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안녕 알래스카

알래스카 여행기

by 프레이야

크루즈는 허허벌판이고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위티어’에서 끝났다. 위티어는 비를 뿌리고 있었고 쌀쌀했으며 안개와 빙하로 덮인 산은 무척이나 ‘알래스카적’이었다. 왜 아무것도 없는 위티어를 종착지로 잡았는지 이해되었다.



노르 웨지 언 썬은 앵커리지 공항이나, 우리가 출발한 캐나다 밴쿠버까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혼자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대중교통도 없는 곳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가버릴 수 있느냐’며 원망했을 뿐이다. 완벽한 출발과 도착, 그리고 마무리까지 노르 웨지 언 썬 호는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난 종착점이 앵커리지 국제공항인 ‘야생동물 보호센터 투어’를 신청했다. 이 투어를 선택한 사람들이 버스 3대를 채웠다. 버스는 위티어에서 앵커리지 방향으로 난 ‘경치 좋은 도로’로 지정된 ‘수워드 하이웨이’(Seward High way)를 달렸다. 창밖으로 빙하산과 호수와 바다가 지나갔다. 아름다웠다.


‘이런 것들이 알래스카구나.’



위티어는 자그마한 항구도시로 재미있는 곳이었다. 위티어에 알래스카 크루즈 라인이 들어오고, ‘유콘 와이트 패스’ 관광 열차가 통과하고,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빙하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 빙하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되었으나 한때는(2000년까지만 해도) 주민 77명에 불과한 알려지지 않은, 다른 알래스카 지방과 완전히 고립되었던 마을이었다. 2차 대전 때 비밀 군사기지를 목적으로 위치상으로 적의 접근이 어렵고, 대부분의 알래스카의 바다가 겨울에는 얼어붙는데 비해, 이곳은 겨울에도 바다가 얼지 않으며, 특히 연중 80%가 안개로 싸여 있어 적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이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단단한 화강암 절벽을 뚫고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터널(Anton Anderson Memorial Tunnel)을 만들었다.



이 터널은 일방통행이어서 위티어에서 앵커리지를 향해 터널 문을 여는 시간이 있고 반대방향에서 통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시간을 잘 맞추지 않으면 한 시간씩 기다리는 수가 있다 한다. 1960년 부대가 떠나면서 14층의 ‘베기치 타워’가 남겨졌고 2014년 현재 200명 위티어 주민 대부분이 이 한 아파트 안에 살고 있다고 한다.



버스는 달려서 알리에스카 리조트에 도착했다. Alyeska는 알류트 부족의 말로 ‘큰 땅’이란 뜻으로 알래스카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 트램을 타고 산 정상에 올랐다. 톱니 모양처럼 지그재그로 난 길을 운동복을 입고 뛰듯이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이 보였다. 산의 정상에는 리조트와 관련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과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이 근처에 7개의 빙하가 있다 하여 케이블카 정거장 건물에 있는 식당 이름도 ‘세븐 글레이셔스(Seven Glaciers)’이다. 이 식당의 창밖으로 보이는 환상적인 빙하산과 매우 몽환적인 안개를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행복했다.


‘이런 곳엘 다 와보는구나.’


식사 후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



비는 계속 내리고 버스는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센터’에서 멈췄다. ‘야생동물보호센터(Alaska wildlife conservation center)는 동물보호가 목적이고 알래스카 야생종에게만 국한되어 있는데 부상 입고 병들거나, 어미 잃은 동물들만 데려다가 돌보는 곳으로 가급적 야생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비도 오고 쌀쌀하고 우산은 캐리어에 넣어 보냈기에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비 맞고 덜덜 떨면서, 포큐파인, 무스, 독수리, 엘크, 소, 곰, 북극여우 등을 보고 따뜻한 선물가게에 들어가 버스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가게에서 순록(산타 썰매 끄는 사슴)의 모피를 20만 원에 팔았다. 예전에 TV 보면 부잣집의 상징처럼 소파나 벽에 있었던 그 모피다.



