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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도 안되어 바강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또 호객 군들이 몰려들었고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달 줄 미니버스를 구했다. 영어로 유창하게 가격 흥정을 하던 사람과 가격에 합의하니 대 여섯 남자들이 몰려들어 우리 짐들을 번쩍번쩍 들어 그들의 차에 실었다. 그리고 차를 타니 운전기사는 다른 사람이다. 흥정하는 사람 따로 택시기사 따로, 짐 군들 따로인 모양이다. 약 20분간을 달려 바강으로 들어오니 입장료를 받는다. 얼마 전까지는 15달러였는데 며칠 전부터 20달러로 올랐다한다. 외국인에게만 받는 도시 입장료다.
호텔은 크고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일찍 체크인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호텔 측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한다. 당연하다. 누가 그 이른 시간에 방을 내어 주랴. 몰레 미안의 그 호텔이 유난히 우리 편의를 잘 봐줬을 뿐이다. 가방을 맡기고 우리를 호텔에 데려다준 운전기사에게 오늘 하루를 부탁하고 쉐산도 파야의 일출을 보러 갔다.
쉐산도에 도착하여 차에서 한숨씩 잔 후 내렸다. 쉐산도 파야는 층계가 가팔랐고 난간은 굵은 철사로 돌려 쳐져 있어 미끄럼이 방지되어 있었다. 깜깜한 새벽인데, 올라가 보니 이미 사람들이 삼각대를 펼쳐놓고 사진 찍을 장소를 점유하고 있었다.
오늘 사진 찍긴 다 틀렸다 하며 탑의 벽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보였다.
후회가 밀려왔다. 나도 삼각대와 광각렌즈를 가져왔어야 했다. 여행 막바지의 게으름과 안이함에 빠져 생각은 했지만 결국 편한 쪽에 내 영혼을 팔아버린 꼴이 되었다. 그곳에서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탑 위로 올라왔고 어디에 카메라를 갖고 파고들어야 하나 고민될 지경이었다. 해가 조그만 점으로 시작해서 살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쁘게 셔터 소리와 함성소리가 터져 나왔다. 해가 올라오면서 바강 들판에 세워진 수많은 탑들과 나무들이 찬란한 햇살에 신비롭게 새 생명을 얻은 듯 살아나기 시작했다.
숨어 있었던 지나간 역사적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막 피어나는 듯했다. 함께 호흡하고 싶었다. 그 불탑 하나하나를 만져보고 내발로 다가가 그들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고 싶었다.
한쪽에서 애드벌룬이 하나하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곧 바 강의 들판은 애드벌룬으로 넘실대며 해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실루엣이 만들어졌다.
쉐샨도 파야에서 나와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밥과 카레, 야채, 나물, 된 장류 등이 푸짐하게 차려져 나왔다. 난 미얀마 음식이 깨끗하게 다루기만 한다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건강식이라 생각한다. 메뉴판의 겉장에는 ‘우리 식당의 음식재료는 끓인 물로 씻었다’는 문구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길가에서 날리는 먼지들은 대단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도중 미니버스 기사가 소개한 가이드가 나타났다. 유쾌한 젊은 친구는 자기가 가장 우수한 가이드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쉐다곤 파고다는 미얀마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불교 유적지로, 바간 왕조의 설립자인 아나우라타(Anawrahta) 왕이 타톤을 정복하고 세운 기념물로 미얀마 파고다의 모델이 되었다. 아나우라타 왕이 타톤의 마누하 왕에게 불교 경전을 요청였으나 이를 거절하자 아나우라타 왕이 침략하여 타톤을 멸망시켰다. 부처님의 머리뼈와 앞니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성지로 미얀마의 축제 기간인 나다오(Nadaw) 기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이 곳으로 모여든다.
틸로민로 파고다(Htilominlo Pagoda)는 냥우에서 버강(Bagan)으로 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파고다로 1218년에 지어졌다. '우산의 뜻대로'라는 이 파고다는 높이가 46m로 보강에서 두 번째(가장 높은 파고다는 61m의 '땃빈뉴 파고다')로 높다.
아난다 사원은 1091년에 지어졌으며 부처의 끝없는 지혜를 대표하는 파고다로 알려져 있다. 아난다 파고다를 동서남북으로 도는 길은 3개가 있다. 가장 안쪽은 왕이 다녔던 곳이고, 중간의 길은 귀족들이, 가장 바깥쪽의 길은 일반 서민들이 다녔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가장 바깥쪽에서 불상을 보면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나, 왕이 다녔던 곳에서 보면 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그 가이드와 함께 쉐지곤 파고 다엘 갔다. 그는 그림을 그려가며 불탑의 구성 형태와, 불교의 교리 등을 열심히 설명했다. 밍글 리시와 불교의 고유한 용어, 그리고 개인적인 영어 해득 능력의 부족으로 그의 말을 알아듣는데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있었다.
나중에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다.
"난 그의 말을 들으면서, 이렇게 숲에 와서 나뭇잎 몇 개 따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그랬다. 아마 가이드가 한국인이라면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지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대로도 좋다. 이런 경험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니까. 현지 가이드의 말을 알아듣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질문하고 잘못 이해해서 웃으며 현지인에 대한 이해를 더 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바강의 들판엔 수많은 파고다들이 널려 있었다. 날씨는 더웠다. 강렬한 햇살에 눈이 부시고 전날 버스 타고 오고 새벽에 이곳에 온 후 쉬지 않고 돌아다녔으니 틈만 나면 졸린다. 갑자기 뜨거워진 날씨에 선생님은 추운 강원도를 가고 싶다고 했다.
추운 강원도에 있으면 더운 미얀마가 그리워 질까?
난 이번 여행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행복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럼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나. 이미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우리는 그렇게 살긴 힘들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는 누리면서 스트레스 없이 미얀마식으로 살고 싶다. 이게 가능한가? 얼른 답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있는데 답이 없는 경우 어떡할까? 누군가 말했다. 우리 인생은 보기 나름인 경우가 많다고, 그러니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행복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수도 없이 말했다.
아름다운 미얀마를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우리 문우님들과 함께 웃고, 현지 가이드의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일지라도 들을 수 있는 귀와 걷기 위해 일어설 수 있고, 힘들 때 앉을 수 있는 나의 하루는 기적이라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