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여행기
이른 아침 갑판으로 올라가면 매우 맑고 고요한 음악이 흐른다. 바다 건너 푸르디푸른 산에 하얀 안개가 포근히 내려와 산을 감싸고, 이 지구가 막 태어난 듯한 적막함과 신비로움 속에 비췻빛 바다 위로 조용히 배가 멈춰 있다.
첫 정박지는 ‘캐치칸’이다. 캐치칸은 ‘독수리의 펼친 날개’란 뜻으로 원주민이 지은 이름이다. 이곳은 비가 많이 와서 야생동물의 보고가 된다고 한다. 배가 기항지에 정박하면 옵션을 선택한 사람들은 선택 관광을 하러 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시내 관광이나 배에서 쉰다.
내가 본 캐치칸은 수수한 듯 아름다웠다. 골드러시가 알래스카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던 1900년대 초반, 이곳 케치칸은 수산업과 목재산업으로 성장하면서 알래스카의 중요한 항구도시가 된다. 이 곳엔 세계적인 연어 통조림 공장이 있으며, 인디언 특유의 화려한 조각과 토템상을 단청한 기둥이 있는 인디언 마을은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다운타운 쇼핑가는 다이아몬드나, 금제품, 곰과 독수리 그리고 돌고래의 조각품류가 많았고 게와 연어 같은 해산물을 재료로 하는 레스토랑들도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알래스카 글자가 들어간 모자, 티셔츠, 북극곰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위에 위풍당당한 하얀 북극곰이 서있었다.
길이가 3미터 30센티에 590킬로그램이며 1972년 2월 16일에 북극해의 러시아 시베리아 해안가에서 W.M.B 총으로 한방에 잡았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참으로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저 하얀 곰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순백의 북극에서 평화롭게 살았을 텐데, 어느 순간 유럽인들에 의해 북극이 탐험되고 정복되면서 보는 대로 무자비하게 또는 심심풀이로 사냥당하여 전리품으로 가죽이 벗겨지고 또는 박제되었다. 이러한 박제된 북극곰들은 다른 기념품 점에서도 여러 번 볼 수 있었고, 알래스카를 떠나는 날 앵커리지 공항 대합실에서도 보았다. 같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로써 무척 안타까웠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야생동물들의 북극은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두 번째 정박지는 알래스카의 수도인 주노였다. 갑판에서 보니, 항구에는 배가 모여 있었고, 바다에는 목재들이 잠겨있고, 컨테이너 박스 등이 쌓여 있었다.
다운타운을 어떻게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우리가 알아서 버스 타고 다녀야 하는 걸까? 난 크루즈에서 준 지도를 보았다. 지도상에서 보는 것은 체감이 되지 않았다. 리셉션 데스크에 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을을 돌아 돌아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무료 셔틀이 다운타운까지 우리를 태워주고, 태워올 것이며, 루트는 하나이니까, 내린 곳에서 타면 된다 하였다. 선상에서 좀 쉬다가, 배 밖으로 나아갔다.
다운타운 쪽에, 셔틀이 1대 기다리고 있었고, 반대 방향에 여러 대의 버스가 있어서 물어보니 빙하를 보러 가는 투어버스란다. 우리가 타자마자 버스는 달렸고 곧 다운타운에 도착했다. 걸으면 약 20분 정도 걸릴 거리였다.
주노는 조그만 시골 같았다. 앨 래스 카의 인구가 워낙 작아서인지, 시청이라 해봐야, 주민센터나, 마을 회관 정도의 크기였다. 중심지는 온통 기념품 가계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게 앞에는 곰의 형상을 세워놓은 곳이 많았다. 다이아몬드가 많이 나는지, '블루 다이아몬드'라는 가게 이름을 케치칸에서도 보았고 이곳에도 같은 상표의 가게가 있었다.
곰, 고래, 독수리, 연어낚시, 빙하, 크리스마스, 에스키모인들, 개썰매가 기념품의 주요 모티브였다. 수제품의 머플러, 스웨터, 브로치, 구슬 목걸이, 반지, 귀고리 등은 많은 수공이 들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막상 사용하기는 좀 조잡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인터넷을 찾아 가게들을 들락날락 했다.
“여기 인터넷 잡혀." 사람들이 가게의 벽에 기대어서 핸드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곳이 와이파이 존이라는 것을 눈치챘단다. 과연 인터넷이 잡혀 길거리에 서서 '문화 에스프리'에 소식을 전했다. 문우님들은 비를 맞으며 대청댐 문의마을을 여행한 후였다. 사진으로 보니 반가웠다. 그분들은 나의 소식에 반갑게 답장을 보내고 내 여행을 응원해주었다.
세 번째 정박지는 ‘스캐그웨이’였다. 스캐그웨이는 1800년도 말 금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골드러시가 쇠퇴하면서 인구도 줄어들었다 한다.
알래스카의 옵션투어는 종류도 많고 가격도 비쌌다. 연어낚시도 해보고 싶고, 곰이 연어 낚시하는 곳도 가보고 싶고, 배 타고 빙하 바로 앞에 가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이 모든 것이 돈이었다. 난 컨설턴트에게 가장 대표적인 옵션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의 추천에 따라 1인당 35만 원 하는 ‘헬리콥터 빙하 투어’에 나섰다.
배에서 내리자 각각의 옵션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든 사람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가이드는 무척 활동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었다.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안전교육을 받고 미끄러지지 않는 신을 덧 신고 에어재킷을 입었다.
헬리콥터는 운전자 포함, 모두 7명이 탈 수 있었다. 우리와 함께 탄 가족은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와 그들의 어린 두 딸이었다. 가이드가 헬리콥터에 오를 때 안전장비를 확인했고 헬리콥터는 서서히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땅이 아래로 아래로 멀어져 가며 빙하로 덮인 산과 계곡, 호수, 빙하의 세월을 읽을 수 있는 여러 모양의 빙하 층들을 볼 수 있었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그곳에서 가슴 떨리게 경건한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꿈결과도 같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헬리콥터는 우리를 빙하 위에 내려 주었다. 백만 년 전부터 형성된 빙하를 직접 만져보며 인간의 세계가 아닌 완벽한 자연에 들어왔음을 느꼈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몹시 추웠다. 산에는 빙하가 아래로 흘러내리면서 끌고 온 바위나 돌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짐) 사이로 돌을 던지면 한참 후에 ‘텅’하고 바닥에 닿는 소리를 내어 그 끝을 알 수 없는 설산의 깊은 역사를 느끼게 했다. 옥색의 빙하 위에 졸졸 흐르는 빙하수를 손으로 떠 마셨다.
시원하고 약간 달착지근했다. 산의 골짜기에는 빙하 폭포수가 하얗게 포말을 날리며 떨어졌다.
산악인들이 한발 한발 목숨 걸고 오르는 곳을 우린 단 20분 만에 올라왔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설산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말로 표현 못할 대자연의 장엄함, 엄숙함, 경건함에 압도되었다. 비로소 산악인들이 왜 그토록 모험을 감행하며 산에 오르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대자연과의 만남이었다.
크루즈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은 빙하 국립공원을 여행했다. 아침부터 방송을 통해 빙하지대에 왔음을 지속적으로 알렸다. 라운지에서는 수십 년간 빙하를 탐험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왔던 탐험가와 사진작가가 나와서 그들의 경험을 들려주며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안개가 낮게 내려와 있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거대한 빙하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쿠웅하고 떨어질 때는 숨이 넘어갈 만큼 장엄했다. 바다 위에는 유빙들이 흘러 다녔고, 하얀 새들이 조용한 바다 위를 유유히 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