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드디어 찾았다. 노르웨지언 썬호

알래스카 여행기

by 프레이야

남자 둘이 돌아갔다.

'그래도 조카가 있잖아.'


14살짜리 어린 조카지만, 둘보다는 셋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이 되었다.


난 차를 타고 신비로운 사막을 한 없이 달려, 태고의 기운에 감동하고, 대자연에 압도당하며, 밤에는 하늘의 별을 헤며 이리저리 뒹굴다가, 아침에 새들이 지줄지줄 노래하며 나를 깨우면 새 날에 감사하며, 벅찬 마음으로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싶었다.


3년 전 하다 만 그랜드 서클 투어(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콜로라도의 국립공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여행코스)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어디 갈 거냐고 묻는 말에 난 서부를 돌면서 야영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딸은 엄마가 과속해서 무섭다고 했고 조카는 차를 오래 타는 것이 싫다고 했다. 이것들도 인격체라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됐다. 충분한 핑곗거리가 마련되었다'. 이제 나 혼자서 졸음운전과 장기운전, 또는 혹시 모를 교통 법규 위반과 같은 것에 마음 졸이며 운전하지 않아도 된다.


한편으론 마구 달리고 싶었지만 내심 혼자 운전해야 하는 부담도 상당했다. 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 잔다. 낮에 생활하는 것은 별 표가 나지 않지만, 운전대를 잡으면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졸음이 몰려들었다.


가장 두려웠던 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차가 고장 난다면?'이었다. 세쿼이아에서 연료가 떨어져 한 번 놀란 이후에 사람이 없는 야생의 세계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난 어떡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전화를 한다 해도 어디다 할 것이며 강도가 들이닥친다 해도 내가 어떻게 당해 낼까에 대한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이 원치 않으니 할 수 없이 grand circle tour를 접어야겠다."


"다음엔 나 혼자 와서 돌을 거다. 앞으로 너희들 데려오나 봐라." 라며 말도 안 되는 유치한 트릭을 쓰면서 내 계획에서 무사히 물러나올 수 있었다.


'할 수 없다. 알래스카를 가는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일정을 짜지 않아도 되고, 일단 배만 타면 알아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이곳저곳으로 데려다주는 크루즈로.'


빨리 예약을 해야 했다. 그러나 홈페이지 어디에서도 예약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예약란은 한국에서부터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루즈의 크기, 시설, 후기, 일정 등, 아주 세세한 안내가 다 되어있는데 예약란이 없었다.


난, 크루즈를 예약 못한 상태로 바닷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넓게 펼쳐진 태평양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남자아이들을 보면서 '철수가 어깨를 다치지 않았으면 여기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을까'를 생각했고 'LA 다저스 야구장'에서는 '철수가 여기 왔다면 LA 다저스 유니폼과 모자 사 달라고 어지간히 날 볶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집에 오면 또 정신없이 사이트를 뒤졌다.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난 할 수없이 현지 교민이 운영하는 여행사에 전화했다. 크루즈는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하며 이미 자리는 없다고 했다.


어느 날, 그 많은 사이트를 뒤졌어도 몰랐던 것, 예약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담을 담은 한 블로그에서 그가 '엑스피디아'에서 예약했다고 써 놓았던 것이다.


'뭐? 엑스 피디아라 고라?'

난 서둘러 그 사이트로 들어갔다.


비행기표와 크루즈 가격이 시간이 지나며 슉슉 올라 있었다. 크루즈 가격뿐만이 아니라, 여행 일자도 몇 개 남아 있지 않아, 잘못하다간 이번 미국 여행에서 알래스카를 영영 못 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둘러보니, 날짜가 맞으면 비싼 베란다 딸린 방만 남아 있고, 가격이 좀 좋은 것은 9월 이후에 떠나는 배였다. 드디어 내 조건에 맞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8월 4일에 출발해서 11일에 일정이 끝나는 '노르 웨지언 썬'호.


