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로에서의 마지막날

by 프레이야

12/31
껄로의 공기는 청정했다. 어슴푸레한 가운데 해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해를 바라보았다. 2014년 아침의 마지막 해다.
아이들을 태운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학교를 향해 달린다. 지나가는 아이에게 물으니 7시 30분에 수업이 시작한단다.
중학생 정도의 나이 때로 보이는 두 스님이 지나갔다. ‘밍글 라바’하고 인사를 건넸다. 무심하게 지나갔다. 스님들은 눈을 마주치면 안 되나? 잠시 후 또 두 스님이 다가왔다. 장 샘이 한번 실험을 해보자고 했다. 또 외면하는지. ‘밍글 라바’. 한 스님은 무표정, 한 스님은 쑥스럽게 웃으며 지나갔다.
초록색 롱지와 하얀 블라우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호기심을 보이며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했다. 시간이 좀 있다면 학교를 둘러보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곧 돌아가야 할 아침 산책이다.
잠깐의 아침 산책이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주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새벽시간의 청정함과, 새벽을 가르며 학교로 직장으로, 또는 사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는 길은 좀 헷갈렸다. 물어 물어 호텔에 도착했다. 혹시 길을 잃을까 걱정되어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 청년은 어느 정도까지 우리와 동행까지 해주었다.

아침은 팬케익에 토스트, 계란 스크램블, 수박, 참외, 커피. 그 모든 것을 먹으니 배가 불렀다. 난 여행의 어느 순간부터 여유 있게 식사를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다리던 미니버스에 올라 시장을 먼저 돌아보았다. 상설 시장인데 규모가 크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가이드 쪼민씨가 대나무 통밥, 티 샐러드, 샨 카욱세, 과일류 등을 설명해 주었다. 선량하고 성실한 그의 인간됨을 우리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을 리 없다. 2년 전에 처음 만났으며 말도 잘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상대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샘은 그가 결혼도 하고 2달 된 딸이 있다는 알고 시장에서 아기 옷을 선물해줬다. 사양하는 그와, 뭐라도 주고 싶은 샘의 마음이 아름답다.

시장에서 나오면서 호떡을 사 먹었다. 한 개에 150짯. 맛이 있었다. 점심은 쪼민씨가 안내하는 식당에서 한 그릇에 600짯하는 샨 국수와 샨카욱세를 먹었다. 샨 족의 음식이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맞는다고 한다. 샨 국수를 한국에서 팔면 대박 날 거라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누군 재무담당, 누군 주방 담당, 하며 샨 국수 사업에 대한 천진난만한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이곳은 차 밭이 많은지라, 가는 길에 차 나무를 보고 설명을 들었다. 차 나무 사이사이에 당근이나, 배추, 참깨 같은 것을 심고 재배한 후 남아있는 것들이 썩어서 거름이 되며 화학약품은 쓰지 않는다고 한
다. 길가에는 혹이 달리 하얀 소들이 지나가고 또 한쪽에서 벼를 수확하는 듯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간 사원은 삔따야의 쉐우민 동굴이다. 입구엔 큰 거미상이 있었고 사람들은 기념사진 찍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 전설은 이러하다. 옛날 7명의 딸을 둔 왕이 있었다. 그 공주들이 거미 사는 영역으로 들어왔다. 거미가 그녀들을 가두었고, 한 왕자가 활을 쏘아 거미를 죽였고 그는 막내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왕이 그에게 소원을 말해보라 하니 그 동굴에 부처상을 만들어 달라하여 만 분의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외국인은 관람하는데 3달러씩 내라는 문구가 동굴 입구에 쓰여있다. 석회암 동굴 고샅고샅에 부처님이 앉혀져 계시고 그 뒤에는 누가 시주했는지가 새겨져 있었다. 불교가 티베트에서 왔으므로 티베트 스타일의 부처님과 샨스 타일의 부처님이 있다고 한다. 명상실엔 허리를 구부리고 굴 같은 곳에 들어가야 한다. 근처에 터널이 눈에 띄었다.
쪼민 씨 말로는 처음 이 동굴에 만 분의 부처상이 있었는데 지하터널을 통해 바간 사람들이 2천 분의 부처상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높은 스님이 바간으로 가서 7분의 부처상을 찾아왔다고 한다. 샘은 거기가 어디라고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땅굴이 있냐고 못 믿는듯하다. 난 그대로 믿었다. 남의 말을 쉽게 믿는 것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그 긴 거리를 땅굴을 파서 2천 분의 부처 석상을 옮긴 다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쪼민 씨에게 이게 전설이냐 사실이냐 물어보았다. 사실이란다. 그냥 그렇게 재미로 생각하기로 하자.

내려오면서 한 가게에 남자가 레이스 뜨기를 하고 있었다. 재미로 몇 개 샀다. 중간에 종이우산 만드는 가게도 가 보았다. 닥종이를 삶아, 짓이겨서 물에 넣고 풀은 다음 사각틀에 몇 번 왔다갔다한 후 1시간 말리면 닥종이가 된다. 그 종이를 이용해서 우산을 만드는데, 짐스러울 뿐이다.
저녁을 먹은 후엔 쪼민씨 처갓집에 놀러 갔다. 부인과 아기가 있었다. 조그만 가게를 하고 있었으며 거실엔 부처상이 있었고 그 앞에 오렌지와 꽃,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음식은 매을 바꿔주고 꽃의 물은 매일 갈아주고 꽃은 1주일에 한두 번 바꿔준다고 했다. 마당엔 몇몇 아낙들이 큰 호박 같은 것의 속을 파내며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늘이 12월 말일이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눠 먹는 다한다.

쪼민씨가 결혼 후 2년 동안 살던 신혼방과 그 옆에 새로 짓고 있는 집을 봤다. 우리 선생님은 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덕 위 전망 좋은 곳에서 조그맣고 초라하지만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았을 그가 연상되어 기분이 좋았다.

어느덧 꿈결 같았던 막바지에 다다랐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한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오늘이 송년의 밤이라서 샘은 2014년에서 인상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샘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라 했다. 2015년의 계획은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책을 소개하는 것이 좋았는데 나도 학생들에게 책을 소개하며 지식적인 것만이 아닌, 인문학적인 소양을 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 느껴오고 배워온 것들을 잘 섞어서 내용이 풍부한 수업을 만들어 나가야겠다.

사람의 인연은 참 소중하다. 어떤 인연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민대를 알게 되었고, 샘을 만나면서 어떤 선을 향해 다가가는 기쁨, 정서적으로 또는 지적으로 결핍된 내가 조금씩 조금씩 채워 나가는 그 기쁨을 나의 아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제 더 큰 내일이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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