도, 목욕하고 이를 닦는 아가씨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물 위엔 부레옥잠이 떠 다니고 오리 떼가 카누에 밀려 마구 꽥꽥대며 앞으로 헤엄쳐가다가 나중엔 언덕 옆으로 퍼드득 거리며 피해 날아갔다. 정글 같은 그곳을 지나며 이곳 사람들은 이웃사람들과 정말 사이가 좋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가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또 쾌활하게 이야기하고 그 동네 사람들은 카누의 속도에 맞춰 둑길을 걸으며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건강한 웃음을 뿜어 내고 있었다.


둑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그 할머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할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떤 삶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뭐 일까? 이들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뭘까? 뱃삯을 치르고 샘이 꼬마에게 용돈을 덤으로 주었다. 여행을 통해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인간적인 배려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저녁은 호텔 주변에서 먹었다. 샨 누들과, 샨 카욱세를 주문했다. 쪼민씨는 우리에게 대접하고 싶었는지 옆 가게에 가서 튀김류와 바나나 잎으로 싼 부침개 같은 것을 사 가지고 왔다.

튀김은 새해 전날 밤에 만들어 먹는다는 그 음식이라 했다. 아마 그 음식에 대해 여러 번 물어봤던 것을 생각하고 맛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 튀김은 매우 짰다. 다른 튀김도 먹었다. 기름 범벅이다. 바나나 잎에 쌓여있는 것도 먹어보았다. 그다지 입에 맛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쪼민씨를 생각한다면 맛있게 다 먹었어야 했다. 현지인이 있으니 여행이 훨씬 수훨하다. 샘이 그를 돌려보내지 않고 다음날 같이 다니자며 방을 하나 잡아 주었다. 오늘 새해 1월 1일 결과가 좋다. 올해도 오늘처럼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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