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by 프레이야

8월 2일(일)-명 13 릉, 만리장성, 용경협, 왕부정 거리

6시에 모닝콜을 하고 6시 40분부터 식사시간이고 7시 30분에 출발을 한다고 했었다. 눈을 떴다. 창밖으로 커다란 해가 솟아오른다. 너무나 환하다. 7시는 넘은 것 같은데. 핸드폰을 켜니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시계도 가져오지 않고 핸드폰도 작동이 안 되니 난리 났네. 텔레비전을 틀어보았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도 시간을 알려 주지 않는다. 복도로 나가 보았다. 벽에 시계가 없다. 사람들 다 내려간 것은 아닐까?


간단히 샤워를 하고 딸을 깨웠다. 밖을 보니 아무리 안돼도 7시는 된 것 같다. 카운터에 전화를 걸어 시간을 물어보았다. 호텔 여직원은 끙끙거리더니 5시라고 한다. 지금이 5시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 아가씨가 영어를 잘 못해서 5시라고 하는 것 같다. 옷을 주워 입고 카운터로 내려갔다. 호텔 직원 3명이 있고 프런트에만 불이 켜 있지 복도에는 불이 꺼져있다. 시간을 물어보니 시계를 보여 주는데 5시 25분이다. 5시 25분이라는데 밖은 왜 이렇게 환한 거야. 우리나라 8시쯤 되어 보인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지만 시간이 애매하다.


진이는 샤워를 끝내고 앉아 있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6시에 벨이 울렸고 난 텔레비전을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40분이 된 것 같아 식당으로 향했다. 함께 식사하면서 시간을 물어보니 그 아저씨 '시간은 될 만큼 됐겠지' 한다. 그 부부 역시 시계가 없어 4시부터 일어났다 앉았다 한 것이 나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식사 후에 옥가게 쇼핑하고 명 13 릉에 갔다. 버터링에 이어진 산기슭의 들판에 숨어 있는 평원이 있는데, 이곳에 명대의 13 릉이 있다. 우리가 본 것은 명태조 주원장 사후 도읍을 북경으로 옮긴이 후 후대 명 황제 13분을 모신 묘역 중 발굴된 제13대 신종의 정릉을 관람했다. 정릉은 장릉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제13대 신종 만력제와 그의 두 명의 황후가 잠들어 있는 능이다. 신종 만력제란 인물은 22세에 황제 자리에 올라서 누구보다도 재위 기간이 길었지만, 정치는 뜻이 없었고 주색에만 몰두하였고 특히 자신의 묘인 정릉을 만드는 데에 열중했다 한다.


정릉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엄청나게 큰 비석이 있는데 글자가 쓰여 있지 않다. 이를 무자 비석이라 하는데, 후세 사람들이 신종이 이루어 놓은 것이 없어 글자 없는 비석을 세웠대나 어쨌대나...

점심식사를 하고 한참 뜨거운 때에 우리는 만리장성으로 향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30만의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을 징발하여 대량의 벽돌을 쌓아 장성을 연결해 나갔으면 총길이는 약 6,000킬로미터이다. 그중에 우리가 간 곳은 북경시 북서쪽으로 약 70킬로 떨어진 버터링 (八達嶺) 장성이다. 버터링 장성은 매표소 입구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이 여판(女坂)이고 왼쪽이 남판(男坂)이다.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유는 왼쪽인 남판쪽이 더 오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매표소까지 갔다. 가이드는 정상까지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갔다 오라 했다. 비록 짧은 거리지만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오르다 보니 옆으로 또 하나의 장성이 있어 정상에서 만나고 있었다. 여판쪽이다. 내려올 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까딱 잘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올라갔건만....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 정도 내려왔으면 매표소가 보여야 할 텐데 아무리 내려가도 매표소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려갈수록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었다. 올라올 때는 사람들로 북적댔는데...

진아, 아무래도 우리,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어떡하지? 위를 올려다보았다. 기가 막힌다. 저기를 다시 올라갈 생각 하니 눈앞이 막막하다.

"저기요. 여기 매표소가 어디예요?" 그 중국인 커플은 내 말을 못 알아 들었다. 당연하지. 한국말로 했으니까. 가이드가 영어 쓰지 말고 일본어 쓰지 말고 당당히 한국말을 하라고 했으므로. 상대방도 중국어로 열심히 설명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알아먹을 수가 없다. 먼저 중국 남자가 말했다. "영어로 말해요." 이에 나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 어디예요?" 멀뚱. 그럼 매표소는 요? 그래도 멀뚱.

한참 이러고 있는데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환상적인 영어 발음으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갈려고 하느냐며 다가왔다.

발음 끝내 준다. 말만 통하면 된다는 나의 영어관에 심한 충격을 주었다. 좋은 발음은 나를 무척 편하게 해 주었다. 딱딱한 아까 그 발음과 딱딱한 나의 발음이 얼마나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었던가를 그때 나는 심각하게 깨달았다. 그 친절한 소년은 끝까지 쫒아오며 길을 안내했다.


그 아이는 내려가는 중이었는데 나를 만나서 다시 올라오게 된 것이다." 소년아, 괜찮아. 이제 혼자 갈 수 있어. 누나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 봐." 여러 번 가라고 했는데도 괜찮다며 쫒아와 알려주었다. 그 아이는 미국에서 왔으며, 아버지가 중국인이란다. 영어에 대한 심한 부끄러움이 조금은 가신다. 그래, 넌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발음이 그렇게 좋을 수밖에... 나중에 보니 콧물도 쫄쫄 흘리는 것이 초등학생인 것도 같다.


"큰일이다. 어제 팁도 주지 않아서 미운데 , 늦었다고 더 미워하겠는데..." 죽을힘을 다 해 오르다 보니 숨도 가빠지고 한번 기침이 나오더니 끊임없이 나온다. 나중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내리막길로 향하니 다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제 되었다. 그냥 내려가다 보면 가이드를 만날 수 있다.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여행객은 이미 케이블카 타고 내려간 뒤였다. 왜 늦었는지를 말하려고 했으나 너무나 기침이 나와 말할 수 없었다. 다른 길로 , 콜록콜록.. 다른, 콜록....

나는 만리장성을 두 번 갔다 왔노라.... 여판쪽으로 한번, 남판쪽으로 한번.


다음엔 왕부정 거리를 가보았고 몹시 지친 우리는 저녁에 있을 발마사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림에서 처음 발마사지를 받을 때 쑥스러워 죽을 것 같았는데, 이제 어서 발마사지를 받고 싶어 하니,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간사하기 이를 데 없다.


호텔로 돌아온 진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고자질했다. " 아빠, 나, 엄마가 잘 아는거 처럼 뛰어 내려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만리장성에서 죽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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