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뭄바이
인도문은 1911년 영국의 조지 5세 내외가 인도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이다.
인도문 공원 여기저기 걸터앉은 사람들이 엘리펀트 섬을 가기 위해 유람선을 타고 있는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푸근한 미소를 보낸다. 이방인에 대한 따뜻한 미소, 난 이 미소가 좋아서 인도에 다시 오고 싶어 질 것이다.
40분간 배를 타고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다. 앨리펀트란 이름은 포르투갈이 이곳을 점령하고 원주민에게 이곳의 이름을 물어보았는데 발음이 너무 어려워 섬 앞에 있는 코끼리 상을 보고 앨리펀트 섬이라 이름 붙였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긴 방죽을 걸어 올랐다. 야생 원숭이가 많이 있었고 길가엔 조잡한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다. 이 곳은 시바신을 모신 힌두 동굴이다. 이 곳은 아주 더운 지역이며 사람들은 자연히 더위를 피해 시원한 동굴로 찾아들었을 것이며 그들의 신들을 경외하여 동굴을 뚫고 가장 두려운 시바신을 조각해 나갔을 것이다. 신상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지만 아직은 놀라지 마시라, 더더욱 훌륭한 석굴이 많으니....
동굴에서 내려오던 중 한 귀여운 아기 원숭이를 만났다. 졸졸 쫓아오길래 가방에서 호박씨를 꺼내서 주려는 순간 덩치 큰 원숭이가 날 듯이 내 앞에 섰다. 여행 인솔자 KTH 씨가 그 봉지를 멀리 던져 버리라 한다. 큰 일 난다고 말이다. 여기 원숭이는 사나워서 가방에서 꺼내는 것을 보면 그 안에 먹을 것이 있다고 생각해 가방까지 빼앗는다는 것이다.
잠시 후 가방을 빼앗아 먹을 것을 찾고 있는 원숭이를 한 선생님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것을 보여 주었다. 봉변당할 뻔했구나!
유람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인데 한 꼬마가 과자를 탐욕스럽게 먹고 있었다. 그의 아빠가 그 아들이 너무 귀여워 뺏어 먹는 시늉을 하자 온몸으로 막으며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몸을 뒤로 획 돌려 과자를 먹는다. 이 꼬마는 루피를 구걸하는 아이들과는 다른 작은 황제로서 커가고 있는 듯하다.
다음은 지어진지가 90년 되었지만 900년은 된 것처럼 보이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박물관에 갔다. 16세기부터 근세에 이르는 힌두와 무슬림의 세밀화, 밀교적 색채가 강한 티베트의 정밀 화인 탄카, 비슈누, 시바상, 그리고 여러 토기 및 장신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슬슬 배가 아파온다. 난 화장실을 찾았다. 3층에 없다. 물어보았다. 'It's on the round floor. 내 귀엔 그렇게 들렸다. round floor라고? 그게 몇 층이라는 것일까? 박물관 직원이 아래를 가리켰기 때문에 2층으로 내려가 찾아보았다. 없었다. 다시 물어보았다. 또다시 아래를 가리키며 round floor. 한다. round floor? 그게 first floor란 말인가요? 하고 물어보았다. No, it's on the ground floor. 아, round가 아니라 ground였구나.
인도는 영국식으로 맨 아래인 1층을 ground floor, 우리 개념의 2층이 first floor가 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바로 입구 바닥에 인도 아가씨들이 여럿 앉아 있어 이들이 화장실 사용료를 받으려 하나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가씨들이 왜 화장실 앞에서 쉬고 있지?
화장실 문을 열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화장실마다 수도가 달려있고, 수도 밑에는 약간 큰 컵이 있다. 순간 난 휴지가 있는지를 보았으나 없다. 잽싸게 다른 칸을 열어 보았으나 역시 휴지가 없다. 난감해진다. 가방을 차 안에 놓고 왔으니 지금 휴지도 없고, 인도인처럼 왼손을 이용해 처리를 하고 물로 손 닦을 용기도 없고, 나의 걱정을 내 배가 이해를 했는지 배의 요동이 멈추었다.
박물관을 나와 아라비아 해로 갔다. 그 근처가 인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며 집 값이 우리 돈으로 8억 ~9억 하며 인도 영화배우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한다. 해변가엔 일없이 배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 일행은 단체 사진을 이곳에서 찍기로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 우리를 해변에 있던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몰려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았다. 이 곳엔 놀이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외국인 구경하는 것이 그들의 큰 즐거움이고 오락거리라 한다.
한 여자아이가 먹을 것을 달라한다. 땅콩을 주었다. 그 큰 눈에 행복이 흘렀다. 다른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볼펜? 초콜릿? 루피? '미안하다 얘들아, 너희들이 그렇게 볼펜과 초콜릿을 좋아하는 줄 몰랐어. 그리고 루피는 생각을 해 보아야겠구나.'
땅콩을 다 먹은 그 여자아이가 다시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옆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말한다. "얘는 주지 말아요. 절대로 주면 안 돼요." 박시 시(적선)를 하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한 두 명이 아니고 떼로 몰려드니 어떡하지? 그 여자 아이가 손을 내밀길래 악수하자는 것으로 생각하고 손을 내미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낚아챈다. 그 힘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 너는 물이 필요했구나.'
우린 아우랑가바드행 야간열차를 타야 했다. 기차역은 영국 지배하에 만들어진 것으로 영국풍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수많은 피난민 떼 같은 승객들과 루피를 구걸하며 따라다니는 거지들이 서로 엉켜 진풍경을 이루고 있다.
멀리 기차소리가 울리자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총소리에 맞추어 100미터 달리기 하듯 기차를 향해 전력질주했다. 날 듯이 달려들어 기차에 매달린 이들에게서 동물적인 힘, 스피드가 느껴진다. 기차가 정차한 다음에 자리잡기는 하늘의 별따기. 전문적인 자리잡기꾼은 기차가 오면 순간적으로 달려들어 자리를 잡아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내가 배낭여행을 선택했을 경우 이런 아수라장에서 의연하게 견딜 수 있었을까? 의자를 차지한 사람은 그나마 괜찮지만 숨도 못 쉴 만큼 빽빽이 들어앉아 있는 이들과, 그것도 모자라 짐 놓는 선반까지 올라가야 하는 상황을 절대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여인은 자리를 하나 차지해 놓고 그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지만 위협적인 남자 몇 이서 그 여인을 밀어내 버린다. 분함을 못 참고 울상을 짓는 여인, 너무나 분통이 터져 소리를 질러보지만 주위의 어느 누구도 그 여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옥이 따로 없구나.'
기차역은 매캐한 가스냄새로 가득 차고 기차 철로 사이엔 사람들의 배설물이 널려 있다. 으윽. 우리는 침대칸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런 난리는 겪지 않지만 양치질하기 위해 열차 내 수도가로 가서 입안을 헹구기 위해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역한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내 비위가 얼마나 버텨줄까 걱정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침대칸에서 그런대로 잘 자고 있는 사이에 가이드 보조 '라즈'는 일반열차를 타고 있었다지? 침대차는 35불이고 일반 열차는 3불이라서, 여행사 측에서 보조에게까지 침대 차표를 주지 않아서 그렇다지? 우리가 첫날 호텔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라즈'는 길에선지, 역 대합실에선지 잤다지? 순진하고 착한 '라즈'가. 우리가 호텔에서 식사를 할 때 라즈는 밖에 나가서 혼자 식사를 했다지? 호텔 음식은 못 먹는다고 하면서, 과연 그럴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