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자금성, 천안문 광장

by 프레이야

8월 1일 북경 자금성, 천안문 광장

북경 관광에 나섰다. 짜인 일정에 지시대로 따라다녔으니 관광이라 해야겠다. 전날 간단한 속 옷과 티셔츠 몇 장과 바지 1벌을 넣으니 준비는 다 된 듯했다. 그러나 세상에! 짐을 다 챙겼다고 생각했었는데 화장대 선반에 여권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숨을 접으며 가방에 여권을 챙겨 넣는다. 중국에서 돈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노팁 노옵션이니까.


초등 6년 딸과 함께 새벽 5시 35분에 인천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딸과 함께 4일간 북경 여행. 공항에서 함께 여행할 가족들과 인사하고 10시 30분 대한항공 851편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12시 45분 2시간의 비행 끝에 북경에 도착. 공항에서 현지 가이드 K를 만났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북경의 상징인 천안문 광장이다. 천안문은 중국의 상징적 건물로서, 황제의 즉위식과 과거를 치르는 곳이었고 중국 역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천안문 광장 중심에는 인민 영웅 기념비가 우뚝 서 있다. 기념비 남측은 마오(毛) 주석 기념당이 자리하고 있다. 모택동의 시신이 안치되었다고 하지만 입장은 불가. 광장 북측은 천안문 성루이고 서측은 인민대회당이 있고 동측은 중국 역사박물관과 중국 혁명 박물관이 있는데 유물은 별로 없다. 모든 유물은 장개석이 대만으로 다 가져가 버렸으니. 남측은 치엔 먼(前門)이 있다.


천안문 광장은 천안문 남쪽에 위치한 대광장으로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11만㎡의 규모를 대폭 확장하여 50만 명의 집회가 가능할 수 있는 40만㎡의 규모로 확대하여 오늘에 이르며, 지구에서 가장 큰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에 그다지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관광 나온 북경시민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연놀이에 제기차기, 롤라 타기 등 북경 시민의 휴식 공간이었다. 그러나 , 오래되지 않은 때에 두 개의 중요한 천안문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문화 대혁명이 끝나던 해인 1976년 4월 5일 일어난 것이다. 발단은 그 해 1월에 서거한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추도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에서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천안문 광장의 인민영웅 기념비 주위에 화환을 던지며 마오쩌둥(毛澤東)과 장칭(江淸)등 소위 문화 대혁명을 주도한 세력들에 대한 비난과 반대의 소리를 높인 것이었다. 이것이 약 3,000여 명이 사망. 부상. 체포당하는 사태가 된 하나의 천안문 사건이었다.


또 하나는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난 것이다. 전차에 맨손으로 대항하는 청년들과 비무장한 사람들, 그리고 이들에게 발포하는 인민해방군의 위태로운 대치 상황으로 묘사되는 이 사건은 민주를 바라는 학생들의 움직임이었다.

날씨가 엄청나게 덥군, 섭씨 39도라. 땀은 삐질삐질 나고 새벽부터 일어나서인지 관광이고 뭐고 호텔 먼저 갔으면 좋겠다.

중국은 56개 민족, 13억 인구이고 94%가 한족이라 한다. 북경의 인구는 서울과 비슷하나 면적은 남한의 29배나 된다는 군. 더위를 피해 앉아 있고 누워 있는 사람들.. 모태동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그 집의 가장인 아빠, 메리야스만 있고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아예 웃통까지 벗어던진 남자들도 많이 있다.


천안문의 지하 통로를 이용해 자금성에 도착했다. 성내의 모든 지붕은 황금색이다. 옛날 황제들이 노란색을 좋아했단다. 자금성의 방은 모두 9999개로, 신만이 꽉 찬 만의 개념으로 통하며 따라서 하늘의 아들인 천자, 즉 황제는 그 보다 하나 적은 숫자를 쓴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매일매일 다른 방에 재워 모든 방에서 한 번씩 자고 나오면 그 아이는 27세가 되어 나온다 하니 엄청나다.

황제의 절대 권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놀라 워라 이 궁궐들을 어찌 재단하여 이렇게 거대한 성을 만들었을까? 그 크기와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가슴이 답답한 것은 무엇인가? 온갖 꼬불꼬불한 문양으로 조각, 채색되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데, 왜 부러운 생각이 안 들지?



아 그래. 이 넓고 화려하고 대단한 성, 그 안에 나무 한 구루가 없었다고 한다. 자객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데. 밥 먹을 때 그렇지 않은가? 너무 고기만 먹는다 던 지 너무 채소만 먹으면 잘 먹은 것 같지 않은 것 말이다. 너무 고기만 먹으며 뻑뻑하고 너무 채소만 먹으면 허전한 느낌. 이 곳 자금성이 그렇다. 음식으로 치자면 너무 고기반찬이다. 체하기 십상이다. 이 곳에 나무와 꽃이 있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마지막 황제 부의'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는데 난 그 영화를 아직 못 봤다.

자금성의 신무문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곳이 경산공원이다. 경산의 높이는 9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산 위의 만춘정(萬春亭)에 서면 황금색의 기와가 물결치는 자금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저녁식사를 태가촌에서 태가 요리를 먹는다 하여 뭐 특별한가 했더니 음식이 맛있는 것도 아니고 친절한 것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다.

밥 먹는 도중 민속춤인가를 추는데 밥 먹는데 무슨 춤이야 , 감상할 정도도 안 되는데. 2002년 1월 중국 계림을 방문했을 때는 종업원이 수시로 와서 "tea?" 하며 잔이 비워질 때마다 채워 주었는데 이곳은 도시라서 그런지 그런 인정은 없다.

종업원들이 빨간 털실을 손목에 매어 주는데, 쓸데없는 짓이지 , 밥 먹는데 귀찮기만 하다. 그런 정성이 있으면 다른 데에 쓰지, 청소를 하던지, 차를 한번 더 주던지.

식사 후에 버스에 오르니 우리의 현지 가이드 말하길 여러분들은 노팁 노옵션으로 오셨지만 우린 받은 것이 없다.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고 기사에게 팁을 좀 걷우어 주면 신이 나서 운전을 잘하지 않겠느냐며 기사팁 10불에 물값 5불 이화원 배로 건너는데 5불 , 이렇게 20불씩을 내주었으면 좋겠단다.

사람들의 반응 1. 묵묵부답 2. 내라면 내야지 뭐. 3. 우린 돈 다 내고 왔는데.


대부분 불만스러워는 하지만 거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 배정이 끝나자 가이드는 일일이 방문을 하여 수금을 다닌다. 물값과 배 타는 값 10불씩 , 딸 것과 함께 20불만 냈다. 그때 딸과 나는 집에 전화를 하려다 못하고 있는 참이었기에 가이드에게 전화 거는 법을 물어보니, 거기 설명서대로 하면 돼요 하고 나간다. 팁을 안 줘서 삐졌나? 설명서대로 되지 않기에 나가서 다른 여행사 가이드에게 물어 한국에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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