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래호수

by 프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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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가 넘치면서도 고요하기도 하고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곳. 길이 22킬로, 넓이 10킬로의 이 곳의 사람들은 호수 너머의 미얀마와는 사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그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으로 살아간다. 물 위에 갈대를 깔아놓고 흙을 덮어 대나무의 부력을 이용해 만든 떠다니는 밭으로 주로 토마토를 재배한다. 또한 물속에 나무기둥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짓고 개인 카누를 타고 이동한다. 호수 위에 사원이 있고, 시장이 있고, 우체국, 호텔, 학교가 있다. 식수는 호수 밖에서 구할 수도 있고 호수 물을 끓여서 먹을 수도 있다. 호수 물은 식수, 목욕물, 빨래 물 등등 다양하게 쓰인다. 인따족의 어부들은 발 한쪽에 노를 대고 저어가며 고기를 잡는다. 보트가 지나가면 사진 찍기 좋게 다리를 더 들어 올리며 포즈를 취해준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보트 하나가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달려온다. 보트 투어를 끝내고 오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 준다.


샘이 쪼민씨를 어젯밤 붙잡아 놨다. 그와 함께 오늘 하루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햇볕에 그을어 생긴 새까만 기미. 그의 얼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왜, 이렇게 무방비일까? 그의 아내는 그의 기미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애쓴다고 안타깝게 바라볼까? 왜, 타나카 안 바르고 다녀 얼굴이 그 모양이냐고 화를 낼까? 쪼민씨의 모습을 보며 오늘도 불철주야 가정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는 모든 남편들의 노고를 생각했다.
처음에 방문한 곳은 연꽃 줄기에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는 곳이다. 한쪽에선 숄이나 롱지, 머플러 등의 제품을 팔고 있다. 천연염료의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실크와 면 소재의 옷감이 바람에 아름답게 살랑댔다.
실 한 올 한 올을 손으로 뽑아내는 작업 방식이 확실히 우리와는 다르다. 이 바쁜 시대에 한량없이 실을 뽑는 것이 ‘ 빨리빨리’에 길들여져 있는 내 속을 답답하게 했다. 도대체 그렇게 하다가 언제 돈 벌려고.


그러나 나에게는 이 느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여유를 즐길 줄 모르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한때, 사진을 배우면서 느림의 미학,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 해돋이 사진을 찍겠다고 시커먼 새벽부터 후레시 들고 산길을 올라 추위에 떨며 떠오르는 해를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사진을 통해 조금씩 조급증이 치료되어 가는 나 자신을 경이롭게 관찰했었다.
다음엔 대장간에 갔다. 시뻘겋게 달구어진 쇳덩이를 세 사람이 망치로 내려치고 있었다. 한쪽엔 손으로 만든 각종 칼과, 호미, 낫, 망치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들은 인레호수 주변의 부족별 5일장을 돌면서 이것을 판다.
호수나 호수 주변에 사원도 많고 탑도 수없이 많다. 보트를 타고 사원에도 갔다. 배에서 내리자, 하얀 소를 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고 땔감용 나무 묶음들이 쌓여 있었다. 가게에는 튀김류의 간식거리를 팔고 있었다. 이곳도 계단을 통해 사원을 올라가야 했다.
바닥에 송충이 한 마리 웅크리고 있었다. 쪼민씨가 종이로 들어 올려 바깥쪽에 버렸다.
“ 죽이지 않네요.”
“ 예, 별로 위험하지 않으니까요.”
“ 그럼 모기는 요?”
“ 죽이지요.”


난 모기를 진저리 치게 싫어한다. 내 눈에 띄면 모기는 죽은 목숨이다. 생각해보면 모기 팔자도 참 기구하다. 모기는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피를 빨아먹어야 알을 생성할 수 있다. 자연, 즉, 동식물은 사람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 모기 중에 암컷이 사람을 무는데, 피를 빨을 때 피가 응고되지 않도록 침을 넣어준다. 지금은 이용을 못하지만 이 모기와 거머리의 침샘이 혈전증 치료제로 이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기가 혈전증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지금까지 가져왔던 모기에 대한 나쁜 인식을 버릴 필요가 있겠다. 쪼민씨가 버린 송충이도 미래에 우리에게 무엇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참 많다. 그래서 재미있다.


계단 양옆으로 하얀색과 금색의 스투파가 세워져 있다. 머리에 빨간 헝겊을 둘둘 말아 쓰고 있는 여인이 지나간다. 쪼민씨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아마 딸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딸이 밤에 자꾸 운단다. 사원 뒤쪽으로 나가니, 수많은 스투파가 강렬한 햇살 아래에 묵묵히 서있다. 쪼민씨는 부다 트리(보리수) 이파리를 하나 떼어와 뒤쪽으로 반을 접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성불하셨고 그래서 불탑의 형태가 보리수 잎의 형태라고 한다. 잊힌 도시 같은 곳에 수많은 스투파가 빛바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허허로움은 나를 매료시켰다. 이곳은 호수의 중심에서 벗어난 때문인지 인적도 적고 한가롭다.


