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 밀라노 , 최후의 만찬
아침 7시 30분까지 식당에 오지 않으면 아침을 먹을 수 없단다. 시계를 보니 7시 35분. 부리나케 식당을 향한다. 딱딱하기만 하고 맛없는 빵과 커피, 우유, 쨈이 있다. 오늘의 일정을 상의한다. 3가지 방안. 첫째, 그냥 베네치아에서 시간을 보내다 파리행 야간열차를 탄다. 둘째, 밀라노로 간다. 셋째, 파리로 먼저 가버린다. 우리 5명 모두는 베네치아를 벗어나는 것엔 의견이 일치되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방안에 대해 검토를 한 결과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에는 이 곳에 충실하자는 의견이 우세해 밀라노로 가기로 했다.
이탈리아 공업의 중심도시, 이탈리아의 경제를 이끄는 밀라노. 패션의 중심지 밀라노로 향한다. 이탈리아 사람들 청소는 안 하는 줄 알았더니 한 50대 중반의 남자가 계단 손잡이를 열심히 닦고 있다. 10시 25분 베네치아 Mestre발 밀라노 행 기차를 탄다. (유로패스 이용) 기차 밖의 풍경은 한국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기차 검표원이 다가온다. 유로패스를 보였다. 그 사람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자꾸 한다. 난 영어로, 그 사람은 이탈리아 말로... 한 참 동안 말은 했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는 5일을 사용할 수 있는 유로 패스로 5개의 칸이 있다. 사용할 때마다 그 칸에 날짜를 써넣어야 하는데 빈칸으로 되어 있으니 날짜를 쓰란 뜻이었나 보다. 어쨌든 한참 다른 언어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후 그 검표원은 포기하고 갔다. 지금까지의 여행 국중 이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영어가 통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어 공부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듯하다. 서비스 면에서도 철저하지 못하다. 이탈리아는 훌륭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나라고 그 찬란한 문화를 유럽 전역에 퍼트린 본류다. 그들의 조상과 후손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한국인들이여. 영어공부 열심히 합시다.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절대 우리 한글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며 우리 민족의 살길임을 강조합니다.
휴, 덥다. 다른 나라 기차는 온도가 이곳보다 낮아도 에어컨을 틀어 주는데 이 더운 나라는 에어컨도 안 튼다. 3시간 후에 밀라노 중앙 역에 도착했다. 파리로 가는 기차는 밤 11시 35분에 밀라도 PG역에 있음을 확인했다. (영어가 안 통해 한 동안 고생하고) 밀라노 PG역엔 밤 9시까지만 짐을 보관시켜 준다고 하여 밀라노 중앙역에 배낭을 맡겼다. 이곳은 새벽 1시까지 맡길 수 있다.
밀라노의 한 공원에 앉아 슈퍼에서 산 빵과 음료수를 먹는데 비둘기 천지다. 아무 생각 없이 빵 한 조각을 떼어서 던져 주었다. 수많은 비둘기가 벌떼처럼 달려든다. 으앗, 우린 얼른 빵을 감싸 안았다. 여기저기 비둘기 털이 날린다. 물 잔에 빠진 비둘기 털. 우린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반대쪽에서 누군가가 또 비둘기 모이를 던졌나 보다. 비둘기 떼가 반대쪽으로 날아간다. 휴, 살았다.
최후의 만찬이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도착했다. 성당 문 앞에는 표가 매진되었다고 쓰여 있었고 몇몇의 사람만이 서 있었다. 허무했다. 밀라노까지 왔는데... 하얀 신부복을 입은 신부님에게 부탁했다. 우린 한국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보러 왔으니 들여보내 달라고. 그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여보낼 수 없으니 내일 오라고 한다. 우린 오늘 밤 밀라노를 떠나기 때문에 내일 올 수 없다고 하자, 그 그림을 보러 한국에서 여기 까기 왔다면 일주일이라도 기다려야 하지 않겠냐며 웃는다. '안 통하는 군.
'얼굴에 땀은 나고 기분은 말씀이 아니다. 그 옆의 성당을 감상하고 화장실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기념품 가게 할머니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 없다고 한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선물가게에서 나오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최후의 만찬'을 보았다고 한다. 화장실을 찾다가 우연히 그림 있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 같이 가보자고 하니 이젠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념품 가게에 가서 유리문을 열어 보았다. 열리지 않는다. 완전히 포기했는데 안 쪽에서 사람이 나오며 자동으로 문이 열린다. 들어갈 수는 없고 나올 수만 있는 문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들어가고 보자.' 유리문 안으로 들어가니 또 하나의 유리문이 있다. 그 문 역시 나올 수만 있는 문이었다. 유리문을 통해 안을 보니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천천히 무언가를 감상한다. 감상을 끝낸 관람객이 나올 때 나는 들어가는 거다. 이 스릴. 이 흥분.
