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

by 프레이야

베르사유 궁전 / 테제베 2000. 8. 18

남편은 테제베를 꼭 타고 싶어 했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유로 패스를 사용했다면 5칸이 다 채워졌겠지만 패스 사용 방법을 잘 몰라서 검사할 때만 날짜를 쓴 결과 검사 없이 통과한 곳이 있어 한 칸이 남게 된 것이다.

테제베의 속도가 파리-리용 사이가 가장 빠르다고 한다. 아침 일찍 1시간이나 전철을 타고 나가 역에서 예약을 하고(테제베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탈 수 있음. 예약비 1인당 20프랑* 왕복=40프랑) 또다시 거의 1시간을 전철 타고 '베르사유'에 도착했다.


난 91년도 겨울에 TV에서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만화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저녁 6시 정도인가 했었는데 남편은 밥 안 하고 만화 본다고 TV를 끌려고 하여 씨름을 하곤 했다. 일주일에 2번 했던 것 같다. 그 뒤 5년 후인가에도 TV에서 했는데 그때도 열심히 시청했다. 지금은 '재능 TV'에서 방영된다.

18세기 프랑스의 사회상을 잘 볼 수 있었다. 1%의 왕족과 귀족을 위해 99%의 평민들이 굶주려야 했던 현실을. 그렇게 핍박받고 억눌려 살던 평민들이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으며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그 위대한 민중의 힘을.


난 96년도에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하고 있었다. 집단 상담의 과정 중에 자신의 별칭을 만드는 과정이 있었는데 그때 그 만화 영화의 주인공 '오스칼'과 자유를 추구하는 프랑스 국민에 너무나 매력을 느껴 '애유(자유를 사랑한다.)'라고 별칭을 지은적이 있다.

베르사유에 가면 '오스칼'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까? 물론 만화에서 가상으로 설정한 인물이지만. 마리 앙뜨와네트와 루이 16세도 만나볼 수 있겠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울까.

나의 환상이 너무 큰 탓일까? 베르사유를 눈 앞에 두고도 난 베르사유를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뭔가 눈에 확 띄게 특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딱딱해 보이는 큰 호텔 같은 것이 베르사유라고 한다. 전날 베르사유에 갔다 온 다른 일행들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었는데.


A, B, C, D코스가 있다. A와 B는 단지 정해진 몇 가지만 볼 수 있는 코스, C는 오디오를 들으며 둘러보는 코스, D는 직접 가이드가 인솔하며 설명해주고 가장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코스. A, B, C는 아무 때나 관람할 수 있지만 D코스는 예약을 하고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린 D코스를 선택했다. D코스를 보기 위해 1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가이드의 인솔 하에 궁전에 들어갔다. 거의 60가까와 보이는 그녀는 인상이 무척 좋다. 지금까지 우리가 크고 웅장한 것만 보고 와서 눈이 높아졌는지 그 명성에 걸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왕의 방, 왕비의 방, 거울의 방... 크기는 엄청 크지만 황량한 느낌이다. 궁전 2층에서 창 밖으로 정원을 보니, 너무나 칼로 잘라놓은 듯이 반듯하여 정이 가지 않는다. 정원에 가지 말고 다른 데 가서 한 군데라도 더 보자고 해보았으나 내 말에 설득당하는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정원을 보기로 했다. 자전거, 마차, 트램을 이용해서 볼 수 있다. 물론 걸어서 봐도 되지만 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모르기 때문에 트램으로 정했다. 그 순서 기다리는 것도 30분 걸렸다.


우리의 원래 일정은 베르사유 갔다가 오르세 미술관 가는 것이었는데. 베르사유 정원을 돌다 보니 테제베 시간도 놓칠 지경이었다. 정신없이 역으로 달려와 파리행 기차를 타고 파리에서 다시 리용행 테제베를 탈 수 있는 마구 뛰었으나 1분이 늦었다. 허탈하다. 테제베 탄다고 투자한 시간이 얼마인가. 다음 기차는 4시 30분에 있다.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테제베를 꼭 타고 싶어 하는 남편은 다시 예약을 하라고 한다. 4시 기차를 놓쳤다고 하니 다시 4시 30분으로 예약표를 만들어 준다. 예약비를 또 받지는 않았다.

슈퍼 가서 빵과 음료를 사서 테제베에 올랐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다. 공간도 넓고 식탁도 있어 지금까지 밀린 일기를 쓸 수가 있었다. 우리가 탄 곳은 1등석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처음에는 보통 기차나 속도가 비슷했다가 한 30분쯤 가니까 속도가 붙는다. 빠르긴 하다. 그런데 좀 더 빨랐으면 좋겠다. 성에 차지 않는다.


2시간을 타고 리용에 내렸다. 다음 파리행 기차는 8시. 1시간 30분의 여유가 있다. 역에서 나오니 '까르프'건물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니 한국 까르프와는 성격이 달랐다. 1층엔 fast food와 의류 가계들이 , 2층엔 대형마트, 3층엔 식당가. 우린 3층에 가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에 들어가 밥과 한국적인 음식만을 골라서 먹었다. 밥을 먹고 쇼핑을 하려는 데 막 상점 문들이 닫히기 시작한다. 이곳의 물 값이 싸기 때문에 (물 1.8리터에 파리는 11프랑, 이곳은 4프랑) 물을 사려는데 문 닫는 시간이니 팔 수가 없다고 한다.

테제베가 8시가 되어도 오지 않는다. 깜짝 놀라 엉뚱한 곳에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다시 살펴보아도 이곳이 맞다. 전광판을 보니 파리행 테제베가 15분간 연착된다고 쓰여있다. 1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전광판을 보니 20분간 연착된다고 숫자가 바뀌어 있다. 테제베도 시간을 잘 못 지키는 모양이다. 21분 늦게 기차가 왔다. 테제베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노을이 아름답다. 내일이면 파리를 떠나 한국으로 간다. 힘들었으면서도 막상 떠나려니 서운하기도 하고. 갑자기 배가 고프다. 금방 힘이 빠진다. 남은 빵을 먹으려 해도 힘이 들어서 먹을 수 없다. 파리에 도착해 개선문과 야경을 감상할 계획이었는데 안 되겠다. 죽을 것 같다. 오늘 하루 너무 오랫동안 차를 탔다. 좌석의 팔걸이를 전부 올리니 누울 수 있다. 기차에 사람이 거의 없는 터라 의자에 누워서 왔다. 나와 남편은 호텔로 , 나머지 세명은 개선문에 가기로 했다.


전철역에서 메트로 직원 셋이 길을 막고 표 검사를 한다. '깜짝이야. 진짜 직원인지, 직원을 가장한 사기군인지 알 수 없네.' 그들은 우리 표를 확인하고 통과시켰다. 조금 가다 보니 집시인지 거지인지 모를 남자가 우리를 보며 이상한 소리와 몸짓을 한다. '어유, 징그러워. 밤늦게 돌아다닐게 아니군. 얼른 집에 가야지.' 전철역을 벗어나자마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파리에는 오후부터 비가 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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