다음에 간 사원은 파 웅또 우 사원(The Phaung Daw U Pagoda)이다.
샨 주에서 가장 신성한 곳 중 하나로 큰 제단에 5개의 금 부처님이 계시다. 그 옆에 알라웅 시투 왕( King Alaung Sithu) 이 전국을 돌면서 타고 다녔다는 큰 금 배의 복사품이 있다. 이 사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5개의 불상을 배에 태우고 가다가 배가 전복되어 모든 불상이 호수에 빠졌다. 그중 4개는 찾았으나 한 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사원에 돌아와 보니 못 찾았던 불상 하나 가 수풀에 싸여 먼저 와 있었다. 파 웅또 우 사원 축제가 매년 10월에 열린다. 이때 4개의 신성한 금 부처님을 배에 싣고 인레 호수에 있는 마을을 돈다고 한다. 스스로 돌아온 그 불상은 그 이후로 사원 밖을 나가지 않고 사원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벽에는 초기의 불상과 현재의 불상 사진이 걸려 있다. 처음엔 보통 불상과 같았으나 사람들이 하도 금을 붙여서 지금은 눈사람 모양이 되었다. 이 불상 근처는 여자들은 출입금지이다.
“아니, 왜?”
“부처님이 남녀 차별하셨나요?”
“글쎄, 맞는지 모르겠지만, 계율에 남자가 여자에게 손을 대도 안되고 여자가 남자한테 손을 대도 안 된다는 것이 있어요. 그럼 지옥을 가게 되는데, 아마 부처님이 남자니까 여자들이 부처님을 만져 지옥 갈까 봐 그러는 것이 아닐까요? “
왜? 왜? 자꾸 물어보니 쪼민씨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듣고 보다 나름 이유 있는 금지다.


점핑 고양이로 유명한 나빼짜웅 모나스 트리에도 갔다. 그 지역의 스님이 고양이를 훈련시켜 훌라후프를 통과하게 하여 관광상품화하였는데 주위의 시선이 곱지 않아 2012년부터 사라졌다. 어두 컴컴한 구석구석에 수많은 고양이가 어슬렁 거리다가 관광객이 먹이를 주면 고양이가 몰려들었다.
호수 주변에는 레스토랑도 많이 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레스토랑엔 서양 여행객이 많이 있었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 , 서양인들 먹는 생선 구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거 달라해서 먹었다. 무지하게 행복한 맛이었다.
“이 물고기 여기서 잡은 거예요?” 누군가 보트 맨에게 물었다. 모든 생활폐수가 호수에서 자연정화되는 방식이라, 좀 찝찝한 생각도 있었나 보다.
그는 강하게 부정하며, 이 물고기는 이곳에서 잡은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매우 깨끗한 물에서 잡았다고 한다.


인레 호수는 미얀마 최고의 관광지이며 가이드는 여러 수공예 품점에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중에 목이 긴 부족이 있는 곳이 있다 하여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무척 궁금했다. 그들이 사는 마을에 가는 줄 알았더니, 직물 짜는 가게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목에 금고리를 휘휘 감고 있는 네 명의 여자가 부산스럽게 나타나 의자에 쪼르륵 앉았다. 그들은 목과 손목과 종아리에 스프링 형태의 금색 고리를 두르고 있었다. 불편하지 않느냐 물으니 생활화되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물레를 돌리며 실을 만들다가 관광객이 오면 사진 찍기 위해 모였다. 그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관광객의 사진 모델로 이용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래호수 투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낭쉐 버스 터미널로 이동을 해 바간행 야간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까지 4일간 쪼민씨와 함께 했다. 오늘 그는 가정으로 돌아간다. 2년 만에 한국에서 온 친구(선생님)를 나 몰라라하고 있기가 뭐해서 그런지, 쪼민 씨는 연말연시를 가족이 아닌 우리와 함께 했다. 최대한 우리의 편의를 위해 그는 바간행 버스를 같이 탔고 그의 집이 있는 ___에서 내렸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는 오랜만에 집에 들어간다. 가이드 비용을 두둑이 받았으니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에게 큰 소리 칠 수 있을 것이다. ‘나 돈 많이 벌어왔어!’라고. 우리 선생님이 쪼민씨를 생각하는 것처럼 나도 쪼민씨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질 것 같다. 그리고 보고 싶어 질 것이다.
아, 여행, 여행이여.
시를 썼으나 인정받지 못한 시인이 있었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떠난 곳이 이탈리아. 그는 아름다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마치 여행안내서를 쓰듯 이탈리아 곳곳을 소개하며 그의 첫 장편소설인 ‘즉흥 시인’을 썼다. 소설이 성공하며 세계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그 후 그는 이 나라 저 나라를 여행하였고 가는 곳마다 화려한 볼거리가 넘쳐났다.
안데르센이 말했다. ‘나는 어마어마한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자그마한 데이지 꽃을 꺾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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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여행이 내 작고 소박한 일상에 말을 걸어주고 아무도 모르게 가끔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의 보물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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