‘노르 웨지 언 썬’은 앵커리지 시에서 운영하는 시빅센터에 한 공간을 임대해, 승객들이 비행기 탈 때까지의 짐을 맡아주었고, 매 정시에 무료 셔틀버스로 공항까지 태워주었으므로 우린 짐을 맡기고 앵커리지 시내를 둘러볼 수 있었다. 버스기사의 ‘앵커리지는 한 시간만 보면 다 본다.’라는 말처럼 낚시와 같은 체험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이곳에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난 하루를 이곳에서 묵을 생각으로 왔으므로 비행기 탑승 날짜를 변경해야 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할아버지 직원에게 내 사정을 말했다. 그는 일일이 공항에 전화를 걸어, 가능한 비행 편과 페널티, 가장 경제적인 방법의 항공권 교환 방법까지, 완전히 승객 중심으로, 필요한 부분을 다 알아봐 주었다.



짐을 그곳에 맡겨놓고 앵커리지 시내를 돌아보았다. 수수하지만 멋스러웠다. 길거리에 ‘순록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맛이 없진 않지만 착한 루돌프 사슴을 생각해서인지 좀 이상했다. 주위에 보니 또 다른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엔 불고기가 메뉴에 있었다. ‘불고기는 우리나라 음식인데......’


어떻게 불고기를 파느냐고 물어보니, 불고기는 한국인 동료랑 함께 일하기 때문에 메뉴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공항 가는 마지막 셔틀버스가 6시에 있으므로 시간에 맞추어 서비스센터로 돌아갔다. 할아버지 직원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셔틀에 올라 앵커리지 공항으로 향했다. 밤 11시가 넘으니 어두워졌다. 비행기 가능한 좌석을 확인하고 페널티 내고 항공권을 받았다. 새벽 5시 비행기이므로 공항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비행기를 타면 영원히(잘은 모르겠지만) 알래스카와는 안녕이 구 나하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주위에 사람은 많지 않았고 추웠고, 컨츄리 풍의 팝송이 흘렀다. 난 감상적이 되어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대합실을 서성댔다.


탑승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TV 모니터를 보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 역을 맡았던 로빈 윌리엄스가 죽었다는 뉴스를 전한다.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았다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는 웃음을 자아내는 희극적이고 익살스러운 캐릭터였다. 아. 그가 그렇게 갔다고. 그러고 보니 그의 눈은 왠지 모르게 슬펐었다.


앵커리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간 기착지인 미네아폴리스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매우 색다른 공항이었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카페스러운 공간이 나왔고, 온통 아이패드가 식탁마다, 한쪽 구석 테이블에, 붙어 있어 우리 애들은 한 달음에 달려가 앉아 인터넷을 했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인터넷이 뒤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예외였다. 의자에도 배터리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전기코드가 있고, 벽에도 있고, 모든 가게의 벽에 수없이 많은 코드와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아이패드가 널려있었다. 음식을 시켜 먹어도 되고 음식을 주문하지 않아도 인터넷 할 공간은 많았다. 비싼 돈 주고 직항을 고집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해서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그리고 알래스카를 다녀왔다. 가기 전에는 궁금증과 불안함도 많았지만, 다녀오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 별거 아닌 것을 두려워했던 것은 그곳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알래스카를 꿈꾸고, 빙하와, 돌고래, 곰, 무스 같은 야생동물과 녹색의 산들과, 여러 문화적 체험과 사람들을 만났다. la를 운전하며 애매모호한 교통 표지판에 어쩔 줄 모르던 때도 있었고, 세쿼이아 공원의 높은 산과, 야생의 산 중턱에서 문득 차의 연료가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가슴 졸이며 애태우던 때도 있었다. 고생한 만큼 이야깃거리도, 기억도 생생하고 한편으론 이런 도전이 재미도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도전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디오지 이야기