드디어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나온다. 기회는 이때다. 얼른 문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쪽을 보니 유리문 밖으로 관람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최후의 만찬. 가운데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 아! 예수님은 엄마 닮았나 보다. 여러분, 한번 보세요. 최후의 만찬 속의 예수님은 여자의 얼굴입니다. 넋을 놓고 보고 있는데 성당 직원이 나갈 시간이라고 말한다.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섞여 나와 태호 엄마를 찾아보았다. 표 없이 볼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니 같이 가 보자고 한다.
'원래 모험을 좋아하는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우린 또 유리문 앞에 섰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처럼... 하나의 문을 통과, 두 번째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데 금발의 청년이 말을 건다. 티켓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눈치를 보니, 이곳의 직원은 아닌 듯하다. 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티켓은 매진되어서 못 샀고 여기서 기다리다 문 열리면 들어가려 한다고. 미국 오리건 주에서 왔다는 그 청년은 자기도 표가 없다며 내 이야기를 듣더니 정말 좋은 꾀라고 칭찬한다. '이런 것으로 칭찬받아도 되는 건지?' 그 청년은 문 앞에서 간절히 기원했다. 오, 제발 문 좀 열리라고. 드디어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왔다. 그 사이에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감상을 하는데 태호 엄마가 나를 잡아당기며 여기 직원이 표 보여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 출구 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들어오자마자 곧 쫓겨나야 했다. 그러나 이미 볼 것 다 보았지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못 볼 줄 알았던 그림도 보았고 입장료 1인당 12,000리라도 안 들었으니, 으 히히히...
다음은 두우모 성당으로 갔다. 이 또한 입이 벌어질 정도로 웅장하다. 이들의 조상들은 성모 마리아 섬기면서 일생을 보냈나 보다. 기둥 하나만도 엄청나게 크다. 천장화는 도대체 어떻게 그린 것일까?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그렸을까? 종교적인 믿음 없이는 이런 엄청난 걸작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두우모 광장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다. 비둘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먹다 남은 빵을 갖고 비둘기에게 갔다. 갑자기 스멀스멀 웃음을 흘리는 지저분한 남자가 나에게 옥수수를 한 주먹 준다. 고맙다고 받았는데 그 사람의 내 손끝을 꼭 붙잡는다. 내 손바닥에 옥수수를 올려놓고. 난 싫다. 비둘기가 내 손바닥을 콕콕 찍으면서 옥수수를 먹을게 아닌가. 질겁을 하고 손을 뿌리치니, 걱정 말라며 또 옥수수를 주고 손끝을 붙잡는다. 처음엔 내 손바닥을 찍을 비둘기 때문에 손을 뿌리쳤지만 두 번째는 이 남자가 자꾸 내 손을 잡으니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구 손을 뿌리쳤다.
남편은 내가 비둘기와 장난치는 줄 알고 태연하게 비디오를 찍고 있었다. 그 옥수수를 준 남자는 남편에게 다가가 옥수수를 한 줌 준다. 남편은 고맙다며 받아서 비둘기에게 뿌려 주었다. 그러자 그 이상한 남자는 손을 내밀며 "Money." 한다. "No."라고 하자 인상을 팍 쓴다. 무섭다. 이거 잘못 걸려든 것 같다. 남편도 인상을 쓴다. 두 인상이 서로 노려보다가 남편이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그 남자는 한 동안 노려보더니 갔다. '휴, 살았다. 난 옥수수 장사인 줄 몰랐네.' 순 날강도. 이곳은 오래 있을 곳이 못 되는 군.
중국집을 찾아 저녁을 먹는다. 메뉴판에 무슨 soup라고 쓰여 있길래 2개를 시켰는데 나중에 나온 걸 보니 커피잔 보다 조금 큰 그릇에 담아 내온다. 우리의 된장찌개 냄비 정도를 기대했는데 , 이게 국이라고. 우리에게 음식을 날라다 준 그 중국 청년은 인상도 좋고 꼭 한국인처럼 생겨서 정겹다.
밤 11시 35분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만만했다. 저녁 먹고 밀라노 중앙역에서 배낭을 찾아 밀라노 PG역으로 가니 10시 30분. 아직도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물집 잡힌 새끼발가락이 자꾸 아파온다. 역에 걸터앉아 있는데 모기가 문다. 유럽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본 모기다. 정신없이 물어댄다. 아!, 정말 이탈리아에서 벗어나고 싶다.
11시 15분이 되니 파리행 기차가 온다. 쿠셋이 어디쯤 있을까를 찾고 있는데, 기차 밖으로 우리 하나투어 일행이 얼굴을 내밀며 "여기로 오라"라고 부른다. 정말 반갑다. 밤 11시 넘도록 자지 않고 우리를 기다려준 사람들이 고맙다.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냐고 물어보니, 갈 곳이 없어 호텔에서 시간 보내다 왔다고 한다. 우리의 밀라노행을 부러워하면서. 처음 쿠셋에서 잘 때는 이곳에서 어떻게 자나 했는데 콤파트먼트에 앉아 하룻밤을 지새운 이후로 이곳은 너무 훌륭한 잠자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잠을 잘 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