이제 밴쿠버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크루즈 앞 뒤 날 하루씩에 대한 호텔을 예약하면 되었다. 알래스카 크루즈는 보통 시애틀이나 캐나다의 밴쿠버, 또는 알래스카 땅에서 시작된다. 난 밴쿠버 왕복표를 찾아내고 구입하기 전에 확인차 크루즈 일정을 살펴보았다.


'아니, 아니, 이럴 수가. 왕복이 아니네.' 지금까지 내가 봐온 크루즈는 출발점과 도착점이 같아서 당연히 이 배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 상품은 밴쿠버에서 출발해서 알래스카의 '위티어'에서 끝난다고 되어있었다. 일단 한쪽이 알래스카에 걸쳐져 있으므로 밴쿠버 왕복표에 비해 1인당 20만 원 정도가 더 비쌌다.


심신이 지친 나는 딸에게 호텔을 알아보게 했다. 잠시 후 영희가 호들갑 떨면서 말했다.


"엄마, 위티어에는 대중교통이 아무것도 없대. 호텔도 하나밖에 없는데 무지하게 비싸. 거기는 허허벌판이고, 볼 것도 아무것도 없대."


“뭐?”


“아니, 뭐 그런 경우가 있다니. 손님들을 그런 허허벌판에 내려주고 돌아간단 말이야?”


“어쩐지.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출발하는 날, 언니가 공항까지 태워준다고 일찍 퇴근하고 왔다.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어서 동생이 부탁한 것을 사러 아웃렛에 갔다. 시간이 많이 남아,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노닥거리다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차에 올랐다.


조카가 핸드폰을 놓고 왔다고 집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처음엔 안 된다고 말했다. 언니가 잠깐 들렸다 가지 뭘 그러냐고 했다. “그럼, 들렸다 바로 나오는 거야.”라고 다짐을 주었다. 가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집에 들르면 늦을 것 같았다.


“언니, 공항으로 빠지는 길은 지나갔어?”


“ 응, 좀 전에 지나갔지.”


내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는 비행기를 버스 타듯이, 출발시간 전에만 도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어린 조카에겐 뭘 알고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 난센스였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만 들고 튀어나왔다. 그때 언니의 친구가 빵을 한 보따리 들고 왔다. 감사의 인사를 하느라 약간의 시간이 지체되었다. 언니 친구가 떠나자마자, 곧바로 차에 올라 la공항으로 향했다. la공항이 가까워지면서 길이 막혔다.


이 과정에서 난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하며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난 판단은 올바르게 하지만 누군가 옆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이건 아닌데 하면서, 그 사람의 의견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까스로 공항으로 진입했고, '알래스카 에어라인' 게이트를 찾아야 했다. 출발 1시간 20분 전이었다. 한쪽에 글씨가 정확해 보이진 않지만 A자가 분명했고, 약간 글자가 긴 것으로 보아, 거기가 알래스카 에어라인 게이트라 생각하고 우린 내렸고 언니는 떠났다. 내리고 보니 잘못 내렸다. 다시 물어 물어 셔틀 타고 반 바퀴 정도 돈 다음에 내렸다. 미친 듯이 뛰었지만, 이미 늦었음을 예감했다.


알래스카 에어라인 데스크에 와 보니 앞에 3명이 있었다. 짐 부치고, 비행기표 받으면 됐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좀처럼 내 순서가 오지 않았다.


내 순서가 되었다. 왜 그렇게 늦게 왔냐고 물었다. 민망했지만, ‘길이 막혀서요.’라고 말했다. 출발 30분 전이었다. 너무 늦게 와서 비행기를 탈 수 없단다. 페널티를 내고, 5시간을 더 기다려 다음 비행기를 타야 했다.


공항 대합실에 앉았다. 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비행기 탔니? 늦진 않았어?’


난 답장을 날렸다.


‘응 안 늦었어. 지금 무사히 비행기 타고 있으니 걱정 마, 잘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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