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by 프레이야

2003.1.19. 바라나시-갠지스 강

안개에 뒤덮인 갠지스로 갔다. 모포 한 장에 기대어 건물 앞 층계참에서 잠을 자고 있는 거지 같은 모습의 힌두교인들. 거리엔 휴지가 쌓이고 소똥, 개똥이 널려 있다. 병든 개가 돌아다니고 거지들이 몰려들었다. 할로, 루피..., 할로 마담, 박시...

갠지스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던가? 신도 신지 못해 발바닥이 쩍쩍 갈라져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시장 바닥을 걸어 다닌다. 이것이 그들의 종교가 준 삶의 모습이었더란 말인가?


어젯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그 유명한 바라나시의 미로를 통해 가다 보니 미로 안과 밖은 너무나 다른 세상이다. 사람은 구걸을 하고 소는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뒤진다. 이 비참한 모습.

인도인이여 깨어나라.

당신들의 조상들은 인더스 문명을 꽃피우지 않았던가? 당신들의 땅에 증거로 남아 있는 수많은 유적이 있지 아니한가? 뭔가 강력한 대책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정치인들은 반성하고 그들의 백성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어떻게, 어디서부터?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들의 최고로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당신들의 믿음이 헛되다고, 당신들은 지금 종교의 희생자들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처음엔 같은 사람으로서 이렇게 동물적인 삶을 살도록 방치하는 인도의 지도층에 화가 났지만, 그럼 우린 행복한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들보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만 정신적으로 충만한가, 행복에 대한 갈증을, 인생의 무상, 끝없는 욕망으로 허덕이고 진리에 목마름을 느끼고 있는 우리가 이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슴 깊숙이 무언가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차곡차곡 쌓인다.

유람선을 타고 화장터로 갔다. 장작불에 타고 있는 사람. 골격이 크고 살색이 검은 남자, 두 팔이 옆으로 벌어져 있다. 화장을 할 때 350킬로그램의 장작 위에 시신을 눕히고 장남이 처음 불을 붙인다. 한 시간 동안 같이 있다 가족들은 떠나고 인부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렸다 나중에 재를 가족에게 인계하고 그 재는 성스런 갠지스강에 뿌려진다.


제망매가(祭亡妹歌)-월명사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에 있으므로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다 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질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세계에서 만나볼 내가

도를 닦으며 기다리겠노라.


바라나시의 미로를 헤치고 가다 보면 황금사원이라는 힌두사원이 있고, 그 뒤로 힌두 사원을 허물고 그위에 지어진 회교사원이 있다. 그 회교사원에는 힌두사원의 초석이 남아있다.

힌두교인들은 이 사원을 강제로 허물려고 해서 항상 힌두와 이슬람의 긴장이 고조되는 곳이다. 이 두 사원은 테러의 위험에 처해있어 군인들의 경비가 심하다. 외국인은 출입할 수 없어 밖에서만 보았다.


점심식사 후 아그라행 열차를 탔다. 밤 열차라면 자고 나면 다음날 도착하겠지만 낮에 12시간을 지루해서 어찌하나.

우리들이 말하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 보여 같이 말을 하고 싶다며 중년의 인도 남자가 우리 칸으로 놀러 왔다. 그는 의사이며 인도의 통합을 위해 인도 전역을 일주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남북통일되기를 기원한다며, 인도도 종교적으로 분열이 심한데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 모임은 회원이 300명이며 힌두교, 이슬람, 불교, 시크교, 기독교 신자 등이 다 섞여 있고 의사, 변호사, 교수와 같은 인도의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차에는 40명의 회원이 타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이슬람교도라 한다. 이슬람의 1부 다처제를 생각하며 짓궂은 마음으로 부인이 몇 명이냐 물었다. 2명이란다. 우린 그를 놀려대며 어떤 부인을 더 사랑하냐, 부인들이 서로 질투하지 않느냐는 통속적인 질문을 하였다. 그는 똑 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첫째 부인에게 5명의 자녀를 둘째 부인에게서 2명의 자녀가 생겼다 한다.


그는 말한다. 한 남자가 4명의 부인까지 얻을 수 있는데 이슬람교도의 99%는 부인이 하나다. 이슬람에서는 혼외정사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과부, 나이 든 여자, 장애인 등은 결혼하기는 어렵고 , 결혼 외에는 그들의 욕구나 생활고를 해소할 수 없어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차원에서 생기게 되었다 한다.

내가 전달을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욕심쟁이 같았던 이슬람계 남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풀리며 참으로 성에 대해서 깨끗하다는 생각을 했다. 빈 라덴과 9.11에 대해서도, 탈레반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나 미국적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격하고 배타적이고 여자들에게 냉혹했던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탈레반 means 뚜 알스." 뚜 알스? 그게 무슨 단어지?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 글씨를 쓴다. 'students'. '그래 탈레반이 학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 그런데 왜 내 귀엔 students가 '뚜 알스'로 들릴까? 이슬람에 대한 대화가 깊어지자, 그는 모 대학 이슬람학 역사 교수라는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는 말도 빠르고 너무나 깊이가 있어 이슬람에 무지할 뿐만 아니라 언어의 장애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영어)로 우리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고 우리의 입에서는 이슬람의 부정적인 말만 자꾸 나오게 되어 이념 싸움이 될까 두려워 화재를 돌렸다.


또 한 사람 만났다. 그는 인도의 전통 악기를 연주한다고 했다. 문선명 목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한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손금도 보아주었다. 황 선생님은 두뇌가 좋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를 이루어 나간다 했고 나는 부자가 되겠다 한다.

밤 12시가 가까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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